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두기’[횡설수설/서영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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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만지지 마라, 누구도 만나지 마라!’ 이런 홍보 문구를 내세운 2011년 영화 ‘컨테이젼’(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세계가 현실이 돼버렸다. 무려 9년 전에 오늘날의 코로나19 사태를 미리 본 듯 그려냈다. 박쥐에서 시작된 최초 감염자로부터 일상 ‘접촉’만으로 3개월 만에 전 세계 10억 명에게 감염이 확산됐고, 아무도 집 밖에 나서지 않게 돼 텅 빈 거리 풍경이 오늘 감염 공포에 빠진 도시들과 유사하다.

▷이쪽은 현실세계. 작은 꾸러미를 길 중앙에 두고 마스크로 무장한 두 사람이 멀찌감치 떨어져 마주 선 장면이 신문에 실렸다. 중국 베이징의 KFC, 피자헛 등이 2월 초부터 시작한 ‘비접촉 배달 서비스’란다. 배달 직원이 고객이 원하는 곳에 피자를 놓고 안전거리인 2m 뒤로 물러서면 고객이 다가와 챙겨가는 식이다. 사람 간 감염이 일어날 수 있는 2m 내 접촉을 피한다는 취지다. 런민왕에 따르면 이 밖에도 다양한 ‘비접촉’ 판매 방식이 등장했다고 한다. 고객과의 사이에 2m 나무판을 놓고 이를 미끄럼틀 삼아 만두를 건네고 잔돈은 국자에 담아주는 만두가게가 있는가 하면, 고객이 온라인 주문 뒤 지정된 무인공간에서 제품을 찾아가게 하는 서비스도 있다.

▷전문가들은 감염병의 지역사회 확산을 줄이기 위한 두 가지 전략을 권한다. 즉, 모든 유증상자와 잠재적 감염자들을 이동 없이 그 자리에 있게 하는 ‘움직이지 않기’, 그리고 2m 이내 비말 접촉에 의해 전염되는 코로나19의 특성을 감안해 사람 간에 거리를 두는 ‘거리 두기’ 전략이다.

▷‘거리 두기’가 강조되면서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총선 풍속도도 크게 바뀔 듯하다. 정치인들로서는 선거철에 유권자들의 눈도장을 찍는 데 악수만큼 유용한 도구도 없었지만, 이제는 언감생심이 돼버렸다. 대안 인사법으로 소개되는 ‘주먹 인사’니 ‘팔꿈치 인사’도 ‘2m 안전거리’를 지켜야 한다면 힘들어진다. 신인의 경우 마스크를 쓰고 시민들에게 얼굴을 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떤 기발한 ‘비접촉 선거운동’ 방법이 생겨날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전쟁이건 재난이건 일이 터지면 그 사회의 취약한 계층이 가장 힘들어진다. 신천지 대구교회를 제외하면 취약계층 돌봄 시설에서 집단 발병이 많다고 한다. 사람 간에 물리적으로는 거리를 둘 수밖에 없어도 약자들에 대한 마음은 가까워질수록 좋은 것 아닐까. 바이러스라는 작은 존재가 사람들 간의 직접 접촉을 막고 서로를 고립시키는 이유가 되고 있다. 타인을 바이러스 덩어리로 여기고 경계해야 하는 현실은 코로나19 확산이 던져주는 새 풍속도 중 참으로 씁쓸한 대목이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코로나19#안전거리#거리 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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