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가 쥐약’인 줄 국민이 알아야[오늘과 내일/김광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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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 결정이라고 다 옳지는 않아… ‘묻고 더블로 가!’의 종착지는?

김광현 논설위원
김광현 논설위원
지하 주차장도 없는 15층 아파트 1층 주민에게 엘리베이터 사용료를 내라는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가 나왔다면 주민들 반응이 어떨까? 1층 주민이라면 “말도 안 되는 소리”, 다른 층 주민들이라면 “공동 시설인데 당연히 내야지”라고 할 것이다. 실제 이런 분란이 종종 벌어진다. 재판으로 간 경우도 있고, 국회 격인 입주자대표회의에서 투표로 결정된 사례도 있다. 투표의 경우 짐작대로 1층 주민도 내야 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 경우가 많았다. 다수의 결정이라고 반드시 공정하고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바야흐로 누구나 한 표를 행사하는 선거 시즌이다. 정당과 후보자들이 다양한 공약을 내걸고 표심을 유혹하고 있다. 그런데 가장 많은 표를 얻을 만한 약속이 가장 합리적인 정책일까.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운 공약도 더러 있다. 예컨대 만 20세 청년 전원에게 3000만 원씩, 부모가 없는 청년에게는 최대 5000만 원씩 정부가 지급하겠다는 ‘청년기초자산제’는 여당인지 야당인지 분간이 안 가는 정당의 총선 1호 공약이다. 화끈한 만큼 뒷감당이 불감당인 약속이다.

이뿐만 아니다. 농어민수당, 노인수당, 아동수당 등 이미 있는 여러 이름의 수당을 이중 삼중으로 더 올려주겠다는 공약이 여야 가릴 것 없이 난무하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수당(手當)’을 ‘정해진 봉급 이외에 따로 주는 보수’라고 풀이하고 있다. 앞으로는 ‘정부로부터 그저 받는 돈’이란 뜻이 추가되게 생겼다.

정치인이 표를 좇는 것은 일견 이해할 만하지만 그래도 정도가 있다. 작년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이 2.0%였다. 올해 정부 목표가 2.4%다. 작년 정부 예산 증가율은 9.5%였다. 올해는 거기서 9.3% 더 늘렸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묻고 더블로 가!’ 식이다. 이 중 현금복지 사업은 작년에 비해 10.6% 증가했다. 성장률의 4∼5배나 되는 예산 지출, 그것도 현금 살포식 지출 증가가 계속 가능하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대국민 사기극, 미래 세대에 대한 약탈 행위나 다름없다.

조세 저항 없이 생색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 빚 끌어다 현금 봉투 뿌리는 일이다. 그래서 국가 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추세다. 그 폐해는 반드시 누군가에게 돌아갈 것이다. 특히 빚 보따리가 다음 세대의 어깨를 짓누를 게 뻔하다.

그래서인지 최후의 선택이 늘고 있다. ‘발로 하는 투표’, 즉 이민 열풍과 기업 탈출이다. 최근 여기저기서 거의 매주 열리는 이민설명회는 예약 없이는 입장도 안 될 정도로 성황이다. 외교부 통계로도 작년 해외 이주 신청자가 1년 새 5배 가까이 늘었다. 미국 캐나다 호주에 갈 형편이 안 되면 말레이시아라도 가겠다면서 동남아 이민 문의가 폭주한다고 한다.

기업도 떠난다. 기업들이 나라 밖으로 싸들고 나간 돈, 즉 해외직접투자(FDI) 금액이 작년 3분기까지 444억5000만 달러로 전년에 비해 21.6% 증가했다. 1년 총액으로 500억 달러가 넘을 것이 확실시된다.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81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반대로 한국에서 사업하겠다고 들어온 돈은 작년 3분기까지 134억85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29.8% 줄었다. 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가면 일자리는 누가 만들고 세금은 누가 낼 것인가.

오랜 경험을 가진 경제 관료들은 ‘이건 아닌데’ 싶지만 겉으로는 입도 벙긋 안 하는 게 정부세종청사 분위기라고 한다. 장차관에게 개인 집도 팔라 말라 하는 판에 청와대에 좌표 한번 잘못 찍혔다간 그나마 모기만 한 목소리도 못 내고 사라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공짜의 종착지가 어디인지를 보여주는 해외 사례는 지금도 널려 있다. ‘소경 제 닭 잡아먹기’라는 속담이 있다. 자식까지 생각한다면 결국은 국민이 눈을 똑바로 뜨는 수밖에 없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총선#현금성 복지#해외 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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