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사건’은 왜 일어났나…‘남산의 부장들’ 감독이 던지는 물음표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9일 13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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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는 수수께끼처럼 남아 사람들 주위에 오랫동안 맴돈다. 우민호 감독(49)에게는 책 ‘남산의 부장들’(김충식·폴리티쿠스)이 그랬다. 군에서 제대한 이후 우연히 접한 이 책은 단숨에 그를 매료시켰고 880쪽에 이르는 원작은 단박에 읽혔다. ‘내부자들’(2015년) ‘마약왕’(2018년) 같이 우리 사회에 단단히 발붙이고 있는 이야기에서 시작해 그 이면을 쫓아온 그가 이번엔 ‘10·26’을 소재로 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22일 개봉)로 돌아왔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지만 ‘왜 그런 사건이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에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소재를 선택한 그를 서울 광화문의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에서 만났다.

“원작은 중앙정보부의 시작과 끝, 현대사의 중요한 장면들을 방대한 분량에 걸쳐 이야기하는데 그게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영화로 만들면 10시간짜리는 될 텐데 1, 2, 3부로 나눠서 전체를 만들어 볼까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는 10·26을 특수한 역사적 사건이면서 동시에 조직사회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보편적인 사건으로 해석했다. “그 사건이 뚜렷한 대의명분이나 논리적 인과관계가 아니라 인물들 사이의 감정과 관계, 그리고 그것의 파열과 균열에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사건을 거시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인물의 내면과 심리를 극대화하는 데 집중했어요.”

영화는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과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의 충성경쟁과 권력의 정점에 있는 박통(이성민), 미국에서 정권의 부패를 폭로한 전직 중앙정보부장 박용각(곽도원)을 오가며 대통령 암살 사건 발생 전 40일을 치밀하게 재구성했다.

실화가 갖는 흡인력에 빈틈없는 대사, 베테랑 배우들이 그리는 섬세한 감정연기가 밀도를 더했다. 배우들은 러닝타임 내내 예민한 지진계처럼 아주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감정까지 묘사하고 카메라는 절제된 화면 속 배우들의 감정 변화를 집요하게 ¤는다. 원작에서 받은 느낌을 고스란히 화면으로 구현하려 애쓴 결과다. 시사 후 원작자인 김충식 가천대 교수는 우 감독에게 ‘내가 만든 사진첩을 우 감독이 풍경화로 그려낸 것 같다’는 평을 남겼다.

“원작이 가진 이야기의 힘, 문체가 갖는 힘이 좋았습니다. 흥분하지 않으면서 깊고 날카롭게 파헤치는 태도와 시선을 영화에서는 감독의 시선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감독의 의도에 맞춰 배우들은 압도적인 연기를 펼친다. 이병헌은 눈빛과 한 올 흐트러짐 없는 머리카락까지도 충성스러운 중정부장에서 점차 평정심을 잃어가는 김규평을 재현한다. 2인자들의 충성 경쟁 속에서 점차 히스테릭해지는 박통의 불안과 공포를 이성민은 실감나게 그려냈다. 궁정동 안가(安家)의 텅 빈 방안에서 박통이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황성옛터’를 부르는 장면은 독재와 권력 암투 이면의 허무함 그 자체다.

연기가 원작의 집요함을 닮았다면 카메라는 날카롭고 절제된 필체를 닮았다. 우 감독은 1970년대 어딘가에 그대로 카메라를 들이민 듯 그때 그 시절을 빈틈없이 고증해 절제된 영상미로 재현해냈다. 미국으로 도피한 박용각이 체류한 워싱턴, 그가 실종된 프랑스 방돔광장은 어렵게 촬영 허가를 얻어 카메라에 담았다.

“종이 한 장만 봐도 지금 우리가 쓰는 것과 그때 쓰던 것이 달라요. 당시 유행하던 옷을 참고해서 디자인하고 사진 속 즐겨 입던 스타일도 참고했죠. 박통의 양복은 실제 그때 대통령의 양복을 직접 만드셨던 분을 찾아 제작을 의뢰했습니다.”

평가가 끝나지 않은 역사는 여전히 많은 물음표와 논쟁을 남긴다. 그는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물음표를 주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며 덧붙였다.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들어있어 더 흥미로웠습니다. 충성과 배신, 존중과 우정, 의리와 반역 같은 보편적인 감정이 소용돌이칩니다. 어느 조직이나, 심지어 가족 사이에도 있을 수 있는 충돌인데도 분명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죠. 인물의 행동이 쉽게 설명되지 않는 지점에 대한 판단은 관객이 해주셨으면 합니다. 영화를 보시고 계속 물음표를 찾아 나선다면 여러 세대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서현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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