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형, GD네[2030 세상/도진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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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수 청백 공동법률사무소 변호사
도진수 청백 공동법률사무소 변호사
축구 서포터스 활동 덕에 20대 초반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잦다. 한참 이야기를 하던 도중 한 친구가 내게 “이 형 GD네, GD”라고 말했다. GD가 뭘까. 얼마 전 전역한 유명 가수 지드래곤을 떠올렸지만 그분은 나와 같은 국적인 것 빼고는 공통점이 없었기에 용기를 냈다. “GD가 뭔데?” 친구의 답이다. “꼰대잖아요. GD. 꼰대.”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을 열라는 말을 생활신조로 지켜왔건만 이보시오 동생 양반, 꼰대라니. 아니, 내가 꼰대라니!

학창 시절 나의 제안과 욕망을 재단했던, 마치 끝이 정해진 책 같은 어른들을 두고 차마 욕설은 할 수 없어 꼰대라 불렀던 기억이 났다. 억울했지만 변명하면 더 놀림받을까 싶어 일단 입을 닫았다. 충격에 빠진 채로 귀가해 동갑인 아내에게 물었다. “내가 꼰대 같아?” 아내는 심드렁하게 “아니”라고 했다. 위안이 됐지만 찝찝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며칠을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꼰대 같냐’고 울부짖다가, 전역 후 10년째 만나고 있는 후임의 말을 듣고 평안을 찾았다.

“형, 요즘은 꼰대라는 말이 그렇게 나쁜 말이 아니야.” 서울 연신내에서 닭꼬치집을 하는 군대 후임은 어린 사원들이 직장 상사한테 우스갯소리로 꼰대라는 말을 하고 직장 상사는 “그래?” 하면서 껄껄 웃어넘기는 손님들을 제법 봤다고 했다. 그러니까 꼰대는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비난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지금 너의 말이 지루하니 그만하라는 일종의 경고인 셈이었다.

나를 GD라고 한 친구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 떠올려 봤다. 곧 태어날 딸, 내 딸이 살아갈 세상에 대한 걱정이 20대 초반 그의 관심사가 아님은 명백했다. 밤낮없이 의뢰인의 전화를 받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지만 의뢰인의 말을 많이 들은 사건들은 대부분 좋은 결과를 낸다. 사실 말을 듣는 것은 나에게 득이 되고 돈이 되니까 괴롭다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객관적으로 내가 했던 말은 그에게 득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말 중에는 궁금해서 듣고 싶은 말이 있고, 지루해서 듣기 싫은 말도 있다. 그 기준은 오로지 듣는 사람만 정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흘리지 않는 1인분의 몫을 하고 있다면 그 누구도 듣기 싫은 말을 들을 의무가 없다. 그런데 듣고 싶지 않은 말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듣는 사람의 취향을 신경 쓰지 않고 말을 한다. 그런 말은 힘이 없고 쓸모가 없다. 듣는 사람은 하겠다고 한 적도 없이 그 사람의 ‘무보수 심리상담가’가 되는 것이다. 아마 그 말을 하는 사람도 또 누군가의 무보수 심리상담가였을 것이다. 마치 ‘내리 갈굼’처럼.

청년들은 내리 갈굼을 거부하면서도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을, 그 어떤 지점에 있는 옐로카드를 개발해냈다. 꼰대라는 단어를 재활용한 것이다. 청년들은 이로써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고, 폐단을 근절하고 있으며, 세상을 보다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나는 이를 두고 조금 조미료를 쳐서 이 시대를 사는 청년의 ‘정신’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를테면 ‘청년들의 꼰대십니까 정신’. 이런 정신이 온 사회, 다방면으로 퍼져 나가기를 응원한다.
 
도진수 청백 공동법률사무소 변호사
#gd#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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