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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청년은 돈을 사랑하게 되었나[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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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청년은 돈을 사랑하게 되었나[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입력 2020-02-24 03:00수정 2020-02-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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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기생충’이 그린 지옥도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은 비싼 대가를 감수하고 계급 상승을 위한 여정을 떠난다. 플레인아카이브·CJ엔터테인먼트 제공
많은 사람들이 ‘기생충’을 빈부 격차에 대한 우화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진짜 가난을 겪은 사람들은 말할지 모른다. ‘기생충’의 빈민 묘사는 가짜라고. 진짜 가난한 사람은 대학 재수를 꿈꿀 수 없다고. 과외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없다고, 부잣집에 자신을 소개해 줄 친구도 없다고. 북한 핵 문제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을 처지가 아니라고. 질세라, 진짜 부자들도 ‘기생충’을 보며 말할지 모른다. ‘기생충’의 부유층 묘사는 가짜라고. 진짜 부자는 저렇지 않다고. 모르는 사람에게 함부로 아이 교육을 맡기지 않는다고. ‘인디언’ 놀이 따위는 하지 않는다고. 부자라고 꼭 싸가지 없는 건 아니라고.

‘기생충’의 관심은 빈자나 부자보다는 몰락한 중산층에 있다. ‘기생충’이 부자-빈자 대비에 대한 영화로 느껴지는 것은 중산층에 대한 묘사가 곳곳에서 정교하게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 사장네로 가는 출근길에서조차 기택은 중산층을 만나지 않는다. ‘기생충’이 보여주는 빈부는 빈부 그 자체가 아니라, 몰락한 중산층이 상상하는 빈부이다. 그 빈부는 종종 기택네 가족의 시점 숏을 통해 관객들에게 제시된다.

집에 안분지족(安分知足)이라는 족자가 걸려 있건만, 기택은 자기 처지를 견디지 못하고 계급 상승을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중산층에서 빈자로 추락한 이가 다시 상승하기 위해서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삶의 위엄을 포기하는 비싼 대가. 토종 가부장 기택은 이제 부잣집 사모님의 장바구니를 들어야 하고, 주인집 아이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광대 노릇을 해야 한다. 자신을 낮추어야 돈을 벌 수 있고, 돈을 벌어야 계급 상승이 가능하다. 호시절을 떠올리며 허세를 부려봐야 가난에서 탈출할 수 없다. ‘기생충’의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기택은 이 모든 모욕을 감수할 수 있을 것인가. 정녕 삶의 위엄을 버릴 수 있을 것인가.


기택 가족이 사는 반지하 주택에 있는 화장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어엿한 생존을 위해 삶의 위엄을 버렸을 때 인간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지난 100년간 한국사에서 반복된 이 질문을 다시 한번 던진다는 점에서, ‘기생충’은 김동인의 소설 ‘감자’의 계보를 잇는다. 한때 나름 양반집 자식이었던 복녀는 가난을 탈출하기 위해 몸을 팔기 시작한다. 어엿한 생존을 위해서 몸을 팔 때, 복녀는 삶의 위엄을 버린다. 아니, 결국 버리지 못한다. 상처받은 삶의 위엄을 되찾기 위해 난동을 부리고, 복녀는 결국 살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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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택도 결국 버리지 못한다. 부잣집 파티의 ‘인디언’ 광대는 자신의 상처받은 가부장적 위엄을 되찾기 위해 난동을 부리고, 결국 사회로부터 격리당한다. 아니, 제 발로 지하실에 걸어 들어간다. 공적인 감옥이 아니라 사적인 감옥에 자신을 가둔다. 공적인 감옥에는 형기(刑期)가 있지만, 사적인 감옥에는 형기가 없다. 새로운 가부장으로 등극한 아들이 아주 많은 돈을 벌어 그 집을 아예 사버릴 때까지 계속 갇혀 있어야 한다. 이제 아들이 가진 삶의 목표는 단순하다. 돈을 버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버는 것이다. 벌고 또 벌어 그 큰 감옥 전체를 다 살 수 있을 때까지. 그리하여 소위 ‘가족’을 재건할 때까지. 미치도록 벌어야 한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의 긴 제목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나는 어찌하여 근심을 멈추고 폭탄을 사랑하게 되었나’이다. 마찬가지로 ‘기생충’에도 긴 제목을 달아 주고 싶다. ‘기생충, 왜 이 청년은 빈둥대기를 멈추고 돈을 그토록 사랑하게 되었나’. ‘기생충’이 그린 이 지옥도는 100여 년의 근대화 여정 끝에 한국인이 마침내 도달한 막다른 골목이기도 하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기생충#지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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