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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플래시100]진작 이랬다면 ‘82년생 김지영’이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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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플래시100]진작 이랬다면 ‘82년생 김지영’이 있었을까요?

이진 기자 입력 2020-02-10 16:02수정 2020-03-16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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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4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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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은 방안에 갇혀있던 한국 여성들을 대문 밖으로 불러낸 강력한 자극제였습니다. ‘독립만세’를 외칠 때는 남녀 사이의 장벽도 노소의 차이도 문제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3·1운동 때 여학생이 일제 경찰에 맞서 용감하게 만세를 부르다 팔이 잘리는 등 많은 여성들의 영웅적 행동은 남녀차별이라는 인습의 틀을 해체시키는 강력한 힘이 됐습니다.

작년 2월 2일자 동아일보 ‘3·1운동 100년 역사의 현장 제33화’에는 광주 수피아여학교 학생 윤형숙의 처절한 만세항쟁이 자세하게 소개돼 있습니다. 19세의 꽃다운 여학생이었던 윤형숙은 3월 10일 만세시위에 나섰고 일제 기마헌병이 휘두른 군도에 왼팔을 잃었습니다. 윤형숙은 성한 오른손으로 왼팔이 움켜쥐고 있던 태극기를 빼들고 더 큰 소리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일제 경찰이 취조를 할 때도 윤형숙은 “나는 보다시피 피를 흘리는 조선의 혈녀다”라고 꼿꼿하게 버텼습니다. 그가 ‘광주의 유관순’으로 불리는 배경이었죠.

물론 하루아침에 우리 여성들이 깨우치고 남성과 똑같은 대접을 받았을 리 없습니다. 1919년 중국과 만주 등에 있던 여성들이 조직한 대한부인회가 4월 선포한 ‘대한독립여자선언서’만 봐도 과거의 무게가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선언서는 ‘뜻이 있는 남자들은 각처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만세를 부르는데 우리들은 그 중에 눕고 일어나면서 무지몽매하고 신체가 허약한 여자의 일단이나’라고 표현합니다. 아직 스스로를 낮게 보는 관성이 뚜렷하죠.

박인덕 여사
동아일보 1920년 4월 2일자에 실린 박인덕의 기고 ‘현대조선과 남녀평등문제’는 남존여비의 굴레를 벗어던지자는 주문이자 호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인덕도 ‘다수 여자들이 남녀평등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직 들어보지도 못했고 꿈도 꾸지 못했다’고 인정하긴 합니다. 그러면서도 ‘학문을 배우고 인격을 갈고 닦아 남녀가 함께 전진하자’고 요청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박인덕이 당시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던 ‘신여성’을 못마땅하게 여겼다는 점입니다. 신여성이라고 하면 ‘양장’ ‘양산’ ‘모자’ ‘안경’ ‘뾰족구두’로 치장한 여성을 가리킵니다. 그때는 비녀를 빼버리고 머리를 자른 ‘단발 여성’까지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이 멋쟁이 신여성 중에 정조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선언하고 자유연애를 감행하거나 남의 후처나 첩이 돼 손가락질을 받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박인덕은 이런 부류의 신여성은 여성도 배워야 한다는 요구에 장애물이 될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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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뒤 여자들도 배워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된 건 아주 고무적이었습니다. 동아일보 1920년 4월 2일자 ‘변하여 가는 학생기풍’ 기사에는 백발의 시아버지가 쪽 찐 며느리를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로 데려온 사례가 들어 있습니다. 도쿄에 유학 간 아들이 아내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이혼하거나 첩을 얻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이었죠. 여성 교육과 인식 개선이 진작 이뤄졌다면 오늘날 ‘82년생 김지영’의 고생은 좀 덜어지지 않았을까요?

기고자 박인덕은 평안남도 진남포 출신으로 1916년 이화학당 대학부를 졸업했습니다. 이화학당 교사로 근무하다 맞은 3·1운동 때 학생들의 만세시위를 선동했다는 이유로 서대문감옥에서 4개월 간 옥고를 겪었습니다. 이때 제자였던 유관순의 순국을 목격했죠. 동아일보 기고는 대한독립애국부인회 등의 활동으로 두 번째 투옥된 이후 쓴 것으로 보입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원문

現代朝鮮(현대조선)과 男女平等問題(남녀평등문제) - 朴仁德(박인덕)…1920년4월2일7면

敢(감)히 拙筆(졸필)을 들고 現代朝鮮(현대조선)과 男女平等(남녀평등)이란 問題(문제)를 試考(시고)하매 心臟(심장)이 뛰고 뜨거운 피가 온몸에 循環(순환)함니다. 우리 朝鮮女子(조선여자)의 過去(과거)를 回顧(회고)할 때에는 實(실)로 寃痛(원통)하고 可憐(가련)한 생각이 남니다. 幾千年(기천년)을 두고 우리 女子(여자)들은 人(인)의 本義(본의)를 이저버리고 男子(남자)의 拘束(구속) 下(하)에서 一動一靜(일동일정)을 그들의 뜻대로 하고 隷屬生活(예속생활)을 하여왓슴니다. 一步(일보)라도 閨中(규중)을 버서나 快活(쾌활)한 運動(운동)을 暫時(잠시)도 못하고 粉骨碎身(분골쇄신)하야 그들의게 服役(복역)할 뿐이엿슴니다. 게우 逐出(축출)이나 당하지 안으면 女子(여자)에게는 한 幸福(행복)으로 생각하고 獄中生活(옥중생활)과 갓치 世界(세계)가 엇더한지 몰으고 寂寞(적막)한 歲月(세월)을 보내고 말엇습니다. 만은 우리가 이러한 對遇(대우)를 밧음은 다 우리가 無敎育(무교육)하고 理想(리상)이 업섯든 까닭이지요. 決(결)코 男子(남자)들이 하고 십허서 함은 아니엇지요. 弱者(약자)난 强者(강자)에게 지고 小者(소자)난 夭者(요자)에게 눌님을 밧고、愚者(우자)는 智者(지자)에게 支配(지배)함을 밧음은 當然(당연)한 理致(이치)외다. 그럼으로 우리 女子(여자)의 悲運(비운)을 누구에게 呼訴(호소)하겟슴니가. 天地(천지)의 循環(순환)은 一秒(일초)도 쉬임이 업서 어니듯 嚴冬(엄동)은 지나가고 陽春(양춘)이 도라옴니다. 天地(천지)에난 惠光(혜광)이 가득하여 萬有(만유)의 生物(생물)이 움직임니다. 酷毒(혹독)한 치위에 파무치엿든 草木(초목)은 生氣(생기)를 펴고 깁히 잠드럿든 禽獸(금수)난 눈을 뜨개 되엿슴니다.

이제난 우리 半島女子(반도여자)들도 幾千年間(기천년간) 드럿든 잠을 휠신 깨고 이러나서 밧갓 구경을 하게 되엿슴니다. 나가보매 압집 뒤집 건너집 女子(여자)들은 벌서 이러나서 野原(야원)과 田園(전원)에 나아가서 땀을 흘니면서 努力(노력)을 함니다. 남들은 어머니나온 어머니 主婦(주부)다온 主婦(주부) 누이나온 누이 노롯을 함니다. 그리고 뎌들은 自己(자기)들의 本位(본위)를 차자가지고 相當(상당)한 事業(사업)을 함니다. 男女同權(남녀동권)을 爲(위)하야 女子參政權(여자참정권)을 엇기 爲(위)하야 奔走努力(분주노력)함니다.

今日(금일) 朝鮮女子(조선여자)들도 남들과 갓치 男女同權(남녀동권)을 主唱(주창)할만한 時期(시기)가 되엿슴니가? 못되엿슴니가? 이 果然(과연)한 問題(문제)올시다.

月前(월전)에 엇던 新聞上(신문상)에 『今日(금일) 朝鮮(조선)의 男女平等(남녀평등)은 絶對(절대)로 不可能(불가능)이라』난 問題(문제)가 揭載(게재)되엿씀듸다만은 그 問題(문제)를 가지고 幼穉(유치)스럽게 反駁(반박)을 하거나 辨明(변명)을 하려고는 아니함니다. 現代(현대) 朝鮮男女社會(조선남녀사회)를 硏究(연구)해 본 後(후)에야 男女平等問題(남녀평등문제)를 判決(판결)할 것이외다. 一般(일반) 아시난 바와 갓치 己往(기왕) 우리 女子(여자)난 社會(사회)의 團結(단결)이란 것은 少(소)하엿섯슴니다. 文明(문명)의 새빗치 半島(반도)에 비치이매 우리 女子(여자)도 비로서 敎育(교육)의 맛을 보게 되엿슴니다.

그러나 아직도 女子敎育(여자교육)이 얼마 되지 못하는 一千萬(일천만) 女子(여자)에게도 다 普及(보급)되지 못하엿슴니다. 所謂(소위) 先覺者(선각자)된 新女子(신여자)라 하는 이들이 무삼 事業(사업)을 □徹(철)히 한 것이 잇슴니가? 하나도 볼 수 업고 도로혀 虛榮(허영)의 惡魔(악마)가 腦(뇌)에 가득하여 現代(현대)의 우리 處地(처지)라든지 將來(장래) 우리의 義務(의무)를 自覺(자각)하기는 姑舍(고사)하고 身分(신분) 以上(이상)의 奢侈(사치)를 崇尙(숭상)하며 겨우 엇던 學校(학교) 卒業證書(졸업증서)나 하나 엇어가지고는 남의 再娶(재취)나 妾(첩)이 되야 비평만 우박갓치 밧아 女子敎育(여자교육)의 將來(장래)에 큰 妨害(방해)를 줄 뿐이엇슴니다.

그러나 이것은 少數(소수)의 過失(과실)을 가지고 말함이오 大部分(대부분)이 그렇다는 것은 아님니다. 이것은 너머 過大(과대)히 論駁(논박)하는 것지만은 事實(사실)은 그럿슴니다. 今(금)에 뎌― 男子社會(남자사회)의 內容(내용)을 살펴보면 우리 女子(여자)로는 참아 못할 慘酷(참혹)한 行動(행동)을 만히 함니다. 父母妻子(부모처자)는 飢渴(기갈)이 莫甚(막심)하여 손목을 붓들고 路上(로상)에 彷徨(방황)하되 自己(자기)는 酒色(주색)에 投身(투신)을 하고 精神(정신)을 다 일허바린 者(자)가 얼마인지 알 수 업슴니다. 그리고 一夫多妻(일부다처)의 惡習(악습)을 廉恥(렴치)업시 行(행)하야 家庭(가정)에서는 紛擾(분요)만 니러나서 妻屬(처속)은 生前(생전) 地獄生活(지옥생활)이 되고 말음니다. 우리 社會(사회)가 이러케 되어 가지고는 決(결)코 向上(향상)이 될 수 업는 것은 尺童(척동)이라도 아는 바이올세다.

此(차)에 反(반)하야 先覺(선각)한 女子(여자)들의 理想(이상)이나 行動(행동)을 論(논)하면 男子(남자) 以上(이상)에 相當(상당)한 이도 업지 아니하다. 그러나 多數(다수)의 女子(여자)는 男女平等(남녀평등)의 問題(문제)가 무엇인지도 드러도 못보고 꿈도 못한 者(자)가 만슴니다. 그련즉 우리 一般女子(일반여자)들은 어서어서 學問(학문)을 修養(수양)하야 상당한 人格(인격)이 되도록 努力(노력)하기를 힘쓰고 몬저 修養(수양)을 밧은 이는 一心精力(일심정력)을 다하여 우리의 責任(책임)은 우리가 擔任(담임)하고 男女社會(남녀사회)와 竝進(병진)이 되도록 하여야겟슴니다。

洋(양)의 東西(동서)와 時代(시대)의 古今(고금)을 勿論(물론)하고 우리 女子(여자)들이 男子(남자)와 同等地位(동등지위)에 서는 때는 男子(남자)들이 아모리 우리를 壓制(압제)하려 하야도 우리는 밧지 안을 터이외다.

우리 社會(사회)도 뎌― 歐米社會(구미사회)와 갓치 되고 優勝(우승)이 되려면 男女(남녀)가 꼭 平等主義(평등주의)를 가지고 互相扶助(호상부조)하며 猛進(맹진)하여야만 하겟슴니다. 半島女子(반도여자)들이여― 時(시)가 急(급)함니다. 갈길이 멈니다. 遠大(원대)한 理想(이상)을 가지고 勇進(용진)하십세다. 우리의 本位(본위)를 차즐 機會(기회)가 도라옴니다.
현대문

현대조선과 남녀평등문제 - 박인덕


감히 서툰 글로 현대조선과 남녀평등이란 문제를 시험 삼아 생각하니 심장이 뛰고 뜨거운 피가 온몸을 돕니다. 우리 조선여자의 과거를 되돌아볼 때에는 참으로 원통하고 가련한 생각이 납니다. 수천 년 동안 우리 여자들은 사람의 본뜻을 잊어버리고 남자의 구속 아래에서 모든 움직임을 그들의 뜻대로 하고 예속생활을 해왔습니다. 한 걸음이라도 지내는 방을 벗어나 활기찬 운동을 조금도 못하고 뼈를 가루로 만들고 몸을 부수다시피 그들에게 매어 살았을 뿐이었습니다. 겨우 쫓겨나지나 않으면 여자에게는 큰 행복으로 생각하고 감옥생활처럼 세계가 어떤지 모르고 쓸쓸한 세월을 보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대우를 받은 것은 다 우리가 교육을 받지 못했고 이상이 없었던 때문이지요. 결코 남자들이 원하는 대로 한 것은 아니었지요. 약자는 강자에게 지고 어린 사람은 젊은 사람에게 눌리게 되고 어리석은 자는 지혜로운 자에게 지배를 받음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여자의 슬픈 운명을 누구에게 호소하겠습니까. 천지의 순환은 일초도 쉬지 않아 어느덧 매서운 겨울은 지나가고 따뜻한 봄이 돌아옵니다. 천지에는 은혜로운 빛이 가득하여 모든 생물이 꿈틀거립니다. 혹독한 추위에 파묻혔던 풀과 나무는 생기를 펴고 깊이 잠들었던 짐승은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한반도의 여자들도 수천 년간 들었던 잠을 활짝 깨고 일어나서 바깥 구경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가보니 앞집 뒷집 건넛집 여자들은 벌써 일어나서 들판과 전원에 나가서 땀을 흘리면서 노력을 합니다. 남들은 어머니다운 어머니, 주부다운 주부, 누나다운 누나 노릇을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의 제자리를 찾아가지고 상당한 사업을 합니다. 남녀동권을 위해, 여성참정권을 얻기 위해 바삐 뛰어다니며 애를 씁니다.

오늘날 조선여자들도 남들과 같이 남녀동권을 외칠만한 때가 되었습니까? 안 되었습니까? 이는 정말로 문제입니다.

지난달 어떤 신문에 “오늘날 남녀평등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라고 하는 문제가 실렸습디다만 그 문제를 가지고 유치하게 반박을 하거나 변명을 하려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현대 조선남녀사회를 연구해 본 뒤에야 남녀평등문제를 판단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것과 같이 과거 우리 여자들은 사회적 단결이 약했습니다. 문명의 새 빛이 한반도에 비치니 우리 여자도 비로소 교육의 맛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여자교육이 얼마 되지 않는 1000만 여자에게도 모두 보급되지 못했습니다. 이른바 선각자가 된 신여성이라고 하는 이들이 무슨 사업을 □철히 한 것이 있습니까? 하나도 볼 수 없고 도리어 허영의 귀신이 머리에 가득해 현대의 우리 처지라든지 장래 우리의 의무를 깨닫기는 고사하고 분에 넘치는 사치를 떠받들며 겨우 학교 졸업장이나 하나 얻어가지고는 남의 후처나 첩이 돼 비난만 우박같이 받아 여자교육의 장래에 큰 방해를 줄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소수의 잘못을 말하는 것이지 대부분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너무 지나치게 논박하는 것 같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이제 저 남성사회의 속내를 살펴보면 우리 여자로는 차마 못할 끔찍한 행동을 많이 합니다. 부모와 아내, 자식은 매우 굶주려 손목을 잡고 거리를 헤매는데 술과 여자에 빠져 정신을 모두 잃어버린 사람이 얼마인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되어 가지고는 결코 향상될 수 없는 것은 어린아이라도 알 것입니다.

이에 반해 일찍 깨우친 여성들의 이상이나 행동을 말하면 남성 못지않은 상당한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수 여자들은 남녀평등의 문제가 무엇인지 들어보지도 못했고 꿈도 꾸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전체 여성들은 하루빨리 학문을 익혀 상당한 인격을 갖추도록 힘써 노력하고 먼저 배운 사람은 마음과 힘을 다해 우리의 책임은 우리가 지면서 남녀사회와 함께 전진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동양과 서양, 옛날과 오늘날을 막론하고 우리 여자들이 남자와 동등한 지위에 서는 때는 남자들이 아무리 우리를 억누르려고 해도 우리는 받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도 저 구미사회와 같이 되고 싸워 이기려면 남녀가 반드시 평등주의를 통해 상호부조하며 맹렬하게 전진해야만 하겠습니다. 한반도의 여성들이여! 때가 급합니다. 갈 길이 멉니다. 원대한 이상을 가지고 용감하게 나아갑시다. 우리의 자리를 찾을 기회가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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