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 영~ 파이라예” 부산 민심 살펴보니…

  • 주간동아
  • 입력 2020년 1월 18일 11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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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정권과 다를 것 없다카이” vs “자유한국당 보다는 훨 낫다 안카나”

1월 6일 부산시 해운대 해수욕장 인근 번화가.
1월 6일 부산시 해운대 해수욕장 인근 번화가.
“영 파이라예(‘몹시 좋지 못하다’라는 의미의 경남 방언)”

부산의 한 재래시장에서 만난 다섯 할머니들은 입을 모아 현 정권에 불만을 쏟아냈다. 평일 오후 3시. 손님이 없는 반찬가게 귀퉁이에서 만난 할머니들은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모두 달랐다. 이들은 정치를 화두 삼아 대화를 이어갔으나 선호하는 정당이 서로 달라 이야기는 계속 평행선을 달렸다. 그나마 평행선이 좁혀지는 순간은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을 쏟아낼 때였다. 여당을 지지하든 그렇지 않든 작금의 현실에 대한 부산 주민들의 실망은 커 보였다.

부산은 한동안 보수정당 지지 성향이 강한 도시였다. 18, 19대 총선까지만 해도 지역구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한 곳은 많아야 두 곳 정도에 그쳤다. 그러던 것이 지난 2016년 4월 20대 총선부터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부산에서 총 5명의 더불어민주당(민주당) 후보가 당선한 것. 이듬해 치러진 19대 대선에서는 부산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선 문재인 후보 지지율(38.7%)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32.0%)를 앞질렀다. 지난 10년간 부산 유권자의 지지 성향에 큰 변화가 있었던 셈이다. 21대 총선을 불과 석 달 앞둔 2020년 1월 현재 부산 유권자의 표심은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 1월 6일과 7일 이번 총선에 최대 격전지가 될 부산의 대표적인 지역구 네 곳을 찾아가 민심을 들어봤다. 가장 먼저 기자가 찾은 곳은 부산 정치 1번지로 통하는 해운대갑이다.

“사는 게 나아진 게 없다”

현재 해운대갑 지역구 국회의원인 하태경 새로운보수당 의원 뉴시스
현재 해운대갑 지역구 국회의원인 하태경 새로운보수당 의원 뉴시스
현재 해운대갑의 현역 의원은 새로운보수당 하태경 대표다. 하 의원은 19대부터 연거푸 해운대갑에서 당선됐다. 외지인에게 부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명소가 해운대이지만, 1월 의 해운대해수욕장은 오가는 인적이 드물어 을씨년스러웠다. 겨울 바다의 삭막함을 채우기 위해 빛 축제가 한창이지만, 거리에 설치된 조명 장식을 배경삼아 기념사진을 찍는 몇 사람만이 눈에 띌 뿐이었다.

관광지에 관광객이 없으니 인근 상가 점주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해운대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모(44)씨는 “서울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여기는 4~5년 전보다 경기가 더 나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정권은 바뀌었는데 이전 정부보다 사는 게 나아진 건 별로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대 총선에 이어 다시 한 번 해운대갑에 도전하는 유영민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뉴시스
20대 총선에 이어 다시 한 번 해운대갑에 도전하는 유영민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뉴시스
해운대 좌동 재래시장에는 겨울인데도 시장 거리 대부분의 가게가 출입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출입문 사이로 가게 주인들은 몸을 내밀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예 주방을 밖으로 옮겨 즉석에서 길거리 음식을 요리해 파는 곳도 많았다. 몇몇 가게에서는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아 보려 중국어와 영어, 일본어로 적힌 메뉴판을 붙여놓고 있었다. 재래시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경기가 나쁘고 관광객이 없어 힘든데 지역구 의원이 정작 지역 사정을 나 몰라라 한다’며 지역구 의원인 하 의원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했다. 김모(57·여)씨는 “국회의원들은 선거 때만 찾아오고 일단 선거에 당선되고 나면 발길을 뚝 끊는다”며 “지역 주민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 지 궁금해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역구 의원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한 김씨였지만 정작 이번 총선에는 또다시 하 의원을 지지할 모양새였다.

“정치에는 관심이 없지만, 이왕이면 말이라도 시원하게 잘 하는 사람을 지지하고 싶다. (하 의원이) 방송에 나와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니, 현 정부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잘 따지는 것 같더라.”

김씨 외에도 이날 재래시장에서 만난 상인 대부분은 야당을 지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유영민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해운대갑에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이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유 전 장관은 20대 총선에서도 이곳에 출마해 하 의원과 경합을 벌여 1만 634표차로 낙선한 바 있다.

해운대에서 만난 주민 가운데에는 ‘후보가 누구냐를 떠나 여당 후보에게는 표를 주지 않겠다’는 사람이 많았다. 해운대 재래시장에서 만난 정모(44)씨는 “투표권을 갖게 된 이후 줄곧 보수 우파를 지지해왔다”고 했다. 정씨는 “지난 대선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이 너무 큰 잘못을 했고, 현 정부에서는 이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딱 한 번 민주당에 표를 던졌는데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며 “여전히 제 식구는 잘못을 해도 감싸기만 하고, 최근에는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까지 불거져 현 정부에 대한 신뢰가 깨져 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누가 후보로 나오든 적어도 여당 후보에게는 표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운대 좌동 재래시장. 시장 입구 안쪽으로 다양한 음식점이 늘어서 있다.
해운대 좌동 재래시장. 시장 입구 안쪽으로 다양한 음식점이 늘어서 있다.
해운대 일대를 돌며 만난 지역 주민 가운데 대부분은 자유한국당에서 누가 이번 총선에 후보로 나오는 지 알지 못했다. 현재 해운대갑에는 조전혁 자유한국당 당협위원장이 예비후보 등록을 마쳤다. 다만 아직까지 지역 주민들에게 인지도는 높지 않지만 만약 자유한국당 후보로 총선에 나선다면 꽤 많은 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있었다. 누가 후보가 되느냐와 상관없이 자유한국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열혈 주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운대 거리에서 만난 김모(54·여)씨는 “어차피 누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든, 지역 주민들의 민생이 달라지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현재 여당의 횡포를 막아 줄 제 1야당에 표를 몰아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대안 제시 못한 보수 야당에 실망”

그런가 하면 이번 총선에는 여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해운대역 앞 거리에서 만난 박모(33)씨는 “보수 정당은 여당이 실수하는 동안, 이를 꼬집는 일에만 최선을 다했지 어떻게 개선할지 대안을 보여주지 않았다”며 “특히 조국 전 장관의 잘못을 들춰내며 보수당에서도 비슷한 의혹이 불거진 중진들이 여럿 나오는 모습을 보며 (여당 지지로) 마음을 굳혔다”고 밝혔다.

해운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진일곤(45)씨도 여당지지 계획을 밝혔다. 진 씨는 “현 정부의 청년 우대 정책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아예 관심이 없다시피 했던 전 정권에 비해서는 낫다고 생각한다”며 “미래를 생각하면 여당을 한 번 더 믿어주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23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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