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 러시아에 합병되나…정상회담중 국민시위 ‘폭발’

  • 뉴시스
  • 입력 2019년 12월 8일 07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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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대통령 러 소치에서 양국 통합 압박
수도 민스크에선 '합병 우려' 국민시위

러시아와 벨라루스 대통령들이 7일(현지시간) 두 나라의 동맹관계를 강화하는 민감한 주제로 5시간 이상이나 정상회담을 이어가는 동안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에서는 러시아의 의도를 의심하는 수많은 국민들이 거리로 나와 반대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 날 러시아 소치에서 열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알렉산데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당장 발표된 합의 내용은 없었지만, 러시아 고위 관리들은 두 정상이 합의에 좀 더 가까이 도달한 상태라고 전했다.

이 날 민스크에서는 1000명이 넘는 시위대가 운집해 러시아와의 긴밀한 통합 정책에 대한 우려와 항의를 표했다. 인구 1000만명의 벨라루스는 구소련 체제 붕괴 이후 어렵게 성취한 벨라루스의 독립이 훼손된다며 “러시아와 통합 반대” “벨라루스는 유럽으로!”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행진했다.

25년 넘게 벨라루스에서 철권 통치를 이어 온 루카셴코 대통령은 러시아가 제공하는 값싼 에너지와 현금 차관에 의존해서 벨라루스를 구 소련형태의 경제 체제로 이끌어 오고 있다.

러시아와 벨라루스는 1997년 좀더 긴밀한 정치, 경제, 군사적 연대를 담은 통합 합의안에 서명했지만, 러시아와 한 나라가 되기 직전에 이를 중단한 적이 있다.

러 정부는 최근 벨라루스에 대한 석유와 가스 가격 인상과 보조금 삭감 등을 실시하면서 벨라루스 정부에 통합 압박을 강화해왔다. 러시아 관리들은 벨라루스가 저가 에너지 혜택을 원한다면 러시아와의 경제적 통합을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소치 정상회담 서두에서 루카셴코는 푸틴에게 앞으로 벨라루스에 계속해서 러시아 국내 가격과 같은 가격으로 에너지 공급을 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는 푸틴을 향해 쓴 웃음을 지으면서 “우리는 러시아와 같은 조건을 원할 뿐, 그 외의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푸틴대통령은 “우리는 미래의 전망에 대해 논의할 것이며, 이 번 회담은 역사적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압박하면서 “앞으로 양국은 전력을 다해서 우리 두 나라 정부와 국민들이 서로 더 가깝게 느끼도록 노력할 것이다. 특히 경제적인 면에서, 그리고 사회분야에서 통합으로 이득을 얻을 수 있게 하자”고 말했다.

러시아의 막심 오레시킨 경제부 장관은 두 정상이 석유, 가스를 비롯한 여러가지 현안에 대해서 의견차를 좁혔으며 해당 관리들에게 남은 의견 차를 조율하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두 정상은 12월 20일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다시 회담을 갖는다.

벨라루스 국민들은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한 이후로 새로운 양국 협정이 결국에는 완전한 양국 통합으로 이어질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또한 벌써 20년 가까이 권좌에 있는 푸틴이 2024년 러시아 대통령 임기가 끝난 뒤로 러시아와 벨라루스를 통합한 새로운 통합국가의 수반으로 통치를 계속할 수단의 하나로 벨라루스 합병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민스크의 중립적 정치 평론가 발레리 카르발레비치는 “ 러시아는 이제 더 이상 공짜는 없다며 2024년 이전에 벨라루스 정부로부터 정치적인 양보를 얻어내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는 새로운 통합국가를 만들어 푸틴에게 새 권좌를 마련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푸틴은 그 동안 눈에 띄지 않게 자신의 미래 계획들을 추진해 온 스타일이다.

루카셴코는 러시아의 압력에 화를 내고 있으며, 러시아 정부 관리들이 벨라루스의 독립성을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절대로 구소련 이후 독립한 벨라루스의 독립국 지위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벨라루스의 야권인사들과 국민들은 이를 믿지 못하고 계속해서 불안해 하고 있다.

토요 시위를 조직한 파벨 세베리네츠는 “ 정치인들이 벨라루스의 독립 주권을 마치 카드 게임하듯이 주무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러시아가 우리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한 끝까지 항쟁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시위는 당국의 허가를 얻지 않은 대규모 집회였지만, 벨라루스 경찰은 시위대가 민스크 도심을 가로 질러 행진할 수 있도록 허용해 주었다.

벨라루스의 옛 국기 색깔인 빨강과 흰색을 얼굴에 칠한 19세의 학생 시위대원 미카일 올샨스키는 “ 러시아는 또 다시 우리를 그 타락하고 부패한 옛 제국으로 끌어들이고 이웃 나라들을 희생시켜서 제국의 부활을 꿈꾸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루카셴코는 장기 집권 동안 (정치적)반대를 한 번도 참은 적이 없어서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란 별명까지 갖고 있는데도, 최근에는 러시아의 압박이 심해지자 점점 더 서방 쪽과 손을 잡을 방도를 모색하고 있다. 자칫하면 어느날 갑자기 러시아의 한 주(州)의 주지사가 되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벨라루스 정부의 부정선거나 야당 탄압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난을 해왔지만, 최근 몇 년 동안에는 벨라루스가 정치범들을 석방한 이후로 이 나라에 부과했던 여러 제재들을 풀어주기도 했다.

[민스크( 벨라루스)=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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