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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앞 ‘1인치 벽’, 아직은 높다[오늘과 내일/박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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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앞 ‘1인치 벽’, 아직은 높다[오늘과 내일/박용]

박용 뉴욕 특파원 입력 2020-02-22 03:00수정 2020-02-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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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성공이 보여준 해법, 품질 높이고 접근성 더 넓혀야
박용 뉴욕 특파원
지난해 10월 미국 뉴욕에서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때문에 두 번 놀랐다. 개봉 둘째 날 맨해튼 극장에 이 영화를 보러 갔다가 헛걸음을 했다. 외국어 영화이니 당일 표가 있겠거니 했지만 웬걸, 표는 이튿날까지 매진이었다. 칸 영화제 수상작이라는 화제성에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등 주요 일간지까지 주목하긴 했지만 이 영화의 반응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일주일을 더 기다려 극장을 찾았다가 또 놀랐다. 생각보다 현지인 관객이 많았다. 자막이 달린 외국어 영화였지만 몰입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는 게 현지 관객들의 반응이었다. 그 덕분에 뉴욕 한복판에서 한국인은 한국어로, 현지인들은 자막을 읽으며 영화를 즐기는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 여세를 몰아 기생충은 자막이 달린 비영어권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쥐며 비영어권 영화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봉 감독의 말대로 미국 영화 관객들이 자막이라는 ‘1인치의 벽’을 넘어서자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방탄소년단(BTS) 등이 이끄는 케이팝에 이어 기생충으로 대표되는 충무로 영화가 미국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물론 세계 각국 문화가 뒤섞인 문화의 ‘용광로’ 뉴욕 출신답지 않게 거부감을 드러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처럼 기생충의 오스카상 수상이 반갑지 않은 이도 여전히 많다. 한국 문화산업 전반으로 시야를 돌려 보면 장막처럼 둘러쳐진 ‘1인치의 벽’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최근 기업설명회(IR)를 하러 미국을 방문한 김인규 하이트진로 대표는 “미국 식당에서 소주를 ‘코리안 사케’라고 설명해 놓은 것을 보고 열을 확 받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국에서 날렵한 근육질의 씨름 선수들이 팬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내면서 씨름 선수를 ‘스모 레슬러’에 비유해 한국인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뉴욕에서 만난 한 동포는 미국에서 신선한 막걸리를 빚어 팔기 위해 주류 허가를 받는 데 3년이나 걸렸다고 말했다. 쌀과 누룩으로 빚은 막걸리를 모르는 미국 당국자에게 설명을 하고 ‘라이스 와인’이라는 항목으로 간신히 허가를 받았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소주를 ‘라이스 와인’으로 부르기 때문에 막걸리와 소주를 구분하기조차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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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문화는 언어적, 문화적 유사성이 있을 때 빠르게 확산된다. 시장 개척을 위해 해당 문화권에서 친밀한 유사 문화상품을 찾아 습관처럼 비유하다 보면 문화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알릴 기회는 사라진다. 소주는 사케, 씨름은 스모의 범주를 벗어나기도 힘들다. 우리가 뉴욕에서 한국 씨름을 알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를 돌아보면 ‘코리안 스모’ 대접에 화만 낼 일도 아니다.

기생충이 ‘1인치의 벽’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은 미국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탄탄한 작품성과 다양한 외국 콘텐츠를 소개해 시청자의 선택권을 넓힌 넷플릭스와 같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의 성장이 큰 몫을 했다.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품질과 현지에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을 개척하려는 투자와 의지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흥미로운 점은 미국 유력 신문들이 요즘 ‘먹방(Mukbang)’ ‘눈치(Nunchi)’ 등 한국 특유의 문화를 소개하며 한국어를 그대로 살려 영어로 소개한다는 점이다. 문화의 고유성과 독창성을 인정받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한국 문화산업이 1인치의 벽을 넘어 세계 시장의 판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되려면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
#기생충#봉준호#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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