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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한 승리’ 외면받는 시대… ‘반칙도 전술’은 옛말이 됐다[인사이드&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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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한 승리’ 외면받는 시대… ‘반칙도 전술’은 옛말이 됐다[인사이드&인사이트]

김배중 스포츠부 기자 입력 2019-11-15 03:00수정 2019-11-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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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반칙의 세계’
“상대 주눅들게” 노골적 지시 많고 할리우드 액션 등 속임수도 난무
선수 부상-스포츠정신 훼손 눈살… ‘반칙없는 공정사회’ 시대적 요구 커
“페어플레이 정신” 팬들 목소리 확산… 비디오 판독 도입-벌금 강화 등 나서
공을 뺏으려다 잘못 찬 걸까, 처음부터 발목을 노린 것일까. 국내 프로축구에서 나온 백태클 반칙(오른쪽 사진 원 안). 백태클로 퇴장당했던 손흥민이 사흘 뒤 경기에서 쾌유를 비는 ‘기도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SPOTV 화면 캡처·동아일보DB
김배중 스포츠부 기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 활약 중인 손흥민(27·토트넘)은 최근 반칙 하나에 울고 웃었다. 4일 영국 리버풀에서 열린 에버턴과의 EPL 11라운드 방문경기에 나선 손흥민은 후반 33분 안드레 고메스에게 백태클을 해 퇴장을 당했다. 처음에는 경고(옐로카드)를 받았지만 2차 충돌로 고메스가 큰 부상을 당한 것을 확인한 주심은 퇴장(레드카드)으로 판정을 바꿨다. 본의 아니게 상대 선수를 다치게 한 손흥민은 라커룸에서도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렸고, 잉글랜드축구협회는 손흥민에게 3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다.

손흥민의 반칙을 두고 경기 내내 자신을 괴롭힌 상대 선수에게 보복성 태클을 했다는 얘기도 나왔지만 심판 판정이 지나쳤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토트넘은 협회 결정에 이의를 제기했고 결국 협회도 징계를 철회했다. 손흥민은 사흘 뒤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츠르베나 즈베즈다와의 경기에서 2골을 터뜨리며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의 한국인 유럽리그 최다골(121골) 기록을 넘어섰는데 첫 번째 골을 넣은 뒤에는 고메스의 쾌유를 바라는 ‘기도 세리머니’를 해 눈길을 끌었다.

종목을 불문하고 반칙은 늘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처럼 “반칙 또한 경기의 일부로 봐야 한다”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페어플레이를 해치는 행위는 엄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 ‘투지의 상징’ 또는 ‘과감한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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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많이 사라진 장면이지만 과거에는 하나의 ‘작전’으로 지도자가 선수들에게 노골적으로 반칙을 지시하는 경우도 많았다. 팀의 사기를 높이고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반칙을 적극 활용한 것이다. 거친 반칙으로 상대를 주눅 들게 하면 근성 있고 투지 넘치는 선수로 인정받기도 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의 허정무 현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가 당대 최고의 공격수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를 상대로 격투기에서나 볼 법한 발차기까지 한 것은 지금도 ‘태권축구’라는 말로 회자되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진돗개’라는 별명이 붙은 허 부총재의 악착같은 플레이에 마라도나는 평소와 같은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한국은 대회 우승까지 차지한 아르헨티나에 1-3으로 지긴 했지만 박창선이 월드컵 사상 한국의 첫 골을 기록하는 등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2017년 경기 수원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 조 추첨 기념 레전드 매치에서 마라도나와 만난 허 부총재는 “기술이 좋았으면 파울도 기술적으로 했을 텐데 당시 여러모로 부족했다”며 미안한 마음을 나타내기도 했다.

선수끼리 거친 몸싸움이 불가피한 농구에서 반칙은 병가지상사다. 반칙이 워낙 잦다 보니 아예 5개(미국프로농구·NBA의 경우 6개)의 상한선을 둬 선수가 스스로 규제를 하게 한다. 이러다 보니 파울 자체가 전략의 하나로 활용된다. 경기 종료 직전에는 뒤지고 있는 팀이 상대 팀을 2점 이하로 묶은 뒤 3점 슛 등으로 추격하기 위해 대놓고 ‘반칙 작전’이 전개된다. NBA에서는 2000년대 초반 리그를 호령한 ‘공룡 센터’ 샤킬 오닐을 막기 위해 ‘핵 어 샤크(hack a shaq)’ 작전이 유행했다. 성공률이 50%가 안 될 정도로 자유투에 약한 오닐에게 골밑 슛으로 2점을 내주느니 자유투로 실점을 최소화하겠다는 의도로 행한 반칙이다.

노골적인 반칙 작전이 폭력 사태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허재 린치 사건’이 대표적이다. 1991년 농구대잔치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농구 대통령’으로 불리던 기아자동차 허재는 자신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현대전자 임달식의 반칙에 불만을 표했다. 이에 임달식이 주먹을 들어 보이자 허재는 이마로 임달식을 들이받았고, 임달식은 주먹으로 허재의 얼굴을 강타해 쓰러뜨렸다. 이후 양 팀 선수들이 모두 몰려나와 싸움을 하면서 코트는 그야말로 난장판이 됐다.

그럼에도 ‘그때 그 시절’ 반칙은 경기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으로 인정받은 면이 있었다.

○ 설 자리를 잃어 가는 반칙

하지만 시대의 흐름과 함께 반칙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고 있다. 중계기술이 발전하고 비디오판독(VAR)이 확산되면서 심판의 눈을 속였던 반칙은 이제 통하지 않게 됐다.

축구의 프리킥, 농구의 자유투처럼 반칙을 당한 팀은 어드밴티지를 얻는다. 그러다 보니 ‘할리우드 액션’은 늘 논란이 된다. 한국농구연맹(KBL)은 이번 시즌부터 플라핑(Flopping)을 한 선수의 명단 및 영상을 라운드마다 공개하고 있다. 페이크 파울로도 불리는 플라핑은 과장된 동작으로 심판을 속여 유리한 판정을 이끌어내는 것을 말한다. 파울을 유도하기 위해 목을 뒤로 꺾거나, 슬쩍 스치기만 했을 뿐인데 장풍을 맞은 듯 코트에 쓰러지기도 한다. 플라핑이 농구의 재미를 반감시킨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해당 장면까지 공개하는 강수를 둔 것이다. 한 번은 경고에 그치지만 2, 3회 20만 원, 4, 5회 30만 원 등 횟수에 따라 벌금도 부과한다. 11회 이상은 벌금 100만 원이다.

야구는 축구 농구 등과 달리 몸싸움이 없는 종목이지만 반칙은 존재한다. 대표적인 게 ‘빈볼(Bean Ball)’이다. 빈볼은 투수가 타자의 머리를 향해 던지는 위협구다. 영어로 콩(Bean)은 사람의 머리를 뜻하는 속어다. 머리가 아니더라도 고의로 타자의 몸을 맞히기 위해 던진 공을 모두 빈볼이라고 부른다.

빈볼은 큰 점수 차로 앞서 있는데도 추가점을 내기 위해 희생번트나 도루를 하는 등의 불문율을 어길 때 투수가 타자를 위협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맞히는 경우가 많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014년부터 투수가 빠른 공으로 상대 타자의 머리를 맞힐 경우 고의 여부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퇴장시키는 규칙을 도입해 반칙 근절에 힘쓰고 있다.

메이저리그(MLB)도 반칙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상황은 비슷하다. KBO리그처럼 ‘자동 퇴장 규정’은 없지만 반칙의 원인이 되는 불문율 자체를 없애는 분위기다. ‘배트 플립’(홈런을 친 뒤 배트를 내던지는 것)이 그런 예다. 이전까지 배트 플립은 빈볼을 부르는 대표적인 행위였지만 이를 ‘팬들을 위한 세리머니’로 여기자는 선수들이 늘고 있어서다. 10월을 뜨겁게 달궜던 워싱턴과 휴스턴의 월드시리즈에서는 빈볼이 나올 법한 상황에서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6차전에서 휴스턴의 앨릭스 브레그먼은 동점 홈런을 친 뒤 방망이를 든 채 1루까지 달렸다. ‘배트 플립’보다 상대를 더 자극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워싱턴은 빈볼로 응징하지 않았다. 다만 막내인 후안 소토가 다시 앞서 나가는 홈런을 친 뒤 브레그먼의 세리머니를 그대로 따라했다. 반칙 대신 ‘유쾌한 응징’으로 팀 분위기를 살린 워싱턴은 6차전과 7차전에서 잇달아 승리하면서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다.

○ ‘공정사회’의 시대적 요구는 페어플레이

반칙의 사전적 정의는 법칙이나 규정 따위를 어기는 행위다. 없으면 좋다고는 해도 승리라는 욕구가 첨예하게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경기장에서는 반칙이 불가피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반칙 없는 공정사회’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 된 이상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도 불리는 스포츠 현장에서 ‘페어플레이’를 원하는 팬들의 목소리는 커져 가고 있다. 반칙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고, 반칙 없는 깨끗한 경기를 보고 싶은 것이다. 과거 ‘트래시 토크’의 일환으로 관례처럼 용인됐던 더그아웃 안에서 상대 팀을 비난하는 언행도 이제는 팬들 앞에 고개 숙이고 사죄해야 할 반칙 행위로 규정되는 그런 시대가 왔다.

현장에서도 반칙 없는 경기에 대한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선수들의 기량과 정신력으로만 승부를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대표 선수 출신에 지도자로서도 산전수전 다 겪은 한 구기종목 감독에게 반칙에 대한 생각을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반칙을 하지 않고 경기를 이긴 날은 개운해서 잠도 잘 와요. 우리 팀 반칙이 많았던 날은 이겨도 가슴 한쪽이 찜찜하죠. 내 마음이 이런데 팬들도 깔끔한 경기를 봐야 기분이 좋지 않을까요. 이제는 선수들한테도 ‘딴생각’(반칙)은 자제하고 경기에만 집중하자고 해요.”


김배중 스포츠부 기자 want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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