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블루, 과장된 표현 아냐…적절한 위기관리 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6일 16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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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심리학회 코로나19 특별대책위원회’ 육성필 위원장 인터뷰

한국심리학회 코로나19특별대책위원회 육성필 위원장.
한국심리학회 코로나19특별대책위원회 육성필 위원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재난상태에 준할 정도로 악화되면서 사람들의 정신 건강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한국심리학회 코로나19 특별대책위원회’의 육성필 위원장(53·용문상담심리대학원대학교 교수)은 23일 “코로나19가 신체적인 질환만 일으키는 게 아니라 심리상태에까지 영향을 줘 사람들의 삶을 상당히 힘들게 하고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육 위원장은 “감염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초조해하고 우울해지는 과정을 겪으면서 불안장애까지 나타나고 있다”며 “코로나로 인해 우울증에 빠진다는 ‘코로나 블루’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어 “외국에서는 ‘코로나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라는 더 센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며 “더 상황이 나빠지기 전에 적절한 위기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심리학회는 코로나19의 충격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때보다 훨씬 클 것을 우려해 이미 이달 9일부터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와 협력해 심리상담서비스를 시작했다. 자원봉사로 참여한 심리상담 전문가들이 번갈아 전화상담에 응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220여 건의 상담이 이뤄졌다.

상담내용은 연령대별, 직업별, 계층별로 다양했지만 대부분 “언제 끝날지 불안하다”거나 “화가 나고 모든 게 원망스럽다. 병에 걸린 게 아닌지 걱정된다, 가슴이 답답하고 잠도 안 온다”며 불안감을 호소했다. 한 자영업자는 “장사가 안 되고 임대료도 못 내게 됐다. 죽을 생각을 하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대학생들은 개강을 했지만 온라인으로만 강의가 이뤄지는 것에 어색해하며 논문 작성 등 세워놓았던 학습계획이 뒤틀어진 것에 불안해했다. 일부 학부모, 특히 주부들은 개학시기가 계속 늦춰지면서 집안에 갇혀 있는 아이들과 재택 근무하는 남편의 하루 세끼 식사 준비로 쉴 틈이 없어진 사실에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일부 가정에선 잠재돼 있던 가족 간 갈등이 폭발하는 사례도 있었다. 육 위원장은 이에 대해 “가사를 분담한다든지 잠깐이라도 자신이 즐겨하거나 좋아했던 일을 하며 개인시간을 갖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신청자 중에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격리자나 확진자, 기저질환자, 감염우려자, 완치자, 이들을 치료하는 의료진도 있었다. 육 위원장은 특히 “오랜 기간 환자들을 돌보면서 에너지가 고갈돼 번아웃(Burnout·소진)된 의료진들이 스트레스가 많을 수 있다며 적극적으로 상담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의료진은 역할과 책임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힘들어도 힘들다고 얘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육 위원장은 “지금의 상황은 누구라도 힘들어할 상황”이라며 “힘들고 어려우면서 아닌 것처럼 하는 게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는 만큼 믿을 만한 사람이나 전문가에게 얘기를 하라고 권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상담 신청자 중에는 가짜뉴스로 고민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런 경우 대체로 “내가 그 증상인데 죽는 것이냐”라던가 “그게 효과가 있느냐”게 주를 이룬다. 또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에 과도하게 의존하려는 이들도 있었다. 육 위원장은 “재난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루머와 잘못된 정보 차단”이라며 “가짜뉴스가 퍼지면 정서적으로 큰 문제가 되기 때문에 정부기관과 전문가들이 초기에 끊어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별대책위는 심리상담 전문가들을 추가로 모집해 7월 말까지 심리상담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특별대책위는 이와 함께 하루에 주변사람 3명에게 안부를 전하는 ‘1-3 헬로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접촉이 제한된 상황에서 연결하기(Keep connected)를 통해 심리적 안정을 되찾자는 취지다. 미국심리학회가 올 1월 발표한 ‘코로나로 인한 불안을 다스리는 5가지 방법’에서 연결하기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육 위원장은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고 걱정해주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힘이 될 수 있다”며 1-3 헬로 캠페인에 적극 참여해줄 것을 당부했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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