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전 세계 사로잡은 어린왕자 탄생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4일 03시 00분


코멘트

◇어린 왕자/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정장진 옮김/272쪽·2만2000원·문예출판사

“별거 아닙니다. 마음에 담아 가지고 다니는 한 어린 녀석이지요.”

1942년 미국 뉴욕의 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던 생텍쥐페리는 흰 냅킨에 장난삼아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함께 식사하던 이가 그에게 무엇을 그리는지 묻자 그가 이같이 답했다고 한다.

그가 끄적끄적 그리던 어린 녀석은 훗날 ‘어린 왕자’가 되어 전 세계 독자들과 만났다. 작품의 줄거리와 문학적 의의를 구태여 설명하는 건 시간 낭비일지 모른다. 현재까지 250여 개 언어로 번역돼 1억 권 이상 팔린 명작의 특별판 ‘갈리마르 에디션’이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내년은 작가 탄생 120주년이어서 의미가 더 깊다.

‘갈리마르 에디션’은 프랑스어 초판을 낸 갈리마르 출판사의 이름을 딴 특별판이다. 2013년 출판사는 작품 출간 70주년을 기념해 작가의 삶과 작품 탄생을 조명하는 책을 냈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 장은 작가에 관한 신문, 삽화 자료, 문헌, 편지 등을 가득 넣어 작품의 탄생 과정을 촘촘히 짚었다. 두 번째 장에는 원작을 옮겨 담았고, 마지막 장에는 이른바 ‘어린 왕자’ 팬이자 전문가라 불리는 프랑스어권 교수, 작가의 평론이 실렸다.

흥미로운 건 한국에서 접하기 힘든 자료들을 망라한 첫째, 셋째 장이다. 첫째 장에는 작가가 끄적이던 삽화, 메모, 연습노트부터 그가 미국에서 활동할 당시 겪은 에피소드와 주변인들의 증언이 빼곡하다. 생텍쥐페리와 교제했던 미국 기자 실비아 해밀턴은 “그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어린 왕자’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생텍쥐페리는 내게 검토와 비판적 지적을 부탁했다”고 밝혔다. “작품 안에 그림도 같이 그려보라”는 조언을 건넨 해밀턴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작품에 공헌한 바가 클지도 모른다.

셋째 장에서는 학술적으로 작품의 주제, 관계, 문명을 논한 리뷰가 담겼다. 학술적이지만 책 속 장면들을 예로 들며 설명해 술술 읽히는 편이다. 정작 작품이 실린 두 번째 장이 홀대받는다 생각할지 모른다. 그래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른 장을 먼저 읽고 나면 자연스레 두 번째 장으로 손이 간다. 아름답고 동화적인 삽화가 읽는 맛을 더하며, 프랑스 문학 전공자이자 미술평론가인 번역자가 덧붙인 풍부한 주석이 이해를 돕는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어린 왕자#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