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中에 빚졌다”…‘中 눈치 보기’ 일관하는 WHO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5일 16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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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중국에 빚졌다.”

중국 현지에서 세계보건기구(WHO)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조사단을 이끌어온 브루스 아일워드 박사가 24일(현지시간) 베이징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이날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와의 공동 언론 브리핑에서 중국 정부의 신속한 조치로 확진자가 줄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일워드 박사는 “매우 빠르게 (수치가) 떨어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1개월 전 발원지인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 일대를 봉쇄한 덕분에 더 큰 위기를 피했기 때문”이라며 “세계가 (중국에) 빚을 졌다”고 주장했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공포에 휩싸였음에도 WHO가 ‘중국 눈치 보기’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을 의식하지 않은 발언이란 평가다.

한술 더 떠 그는 “중국은 신종 전염병에 맞서기 위해 역사상 ‘가장 야심 차고 발 빠르다’고 평가되는 범정부·범국민 접근법을 취했다”며 “세계는 코로나19와의 싸움에서 성공하기 위해 중국의 경험과 자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일워드 박사를 거들 듯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도 이날 스위스 제네바 WHO본부에서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한국, 이탈리아, 이란에서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팬더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신규 확진자가 감소한 것은 사실이다. 중국 내 확진자는 이달 18일(1749명) 최고조에 오른 후 19일 394명, 23일 409명 등으로 줄고 있다. 그러나 중국 누적 환자만 7만7150명, 사망자 만 2592명(23일 기준)이다.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는 이미 37개국으로 퍼졌고, 한국과 일본을 비롯해 이탈리아, 이란 등 세계 곳곳에서 확진자가 크게 늘고 있다. 세계 경제도 휘청이고 있다. 24일 미국증시는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1000달러 이상 하락해 시가총액은 2300억 달러(약 274조5000억원) 증발했다. 범유럽지수인 유로스톡스 50지수도 4.01% 급락했다.

이런 상황에서 WHO가 감싸기 차원을 넘어 ‘중국을 배우라’고 하자 신뢰 하락 차원을 넘어, 조직의 존재 자체에 의문스럽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에 본부를 둔 청원전문 웹사이트 ‘체인지닷오아르지’에는 지난달 말부터 ‘WHO사무총장 퇴진을 요구한다’는 청원이 올라 수십 만 명이 서명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혜안을 가졌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취임한 후 WHO가 속한 유엔에 대해 “하는 일도 없이 방만하다”며 6억4000만 달러(약 7500억 원)의 지원금도 삭감했기 때문이다. WHO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비꼰 우스개 소리다.

일각에서는 차기 WHO 수장은 국제 정치 무대에서 소신과 영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을 뽑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강대국에 경제적으로 종속된 개발도상국 인물이 국제기구 수장에 오를 경우 중립적인 판단이나 업무수행이 어렵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다.

2017년 7월부터 WHO를 이끌고 있는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1948년 WHO 설립 후 첫 아프리카 출신 수장이란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중국 측의 도움을 받아 총장이 된 인물이란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중국은 친중 인사에 속하는 거브러여수스의 당선을 위해 WHO에 향후 600억 위안(약 10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이 속한 에티오피아도 중국의 각종 지원을 받아 ‘아프리카 속 중국’으로 불린다.

이를 반영하듯 그는 당선인 시절부터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고, 신종 코로나 사태 확산 중에도 계속 중국을 두둔해왔다. 그는 지난달 30일 뒤늦게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도 “중국에 대한 여행과 교역 제한을 권고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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