김정은의 간부 현장 처형 방식[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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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9일 ‘대동강자라공장’을 시찰하던 김정은이 간부들 앞에서 화를 내고 있다. 사진 출처 조선중앙통신
2015년 5월 19일 ‘대동강자라공장’을 시찰하던 김정은이 간부들 앞에서 화를 내고 있다. 사진 출처 조선중앙통신
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김정은이 평양 인근의 자라공장 지배인을 새끼 자라를 죽였다는 이유로 처형한 일은 한국에 이미 잘 알려져 있다. 2015년 5월 19일 조선중앙통신은 ‘대동강자라공장’을 시찰한 김정은이 이런 말을 하며 격노했다고 전했다.

“인민들에게 약재로만 쓰이던 자라를 먹일 수 있게 됐다며 기뻐하던 장군님의 눈물겨운 사연이 깃든 공장이 어떻게 이런 한심한 지경인지 말문이 막힌다. 전기 문제, 물 문제, 설비 문제가 걸려 생산을 정상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넋두리이다.”

조선중앙통신에는 이례적으로 ‘격하신 어조’ ‘격노’라는 표현이 3번이나 들어갔다.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는 2018년 발간한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김정은이 “지배인을 심하게 질책한 뒤 처형을 지시해 즉시 총살이 집행됐다”고 썼다.

5년이 지난 지금 당시 현장에서 이를 목격한 사람들의 입을 통해 보다 더 상세한 상황이 북한 고위층들 사이에서 널리 퍼지고 있다. 전언을 전하면 이렇다.

당시 김정은은 새끼 자라들이 거의 다 죽은 것을 보자 화를 내며 “야, 이 ×끼들아. 자라 다 죽을 동안 뭐 했냐”고 소리를 질렀다. 북한 매체들은 질책했다고 에둘러 표현하지만 김정일도 그렇고 김정은도 화가 나면 수시로 상욕을 퍼붓는다.

지배인이 황급히 나서 “전기가 없어 물을 끌어올 수 없고, 사료가 공급되지 않고 있다”고 변명하자 김정은이 “뭐라고 이 ×끼야. 어디 이런 ×끼가 다 있어” 하고 더 화를 냈다.

바로 그 순간 180cm가 넘는 거구의 김정은 호위병 두 명이 지배인 옆에 딱 붙어 서더니 양팔을 딱 붙잡고, 동시에 발로 무릎 관절을 차서 꿇어앉힌 뒤 팔꿈치로 뒷머리를 꽉 눌러버렸다. 지배인이 김정은 앞에 꿇어앉아 머리도 들지 못하고 말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상태의 지배인에게 김정은은 온갖 욕설을 다 퍼부은 뒤 “이런 ×끼는 살아 있을 자격이 없어”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호위병이 지배인을 질질 끌고 가 대기시켰던 승합차에 실었다. 김정은이 떠난 뒤 지배인은 즉각 총살됐다. 김정은이 살아 있을 자격이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목격한 간부들은 공포로 질려 버렸다. 사실 지배인 입장에선 정말 억울한 일이다. 전기와 사료를 자기가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국가에서 공급하지 않는데 맨손으로 자라를 키울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김정은 앞에서 변명했다는 이유로 죽었다. 이때부터 북한 간부들 속에선 김정은이 화가 났을 때 대처 요령이 생겨났다. 아무리 억울해도 절대 변명하면 안 된다. 김정은이 화가 났을 때 바로 무릎을 꿇고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지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죽기를 각오하고 집행하겠다”고 대답해야 그나마 살 확률이 높아진다.

2013년 5월 미림승마구락부 건설 도중 처형된 북한군 설계연구소장도 똑같은 방식으로 죽었다고 한다. 김정은이 “지붕이 왜 내가 그려준 그림과 반대로 향했냐”고 화를 내자 “겨울에 대동강에서 강풍이 불면 지붕이 날아갈 수 있어 방향을 바꾸었다”고 설명하려 한 것이다.

그러자 김정은이 “이 ×끼가 누구 맘대로 설계를 뜯어고쳐. 이런 놈 필요 없어”라고 화를 냈고, 호위병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꿇어앉게 한 뒤 김정은의 욕설이 다 끝나자 끌고 갔다. 다음 날 처형된 설계연구소장의 죄명은 ‘1호 행사 방해죄’였다.

끌려간 사람도 똑같은 방식으로 죽는 것은 아니다. 김정은이 “살아 있을 가치가 없는 놈” “숨 쉴 자격이 없는 놈” 하면 그나마 총살당해 시체라도 남긴다. 그러나 김정은이 “땅에 묻힐 자격도 없는 놈”이라고 하는 순간 고사기관총에 형체가 사라지거나, 화염방사기로 태우거나, 장갑차로 밀거나, 개에게 먹히거나 등 각종 방식으로 그 간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봉건 왕조에서도 신하는 왕에게 상소를 할 수 있었다. 직언을 했다고 신하를 바로 죽이는 일은 연산군과 같은 극히 몇몇 폭군 시대에나 있었다. 신하가 직언은 고사하고 변명을 좀 했다고 파리 목숨처럼 죽는 지금의 북한을 먼 훗날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 아울러 21세기 세습 왕조 ‘정은군’ 시대는 어떻게 막을 내렸다고 역사에 기록될지 궁금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김정은#대동강자라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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