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맞는 사회인의 자세[오늘과 내일/문권모]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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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직업적 장수’ 원하면 관계의 소중함 되새겨 봐야

문권모 채널A콘텐츠편성전략팀장
문권모 채널A콘텐츠편성전략팀장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연말은 직장인들이 성과 평가를 받는 시기이기도 하다. 시나브로 평소보다 출근은 약간 빨라지고 퇴근은 조금 늦어진다. 부하 직원들은 공연히 상사에게 공손한 태도를 내보인다.

얼마 전, 세밑을 앞두고 가장 중요한 일은 자기 자신, 특히 자신의 인간관계를 복기(復棋)해 보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인 한 분의 이야기를 들은 후였다. 이분이 구내식당에서 누굴 만났는데 “권력을 가지면 소시오패스가 되는 사람이 많더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순간 든 생각이 ‘올 한 해 나는 어떻게 살았나. 쥐꼬리만 한 권력을 가지고 누군가의 가슴에 생채기를 낸 일은 없었나’란 것이었다.

인간관계에 대한 자아 성찰은 인격 수양이란 윤리적 측면 이외에 실리적 측면에서도 꽤 중요하다. 때때로 인간관계는 직업적 수명이나 사회생활의 성패를 좌우한다.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인사철이 되면 모두가 승진을 바라는 사람이 있는 반면, 끌어내리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부침이 심한 방송가에선 이런 현상이 더 두드러진다. 예능 PD들에게 특정 연예인의 롱런 이유를 물으면 답변이 거의 한두 가지로 수렴된다. 바로 인간관계와 인성이다. 성격이 원만하고 말단 스태프까지 살뜰하게 챙기는 사람은 빈자리가 생기면 우선적으로 전화를 받는다. 반대로 “○○○ 씨 어때?”란 얘기가 나오면 모든 스태프가 쌍수를 들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인기가 있을 때는 그나마 버티지만 ‘거품’이 꺼지면 그야말로 ‘개털’이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관계는 기술문명이 발달할수록 더 중요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누구와 사이가 틀어지면 그냥 다른 회사나 업계, 지역으로 옮기면 끝이었다. 역사책을 보면 야반도주(夜半逃走)해 과거를 성공적으로 털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개척한 사례가 수없이 나온다. 하지만 지금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에게도 메신저를 통해 “○○○ 어때?”라고 바로 물어볼 수 있다.

증거 공유도 간단하다. 얼마 전 본 ‘리미트리스’라는 미국 드라마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FBI에 소속된 주인공이 제약사 사장을 조사하러 갔는데 협조를 거부당한다. 주인공은 직원들 앞에서 “이 사람이 나쁜 보스인 것을 안다. 내 메일 주소를 줄 테니 증거를 보내라”고 말한다. 바로 그 자리에서 메일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20여 년 직장생활을 한 내가 볼 때 우리는 뿌린 대로 거둔다. 인과응보(因果應報)란 종교적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경험으로부터 얻어진 사실판단의 법칙이다. 더불어 기회는 사람에게서 온다. 평소에 덕을 쌓은 사람은 어려움에 빠졌을 때 꼭 누군가가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하다. 연말은 그동안 구겨진 인간관계를 ‘다림질’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연말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심리학 용어 중에 ‘최근효과(Recency Effect)’란 게 있다. 최근에 들어온 정보가 오래된 것보다 인상이나 기억에 더 큰 영향을 끼치는 현상이다. 사실 인간은 망각의 동물 아닌가. 예전에 좀 잘못한 일이 있어도 지금 조금만 잘하면 대부분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 부담이 되지 않는 작은 선물을 곁들인다면 더 좋을 것이다.

평소에 염두에 두면 좋을 몇 가지 요령이 더 있다. 우선 누군가를 야단치거나 비난했다면 늦기 전에 사과를 하거나 마음을 어루만져줘 응어리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예전에 모셨던 한 선배는 크게 야단을 친 후에는 꼭 술을 한잔 사주셨다. 문제가 되는 상황이 끝난 후에 평소처럼 대하는 것도 방법이다. 소극적이긴 하지만 ‘내가 당신이란 사람에게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란 표현이 된다.

결론적으로 연말엔 말년 병장처럼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열외’하지 말고 일은 열심히 해야겠지만 말이다.
 
문권모 채널A콘텐츠편성전략팀장 mikemoon@donga.com
#연말#성과 평가#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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