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수와 동백이 전하는 위로[오늘과 내일/서정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꼰대엔 까칠, 선한 이웃엔 사랑… 솔직 담백 캐릭터로 시대 아이콘

서정보 문화부장
서정보 문화부장
“내가 힘든데, 힘내라고 하면 힘이 납니까? 그러니까 힘내라는 말보다 저는 ‘사랑해’라고 해주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사랑합니다.”(펭수)

“엄마는 무슨 행복을 하자고 그렇게 기를 쓰고 살아? 행복은 좇는 게 아니라 음미하는 거야, 음미!”(동백)

올 하반기 최고로 인기를 끈 캐릭터는 단연 EBS ‘자이언트 펭TV’의 펭수와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동백이다.

펭수 캐릭터와 어록을 담은 ‘펭수다이어리’는 발매 3시간 만에 1만 부가 모두 팔려나갔고, ‘동백꽃…’의 마지막 회는 최근 보기 드물게 23.8%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사뭇 분위기가 다른 펭수와 동백이 ‘최애’(가장 좋아함) 캐릭터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펭수의 ‘속 시원한 사이다’ 어록은 인터넷에 널리 회자된다. ‘사장님이 친구 같아야 회사도 잘된다’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른이고 어린이고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해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면 되는 거예요’ ‘취향은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취향은 존중해 주길 부탁해’ ‘부정적인 사람들은 도움 안 되니 긍정적인 사람들과 얘기하세요’ ‘눈치 보지 말고 원하는 대로 살아라. 눈치 챙겨’ 등 어록은 재미도 있고 카타르시스도 있다.

물론 펭수의 인기는 어디선가 한번 들어봤을 법한 명언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자유로운 영혼에서 나오는 화법도 한몫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마주친 자리에서 “여기 외교부 ‘대빵’이 누구죠”라고 묻고, “EBS에서 잘리면 KBS 간다”고 말하는 등 주눅 들지 않는 당당함을 보여준다.

시원한 사이다 발언+당당한 자신감+자유로운 영혼에 솔직함까지 곁들인 펭수는 가장 중요한 역할로 펭성(펭귄+인성)을 완성한다. 바로 힘들고 지친 이를 위한 위로다. 박사 과정 학생이 ‘공부하느라 우울했는데 펭수를 보고 행복해졌다. 하지만 펭수 보느라 공부에 소홀해져서 고민’이라고 상담을 요청하자 ‘행복해졌다면서요. 공부보다 행복해지는 게 중요합니다’라고 얘기한다. 그의 위로는 단순한데 정곡을 찌른다.

유쾌하고 당당한 펭수와 달리 동백은 매사 소극적인 ‘쫄보’ 캐릭터다. 어릴 적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사귀던 남자한테 버림받고, 여덟 살 어린 아들을 데리고 생면부지의 낯선 곳에서 술장사를 하며 살아가는 동백은 인생의 어려움이 모두 자신 탓이라고 자책한다.

하지만 용식의 무한한 사랑과 옹산시장 이웃 아주머니들의 은근한 보살핌 덕에 그는 점차 마음을 열고 성장하다 마침내 “이젠 착한 척, 굳센 척하지 않을 거야”라며 알을 깨고 나온다. 위로를 흠뻑 받은 그는 이제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된다. 어린 동백을 버린 죄책감에 시달리던 엄마에게 동백은 “행복은 음미하는 것”이라고 말한 뒤 “봐봐, 서 있는 데서 발을 딱 붙이고 찬찬히 둘러보면 천지가 꽃밭이지”라며 활짝 웃는다.

펭수와 동백은 예의 없거나 꼰대 노릇을 하는 상대에게는 까칠하게 굴어 자존심을 지키면서, 동시에 ‘선한 이웃들’에겐 따뜻한 위로와 사랑을 보낸다.

먹고사는 것 자체가 힘든 시절엔 위로를 할 여유도, 위로를 받을 자세도 안 돼 있었다. ‘힐링’이란 이름으로 위로가 화두가 된 것도 꽤 됐지만 ‘앞으로 잘될 거야’라는 막연한 위로는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했다. 펭수와 동백이 보여준 위로는 솔직담백한 그들의 캐릭터와 어우러지면서 디테일하고 손에 잡힌다. 수동적으로 위로를 받는 것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위로를 누리고 싶은 마음을 어루만져 준 펭수와 동백이 시대의 아이콘이 된 이유다.

서정보 문화부장 suhchoi@donga.com
#펭수#동백#당당함#자신감#캐릭터#아이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