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농림성 차관 출신 70대, 그의 40대 장남 살해 동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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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2월 12일 16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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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일본 도쿄에 있는 도쿄지방재판소. 도쿄 내리마구 자택에서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였던 아들(44)을 살해한 구마자와 히데아키(熊澤英昭·76) 전 농림수산성 차관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다. 부인은 증인으로 나와 장남에 대한 악몽 같았던 기억을 하나 둘 밝혔다.

12일 아사히신문이 보도한 부인의 증언 등에 따르면 아들의 폭행은 아들이 이지메를 당했던 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 시작됐다. 집에 돌아오면 폭력을 휘둘렀고, 부모에게 흉기를 들이댄 경우도 있었다. 부인이 근무 중인 남편에게 연락해 남편이 급하게 집으로 달려온 경우도 있었다.

아들은 1994년 대학에 입학했고, 그 해 여름부터 별거했다. 혼자 살게 된 아들은 게임에 빠졌고, 쓰레기 처리를 놓고 이웃과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25년 만인 올해 아들은 갑자기 부모에게 전화해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5월 25일부터 내리마구 집에서 부모와 다시 함께 살았다.

집으로 온 바로 다음날, 장남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아버지는 좋겠다. 도쿄대 출신에 뭐든 자유롭게 할 수 있잖아. 내 인생은 이게 뭐야.” 그때 구마자와 씨가 “(너가 예전 살던 집의) 쓰레기 처리는 제대로 했었야지”라고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아들은 격분하더니 구마자와 씨에게 달려와 구마자와 씨의 머리를 테이블과 현관에 내리쳤다.

구마자와 씨의 부인이 ‘식사 차려놨다’고 말하면 아들은 “죽여버릴거야”라고 답했다. 부부는 1층에서 지내던 장남을 피해 2층에서 살았다.

구마자와 씨는 쓰레기 처리 발언 후 장남으로부터 폭행당했을 때 아들을 죽이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다른 방법이 없다. 죽일 장소를 찾아보겠다’라고 부인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그 후 ‘살인죄 집행유예’ 등 단어를 넣어 인터넷 검색을 했다고 한다.

사건 당일이었던 6월1일, 구마자와 씨가 1층으로 내려가니 아들은 집 근처 초등학교의 운동회 음악에 화가 나 있었다. “시끄러워. 죽여버릴거야”라고 말했다. 구마자와 씨는 곧바로 부엌으로 가 흉기를 꺼내들고 아들을 살해했다. 그리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해 자수했다.

부인은 법정에서 남편이 건네준 편지에 대해 “진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남편은 최선을 다 했다. 형을 가볍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구마자와 씨는 기소 내용에 대해 “틀린 점 없다”며 모두 인정했다. 검찰 측은 가정 내 폭력이 범행 계기였다고 지적했다. 변호인 측은 “장남에게 살해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 우발적으로 저지른 것”이라고 했다.

다만 검찰 측이 제시한 증거 중에는 구마자와 씨 부부가 말한 것과 조금 결이 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것도 있었다. 구마자와 씨가 트위터로 아들에게 “더 이상 폐를 끼치지 말아라”고 보내자, 아들은 “예”라고 답장을 보냈다. 아들은 또 게임 친구들에게 트위터로 “부모는 시험에서 나쁜 점수를 받으면 내 장난감과 프라모델을 부숴버린다. 내 인생은 스트레스 투성이”라고 적었다. 평상시 부모의 폭력성을 의심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구마자와 씨의 부인은 검찰관의 질문에 “공부를 이유로 장난감을 부순 적은 없다”고 답했다.

일본 언론들은 구마자와 씨의 첫 공판 소식을 자세히 전하며 ‘8050문제’의 심각성을 보도했다. 8050문제란 80대 부모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인 50대 자녀가 사회로부터 고립되면서 일어나는 문제를 뜻한다. 도쿄대 법대를 졸업하고 1967년 농림성(현 농림수산성) 공무원이 돼 농림성 ‘넘버 2’인 사무차관까지 올랐던 구마자와 씨도 8050문제를 피해갈 수 없었다.

일본 내각부는 올해 3월 40~64세 히키코모리 인구가 61만3000명으로 추산된다고 발표했다. 청년층(15~39세) 히키코모리 54만1000명보다 더 많다. 일본에서 히키코모리 연구는 1980년대부터 시작됐지만 중장년층 히키코모리에 대한 전수 조사가 이뤄진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일본 정부는 더 문제가 커지기 전에 히키코모리 상담창구를 늘리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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