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 ‘박근혜’ ‘짬짜면’ 이미지로는 미래 없다…위기의 황교안 리더십

  • 신동아
  • 입력 2020년 1월 18일 20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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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하게 시작했다 흐지부지 마무리
●반기문·이회창·김종필 데자뷔
●황교안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는 책, 공무원, 박근혜
●원칙 없는 보수통합은 毒
●친박 청산으로 새길 열어야

[동아DB]
[동아DB]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리더십은 화룡점정인가, 아니면 용두사미인가? 도무지 가늠하기 어렵다. 중요한 국면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고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양극단의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2020년 1월 시작된 이런 상황이 어떤 결말에 닿느냐에 따라 4월 총선의 운명은 판가름날 것이다.

황 대표는 지난해 말부터 현역 국회의원 108명 가운데 지역구 30여 명을 비롯해 전체적으로 절반가량을 물갈이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새해가 돼도 별 진전이 없다.

태산명동서일필
1월 9일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을 포함한 정당·사회단체가 중도·보수대통합을 위한 혁신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의했다. 이 자리에는 자유한국당을 대표해 이양수 의원(오른쪽)이 참석했다. [뉴스1]
1월 9일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을 포함한 정당·사회단체가 중도·보수대통합을 위한 혁신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의했다. 이 자리에는 자유한국당을 대표해 이양수 의원(오른쪽)이 참석했다. [뉴스1]

황 대표 리더십은 번번이 이런 식이었다. 처음에 요란하다가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단식도 삭발도 의원직 총사퇴 건도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었다. 2019년 11월 원유철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보수통합추진단을 출범시켰지만 두 달이 되도록 별 성과가 없었다. 황 대표는 보수통합을 위해 바른미래당 안철수계 의원들과 빠짐없이 ‘접촉’하거나 의사를 타진했다고 하지만, 전화를 걸었다는 것인지 직접 만났다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황 대표는 “크든 작든 보수통합은 될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오리무중이었다.

그러다 1월 9일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 등이 중도보수 통합신당을 2월 중 창당하기로 하고 통합추진기구를 출범했다. 감격한 원유철 단장은 “4·15(총선) 통합열차가 출발의 고동소리를 울렸다”고 외쳤다. 덩달아 한국당의 253개 지역 당협위원장이 일괄 사퇴를 선언하고, 초·재선 의원 70여 명과 친박계 의원들조차 보수통합에 무조건 찬성한다고 밝혔다. 황 대표가 대승적 견지에서 이른바 ‘유승민의 3원칙’을 수용했고, 이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만 합류하면 보수중도 대통합이 완성된다는 장밋빛 청사진이 일제히 언론을 장식했다. 한국당 내부에서는 황 대표가 마지막을 멋있게 장식하는 ‘화룡점정(畵龍點睛) 리더십’을 갖고 있다는 때 이른 찬사도 나왔다.

하지만 합의 사항이 발표된 지 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잡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당의 강성 친박계인 김진태 의원은 방송에서 “무조건 통합은 통합 프레임에 갇혀 뒷감당이 어렵다. 자칫 안방 내주고 옷을 다 벗게 된다”고 제동을 걸었다. 새보수당의 하태경 대표는 “황교안 대표가 합의 내용을 직접 공개 발표하라”고 요구했다. 이 와중에 황교안 리더십에 대한 뼈아픈 지적들이 튀어나왔다.

하 대표는 “중차대한 일에 정작 황 대표가 빠져 있다”고 지적했고, 한 언론은 “황 대표가 당 안팎의 통합 요구와 친박 세력의 압박 사이에 갇혀 있는데도 즉답을 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국당이 주도한 보수대통합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데, 당 대표인 황교안이 ‘빠져 있고 갇혀 있고 즉답을 피하고 있다’고? 또다시 용두사미인가? 앞으로 이러한 냉탕 온탕 상황이 얼마나 반복될지 지켜볼 일이다.

황 대표는 본인의 총선 출마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나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거나 “특정인이 아니라 이 정권과 싸우겠다. 아직 총선 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시간은 화살처럼 지나가고 있다.

그는 공수처법과 선거법 개정안 저지 과정에서 수십 차례 “죽기를 각오하겠다” “목숨을 걸겠다”고 다짐했지만 막상 여권이 강행 처리하자 속수무책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향후 통합도, 공천도, 총선도 오리무중에 빠지고 황교안 책임론과 총선 필패론이 언제든 튀어나올 수 있다.

한국당 내에서는 이미 연말부터 황교안 책임론이 나왔다. 국회에서 새해 예산안과 선거법, 공수처법을 막지 못한 데 대해 ‘투쟁도 못하고 협상도 못한 전략적 무능’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결사 저지 목소리가 높았을 뿐 범여권을 흔들 대응 카드나 협상 전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거나 “목숨을 걸겠다고 했지만 아무 성과도 없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올 초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3선의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여상규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황 대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황 대표가 목숨을 건 단식과 로텐더홀 철야농성을 하면서 투쟁했지만 최종 성과는 없었다. 성과 없는 투쟁은 리더십 부재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자유한국당 전체가 암흑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리더십도 비전도 전략도 없다. 당 대표직에 연연하면 안 된다. 최종 성과는 없었다.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

대세편승형 리더십 vs 대세주도형 리더십

홍준표 전 대표와 김영우 의원 같은 비박계 중진도 황 대표가 대표직을 내려놓고 보수대통합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황 대표처럼 큰 흐름을 주도하기보다 뒤늦게 따라가는 스타일을 ‘대세편승형’이라고 한다. 그는 본질적으로 공격형이 아니라 방어형이다. 상대 공격이 개시되면 방어하지 먼저 치고 나가지 않는다. 1월 9일 한국당과 새보수당 통합 협상 때도 대리인만 보이고 황 대표는 보이지 않았다. 알고 보니 황 대표가 직접 나서서 발표하려다 당내 친박 강경파 의원의 반대에 부딪혀 뒤로 빠졌다고 한다. ‘뛰뛰빵빵’ 경적을 울리다 갑자기 정적에 휩싸인 형국이다. 이는 능동적인 진두지휘형 리더십이 아니라 수동적인 막후섭정형 리더십에 해당한다. 마치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슷하다.

박 전 대통령은 집권 초 김무성-유승민 등 비박계 의원들에게, 중반에는 야당 의원들에게, 종국에는 촛불집회에 끌려다니다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재임기간 내내 큰 흐름을 시원하고 통쾌하게 주도적으로 끌고 나가지 못했다. 정치심리학의 원조 해럴드 라스웰에 따르면 행정가형, 즉 좌고우면하는 공무원 스타일이었다.

반대로 큰 흐름과 상황을 능동적으로 주도하는 것을 대세주도형이라고 한다. 노무현·김영삼 전 대통령, 미국 트럼프 대통령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요즘 황 대표에게는 대세주도형 리더십이 절실히 요구된다.

짬짜면 리더십으로는 안 된다

현재 황 대표 리더십을 짤막하게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 1. 모호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언론에 오르내리는 황 대표 이름을 오기(誤記)하는 네티즌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황교완, 황교한, 황교환…. 이름 끝이 모호한 것이다. 황 대표는 얼마 전 장외집회 때 문재인 대통령과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판하며 ‘문 아무개’라고 했고, 기자들에게 유승민 의원을 지목해 ‘유 아무개’라고 했으며, 자신과 가까운 전광훈 목사를 ‘그 목사’, 고등학교 동기동창인 고성국 박사를 ‘내 친구 K’라고 칭했다. 황 대표는 자기 이름이 모호하게 불릴 뿐 아니라 남의 이름도 모호하게 부른다. 그는 기본적으로 직접 화법보다 간접화법을 즐겨 사용한다. 한때 그의 머리카락이 가발이냐, 아니냐를 놓고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즉답을 피해 궁금증만 더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선 때 가발 논란이 일자 공개 생방송에서 스스로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단숨에 의혹을 끝장냈다. 그러나 황 대표는 지난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에 반발해 삭발 투쟁을 할 때야 비로소 가발이 아님이 확인됐다. 만약 이런 식의 모호함이 반복되고 불어나면 나중에는 ‘반기문 데자뷔’가 될 수 있다는 걸 유념해야 한다.

# 2. 투쟁성

“전체 차려엇-경례!” 1970년대 고등학교의 학도호국단 연대장(오늘날의 총학생회장)은 조회 때마다 군복 같은 교련복 차림에 긴 칼을 차고 역시 교련복을 입은 전체 학생 앞에서 이런 구령을 하곤 했다. 거의 군대식이었다. 당시 황 대표는 수재들만 모인다는 서울 경기고에서 학도호국단 연대장을 맡았다. ‘범생이’ 이미지와는 딴판 행보다.

검사 시절에는 테니스 동호회를 만들었는데, 당시 국내 최고 테니스 선수로 꼽히던 이형택과 친선 게임을 해 매우 공격적인 경기 방식으로 이겼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수준급 실력과 맹렬함을 갖고 있었다. 겉보기와 달리 운동신경이 좋다.

황 대표는 지난해 5월 민생대장정 때 18일 동안 전국 32개 도시 약 4080km를 이동할 만한 체력도 갖고 있다. 삭발-단식-의원직 총사퇴 공세를 통해 관료 출신답지 않은 강한 투쟁력을 보여줬다. 지난해 잇따른 장외투쟁에서 투사로 변신해 “목숨을 걸겠다”며 사자후를 토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회창 데자뷔’를 언급한 사람도 있다.

# 3. 짜장면 vs 짬뽕

중국식당에서 달달한 짜장면을 시키면 얼큰한 짬뽕이 생각나고, 얼큰한 짬뽕을 시키면 달달한 짜장면이 생각난다. 이런 고민의 해결책으로 나온 게 두 음식을 반반씩 섞은 짬짜면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너도나도 짬짜면을 찾을까? 아니다. 고민거리가 하나 더 늘어날 뿐이다. 황 대표는 부드러운 짜장면 스타일인가, 강력한 짬뽕 스타일인가? 아니면 짬짜면 스타일인가? 중국음식점 주인이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짬짜면을 내놓을 게 아니라 요리 솜씨를 높여야 한다. 짜장면이든 짬뽕이든 맛있게 잘 만들면 잘 팔린다. 황 대표도 제대로 된 리더십만 보여주면 된다. 만약 황 대표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짬짜면 정치’를 지속한다면 끝내 정상에 오르지 못한 ‘김종필 데자뷔’를 연상시킬 수 있다.

요즘 황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호남의 DJ와 충청의 JP를 합한 ‘DJP 전략’이 아니라 DJ의 협상력과 YS의 투쟁력을 합한 ‘DJS 전략’이 아닐까 한다. 밤늦게 집 서재에서 ‘노무현의 화법’을 몰래 공부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책, 공무원, 박근혜

2020년 2월 황 대표 리더십은 기로에 서 있다. #모호함 #투쟁성 #짜장면·짬뽕 키워드를 보면 황교안 리더십이 가진 한계가 보인다. 이질적인 요소가 뒤섞인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황 대표 본인뿐 아니라 자유한국당과 보수진영, 나아가 정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러자면 황 대표는 다음 세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질문1. 황교안 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2. 황교안은 보수대통합을 이뤄낼 수 있을까?

#질문3. 황교안은 친박 청산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황교안 하면 금방 떠오르는 단상(斷想)이 있다면 그것이 그의 정체성이요 리더십의 본질이다. 링컨 대통령 하면 구레나룻과 노예해방, 처칠 총리 하면 파이프 담배와 제2차 세계대전 승리가 떠오른다. 우리나라 정치인을 봐도 김대중 하면 ‘인동초’, 이명박 하면 ‘불도저’, 박근혜 하면 ‘공주’가 금방 따라온다.

문재인 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는가? 적폐청산? 검찰개혁? 정치공학이 아니라 정치심리학적으로는 ‘치아 10개’와 ‘수녀’ ‘화생방과 수중침투’가 떠오른다. 문 대통령은 과거 노무현 정부 초기 민정수석으로 재직하며 1년 동안 치아 10개를 뽑고 임플란트를 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꾹꾹 눌러 참는 내성적 성격으로 인한 극도의 스트레스 때문이다.

6·25전쟁 당시 거제도에서 피난 생활을 할 때 그에게 먹을 것을 건넨 수녀님의 ‘착한 사람 신드롬’은 그의 가슴속에 깊이 남아 있다. 또 공수부대 시절 혹독한 화생방훈련과 수중침투훈련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문 대통령의 인내심과 외유내강 기질을 잘 보여준다.

이들과 비교할 때 ‘황교안’은 아직 뚜렷하게 연결되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는 황 대표 이미지가 아직 정립되지 않았거나, 그의 리더십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하긴 그가 당 대표로 정치에 입문한 지 이제 2년차에 접어들었으니 정치 리더십을 확립하기에 이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굳이 단어를 찾아보면 도리 없이 ‘책’ ‘공무원’ ‘박근혜’가 떠오른다.

과업지향형 리더십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2018년 9월 7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기념관에서 열린 ‘황교안의 답’ 출판기념회에서 독자와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2018년 9월 7일 서울 서초구 매헌 윤봉길 의사기념관에서 열린 ‘황교안의 답’ 출판기념회에서 독자와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관료 출신 정치인 가운데 황 대표만큼 많은 책을 펴낸 사람은 드물다. 그것도 정치인이 흔히 출간하는 정치서가 아니라 학술적이고 종교적인 서적을 다수 집필했다. 모두 10권에 이르는데 절반이 법률, 나머지 절반은 종교에 대한 것이다. 법 쪽에서는 ‘국가보안법’(2011) ‘국가보안법 해설’(1998) 등의 책을 써서 ‘미스터 보안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가 쓴 종교서적은 ‘교회가 알아야 할 법이야기’(2016) ‘종교활동과 분쟁의 법률지식’(1998) 등으로 다분히 이론적이다.

이들 저서를 통해 황 대표 리더십의 특성을 알 수 있다. 첫째, 황교안의 사고체계는 법률 서적처럼 규격화돼 있다. 둘째, 보수적 사고방식이 강하다. 셋째, 신앙심이 매우 깊다. 이런 책을 쓰는 사람은 대체로 모범적이고 규범적이고 학구적이다. 반면 사고의 틀이 견고해서 대인관계가 경직되고 협소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지도자를 과업지향형(Task-oriented) 리더십의 소유자라고 한다. 과업지향형 지도자는 따뜻한 사적 인간관계보다 냉철한 공적 직무관계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공무원 스타일로, 정치인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다. 황 대표가 정치에 입문한 후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도 아마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여의도의 사적 인간관계일 것이다.

황 대표에게 좀 더 필요한 것은 친화력 있고 따뜻한 인간관계, 즉 인간중심형(Follower-oriented) 리더십이다. 책에 비유하면 법률서적이나 종교서적이 아니라 수필이나 소설, 만화라고 할까. 황 대표 본인은 색소폰을 불거나 ‘밤이 깊어 먼 길을 나섰습니다’ 같은 가벼운 제목의 에세이집을 펴내며 ‘부드러운 남자’의 면모를 보여주려 애쓰고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스킨십이 필요하다고 본다.

말수, 웃음, 행동 적은 3少형 정치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19년 4월 21일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열린 2019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에 참석했다.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19년 4월 21일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열린 2019 한국교회부활절연합예배에 참석했다. [원대연 동아일보 기자]

황 대표는 검사 재직 중 법무연수원 교관(1994), 사법연수원 교수(1997)처럼 가르치는 보직을 맡아 ‘가르치는 실력’을 발휘했다, 그의 리더십을 한자어 하나로 표현하면, 이름에 나오는 ‘가르칠 교(敎)’일 듯싶다. 교본, 교수, 학교, 종교 이미지 말이다.

황 대표의 인생과 정치철학, 정신세계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황 대표는 몇 년째 교회에서 어머니 명의로 장학금을 주고 있다. 아내도 복음성가 음반까지 낸 신학대학 교수다. 황 대표의 가슴속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처럼 자신을 희생해 세상을 구원해야 한다는 구도자적 사명감이 굳게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런 황 대표에게 보수적인 기독교 교단에서는 상당히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

리더십은 성격에서 기인한다. 황 대표의 공적인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과업지향형 리더십은 그의 내향적 성격에서 비롯될 것이다. 심리학자 카를 융에 따르면 내향형 사람은 대체로 말수가 적고 웃음이 적고 행동이 적은 3소(少)성향을 갖고 있다. 매사에 진지하고 진실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마디로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범생 스타일이다.

황 대표가 공석에서 파안대소하며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본 적 있는가? 언제 어디서나 점잖고 차분한 표정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게 내향형의 주된 특징이다. 이런 사람은 안정을 추구하고 예측 가능하다. 다만, 파격적인 변화와 화끈한 소통에 취약한 편이다. 황 대표는 향후 당내 문제와 대여(對與)관계, 대국민 접촉 과정에서 좀 더 밝고 적극적인 외향형 면모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과거 박근혜 대통령처럼 관저에 틀어박혀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단을 내리는 이미지로는 절대 국민 지지를 받기 어렵다.

황 대표는 그동안 관료 출신답지 않게 ‘강한 리더십’을 보여주는 데는 성공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좀 더 ‘탄력적인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정치권에서 중요한 변화와 소통과 열린 리더십이 더 필요하다,

보수통합과 친박 청산만이 살길

이제 ‘질문 2’로 넘어가 보자. 황 대표가 과연 보수대통합을 이뤄낼 수 있을까? 이는 황 대표의 협상력과 정치력, 스펙트럼을 가늠할 매우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1월 9일 보수대통합 선언을 계기로 급물살을 타고는 있지만 아직 산 넘어 산이다. 황 대표는 ‘통합은 정의, 분열은 불의’라고 선언할 정도로 통합 의지가 확고하다. 그러나 통합의 과정과 끝은 여전히 미지수다. 이 시점에서 황 대표가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은 통합의 원칙이다. 새보수당 유승민 세력, 바른미래당 안철수계, 우리공화당 태극기 세력, 국민통합연대 홍준표 그룹, 이언주 신당, 이정현 신당, 보수종교 전광훈 세력 등 누구든지 오면 다 받겠다는 것인가. 보수의 덩치가 커지면 선거에서 무조건 유리하다라고 생각한다면 아마추어적 발상이다. 안철수 전 대표는 “통합보다 혁신이 먼저!”라고 선을 그었고, 한국당 김진태 의원 같은 친박 강경파와 우리공화당 사람들은 박근혜 탄핵 문제를 놓고 무조건적 보수통합에 부정적 견해를 내비친다.

지금 황 대표에게 중요한 건 어떻게든 보수대통합을 이뤄내는 게 아니라 통합 추진 과정에서 정치력과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이다. ‘문재인 싫어하는 사람은 다 모여라’ 하는 식의 ‘묻지마 반문 연대’는 보수통합이 아니다. 반문 연대는 오히려 친문 연대를 강화해 역풍을 일으킬 수 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문재인 심판론’보다 ‘야당 심판론’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10%가량 더 높다. 운 좋게 보수통합이 이뤄져도 그 과정이 국민을 짜증나게 만들면 오히려 통합 역효과가 날 것이다. 반대로 보수통합이 미완성에 그치더라도 그 과정에서 황 대표가 진정성과 정치력을 보여주고 뼈를 깎는 자기 혁신을 한다면 통합 효과는 커질 것이다. 요컨대 통합이 능사는 아니다. 통합 과정에서 활짝 열려 있고 과감하면서도 원칙 있는 황교안 리더십을 국민에게 확실히 각인시켜야 한다.

황 대표 앞에 놓인 장애물은 또 하나 있다. 친박 청산이다. 달리 말하면 과감한 공천 혁신이다. ‘박근혜 그림자 지우기’는 난제 중의 난제다. 황교안 하면 여전히 ‘박근혜’가 떠오른다. 그는 박 대통령 덕분에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 자리에 올랐다. 정계 입문과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친박계의 도움을 받았다. 지금도 당 지도부에 친박계 의원들이 포진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배신자’ ‘살모사’라는 비판을 감수하고 친박 청산을 해낼 수 있을까?

황 대표가 탄핵 원죄로부터 벗어나 미래 지향적 통합 지도자로 거듭나려면 ‘친박 청산’은 불가피하다. 유승민 진영을 비롯한 보수중도 세력이 통합 조건 1호로 내세우는 것도 ‘박근혜 탄핵의 강’을 건너는 것이다. 앞으로 안철수 전 대표를 비롯한 중도개혁 세력과의 통합 협상, 공천 및 총선 과정에서 ‘박근혜 문제’는 계속 뇌관으로 작용할 것이다.

황 대표에게 최악의 상황은 ‘나쁜 통합’에 성공하고 ‘친박 청산’에는 실패하는 경우다. 국민 심판이 오래전에 끝난 탄핵 대상자나 물갈이 대상자를 몽땅 끌어들여 보수통합이라고 주장하고 참신한 외부 인사를 영입하지 못한 채 친박계 의원 쇄신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면 황교안의 앞날은 구름 속의 달처럼 어두울 수밖에 없다. 한국당이 ‘수구 꼰대 정당’이나 ‘박근혜 아류 정당’으로 매도되면 총선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황 대표가 친박 그림자를 최소화하고 혁신정당의 면모를 보여주려면 박찬주 전 육군대장 같은 인사보다는 중도인사를 영입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 전 대표 세력과의 통합은 효과를 극대화하는 길이라고 본다.

외향적, 인간중심적 리더십 발휘해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왼쪽 세번째)가 1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왼쪽 세번째)가 1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지금 황 대표에게 가장 필요한 건 정면 돌파 리더십이다.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으로 민정계와 손을 잡고 여당 후보가 됐지만 그들을 과감하게 정리함으로써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황교안 리더십이 나아갈 방향은 이미 충분히 제시됐다. 모호하지 않고 명료하게 개혁적 보수중도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아울러 대안 없는 투쟁보다 대안 있는 협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짜장면도 짬뽕도 아닌 짬짜면 정치로는 곤란하다. 차제에 확실한 황교안표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앞으로 통합과 공천, 대여 전략, 총선 과정에서 좀 더 외향적이고 인간중심형의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황교안 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상징어가 무엇이기를 바라는가? 국민이 원하는 상징어야말로 총선과 대선 승패를 판가름할 황교안 리더십의 본질이 될 것이다.

최진

● 1960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동 대학원 행정학 박사
● 前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실 선임국장
● 前 대통령직속 정부혁신위원회 실장
● 세한대 전 부총장/교수
● 한국대통령리더십학회 회장, 한국리더십개발원 원장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 원장 cj0208@hanmail.net

[이 기사는 신동아 2020년 2월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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