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을 오간 中 유학생들의 코로나 경험담

  • 주간동아
  • 입력 2020년 3월 28일 10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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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나|“외출 금지의 일상화, 마스크 쓰지 않은 한국인 보면 걱정”

3월 10일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2주간 격리 생활을 한
 단국대 죽전캠퍼스 중국인 유학생들이 임시 생활시설에서 나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뉴시스]
3월 10일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2주간 격리 생활을 한 단국대 죽전캠퍼스 중국인 유학생들이 임시 생활시설에서 나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뉴시스]
캠퍼스에 봄은 왔지만 학우들을 만나 수다 떨고 새 학기를 시작하는 우리의 일상은 아직도 멀리 있다. 개강 날짜가 금세 다가오리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과연 그날이 오긴 올까 싶다. 한국을 찾은 중국인 유학생인 내가 2학년을 마치고 방학을 맞아 중국 베이징 집으로 돌아간 것은 지난해 12월 24일이었다. 기말시험의 피로를 풀 겸 가족과 외식하고 친구들도 만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중국은 평온했다.

1월 초 우한에서 폐렴 환자가 갑자기 늘어났다고 들었다. 베이징은 환자 발생 소식이 없었기 때문에 거리에 마스크를 쓴 사람이 많지 않았다. 코로나19 관련 뉴스가 이어진 1월 중순에는 불안감에 거의 집에만 있었다. 오전에는 피아노를 치고 그림을 그렸고, 오후에는 어머니와 차를 마셨다. 대학원 진학 준비를 위해 토플 공부도 집에서 혼자 했다. 출국이 어려워질지 몰라 평소보다 일찍 한국행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중국의 설날인 1월 25일 전후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우한 통제 소식이 전해졌다. 베이징도 외출 인증제가 시행돼 한 사람이 하루 한 번만 동네에 출입할 수 있었다. 우편물이나 택배도 동네 입구까지만 배달돼 주민들이 아침에 찾으러 나왔다. 설날 외식도 당연히 취소됐다. 비상 상황이라는 것이 실감 났다.

외출이 어려워져 미국 대학원 출신 지인에게 상담하려던 일정이 날아가버렸다. 집 근처 화이러우 방송사에서 실습과 인턴 과정을 밟으려던 계획도 불발됐다. 지금 생각해보니 코로나19가 내게 미친 영향도 꽤 크다.

1월 29일 베이징을 떠나면서 서울에 안전하게 도착하는 데만 신경 썼다. 중국과 한국에 번거로운 문제를 일으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뉴스에서 본 대로 개인위생을 철저히 했고 이동할 때 마스크를 꼭 착용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자취방 대신 동대문구 이문동에 있는 고교 동창 천샤오웨의 집으로 바로 갔다. 투룸에 사는 친구의 룸메이트가 휴학해 공간에 여유가 있었고, 개강 때까지 함께 지내면 심심하거나 불안하지 않을 것 같았다.

2월 초부터 학교에서 ‘개강 2주 연기’ ‘2주간 온라인 강의’ 등 비상 연락이 날아들었다.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현실이 됐다. 중국인 유학생 단체 대화방에서 주임교수는 학생들의 입국 일정을 논의했다. ‘이번 학기에 휴학하겠다’고 알리는 학생이 예상보다 많았다. 베이징에 있는 가족은 하루 한 번씩 전화로 당부했다. “밖에 나가지 마라. 지하철 타지 마라.”

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친구와 나는 외출을 거의 끊다시피 했다. 나는 방에서 토플 공부를 한다. 친구는 책을 읽는다. 오후에 심심할 때면 이야기를 나눈다.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보기도 한다. 저녁식사 후 함께 요가를 한다. 식사 준비는 점점 귀찮은 일이 돼갔고, 우리는 어느새 배달음식을 주로 먹게 됐다.

개강을 더는 미룰 수 없게 되자 학교는 온라인 강의를 시작했다. 이 방식은 유학생에게 좋은 점도 있다. 편한 시간에, 반복해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 전공과목 강의를 70%가량 이해하는 것 같은데, 6개 과목의 강의 동영상을 다섯 번씩 들으니 더 많이 알아들을 수 있었다. 온라인 강의가 2주 연장되니 슬슬 답답한 느낌이다. 그래도 시간 낭비 없이 집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좋은 소식이 있지 않겠는가.

한국에서 한국과 중국의 코로나19 대응 방식 차이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떤 나라든 이념과 법체계, 정책이 달라 코로나19 대응 방식도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방역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고, 국민도 급변한 상황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함께 한국에서 유학 중인 고교 동창, 대학 친구와 선배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중국의 페이스북이라는 ‘위챗(WeChat)’을 통해 몇 가지 질문을 던진 뒤 오간 내용을 정리했다.

천샤오웨(21·여·한국외국어대 한국어교육과 3학년)
3월 4일 의료진이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 유학생 임시 거주시설을 방문해 중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대면 검진을 실시하고 있다. [뉴시스]
3월 4일 의료진이 서울 광진구 세종대학교 유학생 임시 거주시설을 방문해 중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대면 검진을 실시하고 있다. [뉴시스]

중국의 코로나19 확진자는 1월부터 급격히 늘어났다. 전염성이 무척 강했다. 중국 학교가 대부분 휴교에 들어갔고 회사들도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지역별로 출입이 제한됐다. 우리 가족이 사는 베이징의 아파트 단지에는 외부인이 들어오지 못했다. 한 친구는 아버지가 의사, 어머니가 간호사인데 쉬는 시간도 없이 계속 환자를 돌본다고 했다.

1월 27일 무척 긴장한 채 한국으로 출발했다. 중국 공항은 보통 때와는 전혀 달랐다. 한 승객은 마스크는 물론이고 선글라스, 모자, 장갑을 동원해 최대한 온몸을 가리려 애썼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겁이 나 움츠러들었다. 한국에 도착하니 한국도 확진자가 크게 늘어나 있었다. 친구가 내 집으로 와 당분간 함께 지내게 됐다. 우리는 근처 마트에서 채소와 과일을 사다 먹었다. 그런데 3월 5일 코로나19 확진자 한 명이 확진 전 그 마트에 다녀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방역을 마쳐 안전하다고 했지만 이후 온라인 쇼핑으로 바꿨다. 배달 온 박스는 소독했다. 방의 가구와 살림살이도 매일 소독했다. 운동, 공부를 모두 집 안에서 했고 쉴 때는 드라마를 봤다.

코로나19 사태로 한국과 중국 사이에 불편하고 냉랭한 감정이 생긴 것이 사실이다. 중국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많이 발생할 때 중국인의 한국 입국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것도 이해한다. 다른 중국인 유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봐도 대부분 “이해할 수 있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은 가까운 나라고 교류가 많으며 서로 돕는 관계다. 한국은 중국이 힘들 때 마스크와 방역 물자를 제공해 격려했고, 중국은 한국이 힘들어할 때 그 선물을 되갚으려 노력했다. 한국과 중국은 그런 사이며, 코로나19 극복 이후 더 좋아질 것이라 믿는다.

장휘(22·서울대 식품영양학과 2학년)

중국에서 확진자가 늘어나자 아파트를 출입할 때 체온을 체크했다. 긴장의 연속이었다. 지린(吉林)성 지린시에서 한국으로 올 때 공항에 사람이 많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다른 사람과 부딪히지 않도록 최대한 피해 다녔고, 마스크를 계속 착용하고 있었다.

한국에 온 첫날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집 근처 마크로 가 식재료를 충분히 사왔다. 오가는 길에 마스크를 쓰지 않은 한국인이 보여 걱정되고 답답했다. 이후 14일 동안 혼자 집에서 생활했다. 집에서 매일 팔굽혀펴기 운동을 했다.

방리양(23·여·연세대 경영학과 3학년)

방학을 맞아 중국 장쑤성 난징의 집에 머물 때 코로나19 사태로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우리 동네는 당시 감염자가 없었고 감염 의심자도 없었다. 그런데도 가구별 택배가 중단돼 각 가정에서 아침마다 동네 입구까지 나가 물건을 받아 와야 했다. 1월 21일 우한시 봉쇄 가능성 이야기를 듣고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돼 마스크를 1장에 100원꼴로 100장을 구입했다. 22일 마스크 품절 소식에 이어 ‘온라인에서 가격이 10배로 뛰었다’ ‘1장에 3000원이 됐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이후 가족 모두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고, 생필품은 온라인 쇼핑으로 구입했다.

한국으로 오려는데 아버지가 휴학을 권하면서 한국에 가지 말라고 했다. 나는 조심하면서 잘 지내겠다 말하고, 2월 6일 한국으로 왔다. 오는 길에 보니 중국 내 기차 한 칸에 겨우 3명이 타고 있을 정도로 한산했다. 승객은 학교로 돌아가는 학생들이었다. 택시기사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공항 입구마다 체온을 측정하는 모습이 보였다. 비행기 탑승구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깐깐하게 처리하는 것을 보자 더욱 긴장됐다.

한국 공항에 도착하니 공항 직원들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버스에 일본인 학생 6명이 타고 있어 “왜 왔느냐”고 물었는데 “여행 왔다”고 대답해 깜짝 놀랐다. 집에 도착해 온라인 쇼핑으로 전기밥솥과 쌀, 고기, 채소, 과일을 샀다. 그리고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하지 않을 때는 매일 학교 도서관에 가서 공부했고, 3월 초 도서관 운영 시간을 단축한 이후부터는 가지 않았다. 외출을 삼간 채 매일 집에서 밥해 먹고 공부하는 단순한 생활을 하고 있다. 중국인 유학생이 감염 의심자라도 되면 한국 시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겠다 싶어 더 조심했다.

한국 병원은 입원비가 비싸고 나는 국민건강보험도 적용되지 않으니 정말로 걱정이 컸다. 무섭기도 하고 휴학하기도 싫어 차라리 밖에 나가지 말자며 계속 방을 굳게 지켰다. 온라인 강의를 할 줄 알았다면 중국에 머물 걸 그랬다. 비용이나 안전을 생각하면 너무 일찍 한국에 돌아온 것이 후회될 때가 있다. 온라인 강의 가운데 화상회의처럼 진행하는 줌(zoom) 방식은 강의실 수업보다 알아듣기 어렵고 공부 이외의 발언도 많아 집중이 안 돼 비효율적이다. 중국에도 중국어로 된 온라인 강의가 많은데 한국에 와서 비싼 등록금을 내고 이런 방식의 강의를 듣는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

정의원(20·여·고려대 사회학과 3학년)
한국교통대는 3월 13일 기숙사에 머물던 중국인 유학생 전원을 격리 해제했다. 이날 기숙사를 나서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발열 검사를 받고 있다. [뉴시스]
한국교통대는 3월 13일 기숙사에 머물던 중국인 유학생 전원을 격리 해제했다. 이날 기숙사를 나서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발열 검사를 받고 있다. [뉴시스]

중국에서는 코로나19 탓에 가족 모두 꼭 필요한 경우 외에는 외출하지 않는다. 부모님은 비행기 내 감염 우려가 크다면서 나에게 휴학을 권했지만 나는 휴학하지 않고 3월 말쯤 한국에 갈 생각이다. 일단 광둥성 산터우(汕頭)의 집에서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개학 날짜가 정해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이번 사태로 중국인 유학생들 역시 큰 피해를 입을 것 같아 걱정이다. 학기 중에 조별 과제를 하게 되면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중국 출신 학생들을 좋게 보지 않을 것 같다. ‘우한폐렴’이라는 이름 자체가 중국인에 대한 편견을 포함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해외에서도 중국인들이 차별 대우를 많이 받는다고 들었다. 중국, 한국 등 동양인 여학생이 미국과 유럽에서 폭행당했다는 뉴스도 봤다. 그렇다고 중국인 유학생들이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고 중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다.

부모님은 한국 상황에 대해 나보다 관심이 많다. 중국 ‘런민일보’에 실리는 한국 관련 기사는 빠짐없이 읽는다. 중국 외교부의 발표, 학교에서 e메일로 보내주는 전달 사항을 모두 챙겨본다. 2~3월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을 지켜보면서 우리 가족은 한국인들이 단결심이 강하고 전염병도 신속하게 처리하며 시의적절하게 대응을 잘 한다고 생각했다. 최근 확진자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외국인 유학생과 그 가족에게는 가장 좋은 소식이다. 바이러스는 전 인류의 공통의 적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나라가 합심해야 한다.

가오루이야오(高瑞遙) 연세대 글로벌인재대학 3학년 ruiyao@naver.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32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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