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당내 견제-소모품 인식’이 2030 정치도전 가로막는다[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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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엔 왜 ‘마크롱-부티지지’ 안 나올까

지난달 19일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청년인재들이 포함된 1∼10호 영입 인사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왼쪽 사진). 17일 미래통합당 출범식에서 황교안 대표, 청년 당원 대표자들이 당 강령을 낭독하고 있다. 여야는 이번 총선에서도 2030세대의 표심을 겨냥한 청년인재 영입에 앞다퉈 나서고 있지만 정작 당내 청년인재 육성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아일보DB
지난달 19일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청년인재들이 포함된 1∼10호 영입 인사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왼쪽 사진). 17일 미래통합당 출범식에서 황교안 대표, 청년 당원 대표자들이 당 강령을 낭독하고 있다. 여야는 이번 총선에서도 2030세대의 표심을 겨냥한 청년인재 영입에 앞다퉈 나서고 있지만 정작 당내 청년인재 육성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아일보DB
윤다빈 정치부 기자
윤다빈 정치부 기자
“하….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할까요.”

더불어민주당 당원으로 시작해 수년간 당직을 거친 뒤 4·15총선에 출사표를 낸 30대 A 후보에게 “왜 우리나라에는 부티지지 같은 청년 정치인이 없냐”고 묻자 돌아온 답변이었다. 피트 부티지지(38)는 미국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변을 연출하고 있는 젊은 정치인이다. A 후보는 “청년이 정치를 하려면 자신의 삶을 걸고 뛰어들어야 한다. 한국의 청년들도 패기와 열정은 부족하지 않지만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1970년대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면서 정치권에 파란을 일으킨 바 있다. 하지만 50년 전 일이다. 이후 여의도 정치는 계속 늙어갔다. 정치권의 주류는 여전히 50, 60대다. 총선에서 당선자의 평균 연령은 17대 51세에서 18대 53.5세, 19대 53.9세, 20대 55.5세로 점점 높아졌다. 전체 유권자의 약 40%가 2030세대지만 30대 국회의원은 3명에 불과하다.

반면 주요 선진국에서는 세대교체 바람이 불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이 39세의 나이로 대통령에 당선됐고,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와 제바스티안 쿠르츠 오스트리아 총리는 34세의 나이로 국가지도자가 됐다.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38세의 부티지지가 쟁쟁한 경력을 갖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79), 조 바이든 전 부통령(78)과 맞서 선전하고 있다. 우리에겐 왜 젊은 정치 지도자가 없는 것일까.

○ 돈 없어서 출마 못 하는 청년 정치인

서울 동대문을에 출마한 민주당 장경태 청년위원장(37)은 지난달 지역 선거사무소를 내기 위해 부동산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그전까지 250만 원이던 사무실 월세가 일주일 만에 500만 원으로 오른 것. 건물주가 선거를 앞두고 사정이 급한 정치인에게 월세를 높인 탓이었다. 장 위원장은 결국 계약을 포기하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월세가 싼 다른 사무실을 계약할 수 있었다. 장 위원장은 “청년 정치인이 기성 정치인과 경쟁하는 것은 경차와 대형차의 대결 수준”이라고 말했다.

서울 송파병에 미래통합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김성용 씨(34)는 대한민국에서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금수저를 제외하면 청년정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김 예비후보는 “1년 전 출마해서 지금까지 쓴 돈이 2억 원이 넘는다. 막노동, 사업, 후원금을 겨우 끌어모은 돈”이라며 “첫 출마인데, 선거가 끝나면 엄청 큰 빚쟁이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20, 30대 청년 후보가 겪는 첫 번째 장벽은 ‘돈’이다. 기탁금, 각종 여론조사, 사무실 임차, 현수막과 명함 제작, 선거운동원 인건비, 차량과 앰프 사용료 등 국회의원 선거에 드는 비용은 ‘억 단위’다. 후원회를 만들더라도 청년이 충분한 돈을 모금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결국 자신이 가진 돈을 써야 하는데 사회에 진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청년 정치인에게는 큰 부담이다.

대부분의 청년 정치인은 개인 사업, 아르바이트 등으로 돈을 충당하면서 출마를 준비한다. 사정이 어렵다 보니 지인들에게 조금씩 돈을 빌리기도 한다. 20대 총선에 출마했던 B 씨는 선거를 준비하면서 주변에 100만∼200만 원씩 돈을 빌리고 차용증을 썼다가 갚지 못했다. 더 이상 돈을 빌릴 수 없었던 B 씨는 결국 이번 총선 출마를 포기했다.

○ 현역 의원 견제, 청년 유권자 외면…

같은 당 현역 의원이 버티고 있는 지역구에 도전장을 낼 경우 더욱 험난한 가시밭길이 열린다. 견제 때문이다. 수도권에 출마한 한 30대 예비후보 C 씨는 당내 경선 투표에 참여하는 권리당원 데이터베이스가 없어 권리당원들에게 선거운동 문자메시지를 거의 보내지 못한다. 현역 의원이 주로 맡는 지역위원장에게만 당원 명부가 공개되기 때문이다. 해당 의원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C 씨와 친분이 있는 국회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불출마를 종용했다고 한다. C 씨는 “같은 당 지역구 현역 의원이 버티고 있는 경우 완벽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말했다.

어렵게 출마에 성공해도 청년 정치인들이 겪는 벽은 또 있다. 청년을 ‘국회의원감’이 아니라고 보는 일부 유권자의 고정관념 또한 만만치 않다. 민주당의 한 3선 의원은 “40대 중반은 돼야 지역구 유권자들이 정치인으로 취급하는 게 현실”이라며 “지역을 다녀보면 청년들도 같은 또래의 청년 정치인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했다. 미래통합당 소속으로 서울에 출마한 30대 후보는 “청년 정치인이 선거운동을 나가면 당장 ‘당신이 후보가 맞냐’는 질문부터 받는다”며 “유권자들이 청년 정치인을 낯설어하는 장벽부터 넘어야 한다”고 했다.

○ 제한된 ‘청년 몫’ 상호 비방하며 제 살 깎아먹기

총선 때마다 정당들은 2030세대의 표심을 겨냥해 청년 몫을 배정하겠다고 발표한다. 대체로 선거마다 비례대표 한 석 정도가 ‘청년 몫’으로 할당되는데, 당내 청년 후보들은 이 자리를 두고 무한 경쟁을 펼치게 된다. 자연스럽게 경쟁자가 죽어야 내가 살아나는 ‘서바이벌’ 구조가 생겨난다.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청년 정치인들은 서로를 비방하게 된다. 그 결과 당에서 오래 활동한 청년 정치인에게는 어김없이 “언행이 가볍다” “지나치게 꽃길만 걸으려고 한다” 같은 혹평이 따라온다.

청년 정치인의 정치력과 결단력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출마하는 청년들을 보면 기득권의 발밑에 어떻게든 편입되기 위한 모습을 보일 뿐 그들에게서 청년 정신을 찾을 수가 없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4·15총선에서도 청년 정치가 꽃피우기는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이 1차와 추가 공모를 통해 모집한 공천 신청자 486명 중 2030세대는 10명(2%)에 불과했다. 이전 총선보다 청년 가산점을 높이면서 2030 출마자가 다소나마 많아진 미래통합당 역시 공천 신청자 813명 중 20대는 5명, 30대는 42명으로 전체의 5.8%였다.

○ 영입으로 채워지는 ‘청년 몫’…훈련 시스템 요원

그나마 있는 청년 정치인의 자리는 대부분 외부 영입 인재들이 채우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최혜영 장애인식개선교육센터 이사장(40·여)을 1호로 영입했고, 미투 논란으로 탈당한 원종건 씨(27)와 오영환 소방관(32) 등을 데려왔다.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은 탈북자 인권운동가 지성호 씨(38)와 ‘체육계 미투 1호’로 알려진 전 테니스 선수 김은희 씨(29·여)를 영입했다.

이들이 정치권에 안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전망이 많다. 한 30대 비서관은 “유력 정당의 정치인들은 청년을 소모품 정도로 여긴다. 선거철에 두세 명 영입해서 활용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주요 정당들은 청년 인재 육성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정작 이들을 교육하고 키워낼 의지도 시스템도 없다. 장경태 청년위원장은 “평사원에서 임원이 되는 것은 스토리라고 보지만 평당원에서 당 간부가 되는 것은 줄을 잘 선 덕분이라고 말한다”고 했다.

반면 미국과 유럽의 경우 하늘에서 떨어진 ‘벼락 스타’는 없다. 청년 정치인 대부분이 지역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중앙정치에 진출한다. 부티지지 역시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으로서 지역경제를 살려낸 공으로 지역에서 지지를 받았고, 대선 도전의 발판이 됐다.

반면 한국에서는 시구의원으로 출발한 청년 의원들은 이른바 ‘지방의원급’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국민의당 주이삭 서대문구 의원(32)은 “통상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지역구 인기를 관리하기 위해 시구의원을 심부름꾼으로 활용한다”며 “지역구민의 민원을 해결하고, 공무원을 달달 볶고, 예산을 좀 따오는 역할에 한정시킨다”고 지적했다.

청년 정치의 해법은 무엇일까. 결국 지금의 2030세대가 합심해 정치문화 혁신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한 선거기획사 대표는 “한국이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윗세대가 한꺼번에 은퇴했고, 그 자리를 586세대가 차지했다”며 “각 분야에서 주류가 된 이들이 서로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는 한국 사회의 주류를 구성했다”고 진단했다. 이어 “반면 지금의 2030은 모두가 흩어진 세대”라며 “이들이 힘을 모으지 않는 한 기성세대를 밀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주 의원은 “지금의 2030세대가 합심해 지방정치에서 성과를 내고 중앙정치로 진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10년 뒤 우리가 중앙정치에 진출해 만 18세도 출마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이들이 20대 후반에 국회의원, 장관을 할 수 있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다빈 정치부 기자 empty@donga.com
#4.15총선#청년 정치인#보여주기식 영입#청년 유권자 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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