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천하주의’ 뒷면엔 약육강식의 냉혹한 역사 도사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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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자오광 著 ‘전통시기 중국의 안과 밖’… ‘천하’ 개념 정치적 소환 비판

중국이 대국으로 굴기(굴起)하고자 하는 의도를 공공연히 드러내는 가운데, 전통시대 동아시아의 질서였던 ‘천하’ 개념을 최근 정치적 담론으로 소환하는 것을 경계한 중국 석학의 저술이 번역 출간됐다.

중국 사상사와 문화사의 석학으로 꼽히는 거자오광(葛兆光) 중국 푸단대 교수의 2016년 저서 ‘전통시기 중국의 안과 밖’(소명출판·사진)이 최근 국내에 번역됐다. 거 교수는 책에서 “현대 국가의 개념으로 고대 제국의 역사를 이해해서는 안 되고, 현대 중국의 영토로 고대 중국의 강역을 이해해서도 안 된다”고 밝혔다.

거 교수는 책에서 전통시대 ‘중국’은 무엇을 가리켰는지를 우(禹) 임금 시절부터 청대까지 살폈다. 그리고 비록 현대 중국의 국경선 안에 있는 지역과 민족이라고 해도, 전통시대에는 중국의 ‘주변’이었음을 밝혔다. 서부와 북부의 흉노 선비 돌궐 토번 거란 여진 몽고 만주와 남방의 만(蠻) 등 상당히 많은 비(非)한족 민족과 이들이 차지했던 지역은 중국의 외부이자 주변이었다는 것이다. 지난날 ‘중국’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한족(漢族)의 정치 문화 공동체였을 뿐이었다.

또한 저자는 천하에는 ‘우리’(중국)와 타자의 경계가 늘 존재했고, 중국의 안과 밖은 평등하거나 조화를 이루는 국제관계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저자의 시각과 달리 중국 학계는 대체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따라 현대 중국 내부의 민족들은 과거에도 중화민족의 일부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저자가 이 주제에 천착한 건 중국 학계에서 ‘천하주의’가 부상하는 걸 비판하기 위해서다. 중국은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대체하고자 하며, 그를 위해서는 경제력이나 군사력뿐 아니라 보편성을 갖는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 이 같은 맥락에서 소환된 중국의 천하주의는 서구적 민족국가 체제와 달리 “대국과 소국의 구분도, 문명과 낙후의 구별도 없는 ‘천하’”를 지향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거 교수는 “점점 더 빗나가는 ‘천하’의 과도한 해석”이자 “역사적 맥락에서 이탈시키는 상상”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천하’라는 수사 뒷면에는 약육강식의 냉혹한 역사가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천하주의#전통시기 중국의 안과 밖#거자오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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