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자리 동료에 메모 붙은 캔커피…평범한 오늘을 반짝이게 하는 것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6일 16시 10분


코멘트
동아일보 DB
동아일보 DB
각종 마감이 밀려 한창 바쁜 나날을 보내던 때였다. 흐름이 끊기는 것이 싫어 졸릴 때마다 3시간씩 토막 잠을 자며 몸을 혹사시키기를 며칠째, 그날도 공부방에 한참을 박혀 있다가 거실로 나왔더니 테이블 위에 웬 상자가 놓여 있었다. 건강기능식품이 담긴 상자 위에는 건강관리를 부탁하는 내용의 손 편지와 함께 우리 부부의 얼굴을 그린 캐리커처가 올려져 있었다. 순간 코끝이 찡해왔다.

남편과 서로 크고 작은 서프라이즈를 즐기는 편이다. 말 그대로 몰래 기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서프라이즈라고 하지, 사실 거창한 것은 아니다. 가령 남편이 테니스화 넣을 가방이 없어 종이 가방에 넣어가는 것을 보고는 몰래 주문해 신발장에 놓아둔다든지, 평소에는 챙기지도 않던 100일 단위 기념일에 조각 케이크에 초를 켜고 기다린다든지 하는 것들. 남편 역시 종종 몰래 데리러 오거나, 데이트를 하더라도 “오늘 어디 갈까?” 물으면 “비밀!”하고 외치기를 즐긴다.

핵심은 ‘몰래’다. “신발주머니 필요해?”라고 물어보고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몰래 주문해 사소하지만 기분 좋은 놀라움을 선물하는 것. 결과적으로 똑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전자가 “어, 고마워” 정도의 감정을 수반한다면 후자는 “이게 뭐야?”로 시작되는 뜻밖의 감동을 선사한다. 이 기분 좋은 사소한 예외들이 모여 서로의 평범한 오늘들을 반짝이게 만든다.

물론 그에 따른 부작용도 있다. 언젠가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오던 날, 놀라게 해줄 요량으로 말도 않고 퇴근하자마자 부리나케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그런데 도착 예정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그는 나오지 않았다. 잘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나서야 인천이 아니라 김포공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렇게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종종 있지만, 연애 10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어느덧 서프라이즈는 이 관계에 있어 일종의 놀이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제는 어떻게 하면 서로를 더 놀라게 할 수 있을까 경쟁적으로 연구하기에 이르렀다.

서프라이즈는 상대의 행복을 위한 고민의 산물이다. 당연히 상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지만, 발견하기를 기다릴 때의 두근거림과 기뻐하는 모습을 확인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그 옛날 학창시절 담임선생님을 위한 스승의 날 깜짝파티라든지, (대체로 본인보다는) 친구의 고백을 위한 촛불 이벤트라든지, 한 번이라도 서프라이즈를 해줘 본 이라면 알 것이다. 받는 이가 느끼는 것이 감동이라면, 주는 이는 감동과 더불어 설렘, 뿌듯함을 느낀다.

안정의 다른 말은 곧 단조로움이다. 권태로운 일상과 오랜 관계에 윤활유를 부여하는 것은 그 반대, 예외성뿐이다.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바꾸는 힘, 소소한 서프라이즈를 오늘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해 보면 어떨까. 뜬금없이 부모님께 꽃을 보내보는 것도, 고마웠던 친구를 만날 때 책 한 권을 사들고 가는 것도 좋겠다. 옆자리 동료에게 건네는 메모 붙은 캔커피 하나도 더할 나위 없다. 그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중요한 것은 상대로 하여금 기분 좋은 놀라움을 느끼게 하는 것, 자신의 행복을 위해 고민하는 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기뻐하는 상대의 모습에 가슴속 깊이부터 차오르는 행복감을 올해가 가기 전에 꼭 한 번 누려보시길 바란다.

김지영 원스토어 웹소설PD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