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거인’ 알투베, 뜨거운 스토브리그[광화문에서/이헌재]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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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16세에 프로야구단 입단 테스트를 받으러 갔다. 하지만 야구장엔 들어가지도 못했다. “키가 너무 작다”는 것과 “나이를 속인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출생증명서를 들고 다음 날 다시 찾아갔다. 체구는 작아도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휴스턴이 그에게 제시한 계약금은 1만5000달러(약 1751만 원). ‘작은 거인’ 호세 알투베(29) 신화는 그렇게 시작됐다.

키는 많이 자라지 않았다. 구단 프로필에 나온 그의 신장은 168cm. 거구들이 즐비한 메이저리그에서 확연히 눈에 띈다. 현역 메이저리거 가운데 키가 가장 작다.

그렇지만 야구는 키로 하는 게 아니다. 2011년 메이저리그 승격 후 알투베는 매년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2014년 225개의 안타와 56도루로 아메리칸리그 타격, 도루 1위에 올랐다. 올 시즌에는 홈런도 31개나 때렸다. 작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워는 놀랍기까지 하다.

베네수엘라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그는 야구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6번이나 올스타에 뽑혔고, 포지션별로 공격력이 뛰어난 선수에게 주는 실버 슬러거 상을 5차례 받았다. 2017년에는 휴스턴의 사상 첫 월드시리즈 우승에 기여하면서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로도 선정됐다. 돈도 많이 벌었다. 2018시즌을 앞두고 구단과의 연장 계약을 통해 2025년까지 7년간 계약금을 포함해 1억6350만 달러(약 1909억 원)를 받는다. 그는 휴스턴 팬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선수 중 하나다. 야구를 잘해서? 물론이다. 하지만 야구장 밖의 알투베는 훨씬 멋진 사람이다.

올해 워싱턴과 월드시리즈 7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준우승을 한 뒤 알투베는 모처럼 꿀맛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다. 개인적인 시간을 갖기도 모자랄 법하지만 그는 얼마 전 미국 텍사스주 갤버스턴에 있는 한 소년의 집을 찾았다. 올 초 가스 폭발 사고로 온몸에 화상을 입은 베네수엘라 출신 미겔 이그나시오 군이 휴스턴과 그의 팬이라는 소식을 듣고서다. 예고 없이 알투베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소년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짜 알투베임을 확인한 소년은 곧바로 그에게 다가갔고, 알투베는 따뜻하게 소년을 안았다. 훈훈한 장면은 TV를 통해 방영됐고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깜짝 선물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알투베는 집에 머물며 소년과 함께 긴 시간을 보냈다. 소년의 가족들과 함께 집에서 식사도 했다. 소년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알투베에게 선행은 일상이다. 시즌 중에도 그는 동료들과 함께 어린이를 돕기 위한 기금 모금 행사를 연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국 베네수엘라 아이들에게 보낼 야구용품도 모은다. 그는 “나도 어릴 때 공짜 글러브를 받은 적이 있다. 글러브 하나면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찬바람이 불 때 열리는 스토브리그는 ‘돈’과 ‘계약’의 무대다. 올해만 해도 자유계약선수(FA)가 된 류현진이나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는 김광현 등이 초미의 관심사다. 하지만 선수들은 마음만 먹으면 돈보다 소중한 것들을 팬들에게 선물할 수 있다. 스토브(난로)처럼 훈훈한 이야기들이 더 많이 들렸으면 좋겠다. 야구는 호세처럼, 겨울엔 알투베처럼 말이다.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uni@donga.com
#호세 알투베#류현진#김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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