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 확대 이후의 공정[오늘과 내일/신연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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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 폐지-정시 확대로 공정해질까
일반고의 다양성과 교육이 향상돼야

신연수 논설위원
신연수 논설위원
‘조국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공정에 대한 요구가 아주 높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대학 입학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폐지와 정시 확대다. 논란이 많지만 여론조사를 보면 대체로 둘 다 찬성이 높은 것으로 나온다.

자사고나 외국어고는 등록금과 수업료가 일반고의 3배가 넘는다. 한 해 1000만 원이 넘는 곳도 많아서 서민들은 자녀를 보내기 어렵다. 대부분의 자사고나 외고는 설립 취지인 다양성과 자율성을 위한 교육을 하지 않을뿐더러, 돈 많은 집 자녀들끼리 모여 더 좋은 교육을 받고 더 좋은 대학에 가는 건 국민이 요구하는 공정이라고 보기 힘들다.

가난한 집 아이나 부잣집 아이나 공평하게 좋은 교육을 제공하는 건 나라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투자이기도 하다. 독일 스웨덴 등 유럽 선진국들이 고교 무상교육은 물론이고 대학 등록금까지 면제해 돈이 없어도 실력만 있으면 대학에 갈 수 있게 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정시 확대가 공정으로 가는 길인가는 좀 복잡하다. 우선 대입 공정성 여부를 떠나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교육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면 수능이나 정시가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다. 수학문제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앱에 올리면 인공지능(AI)이 정답을 맞히는 시대다. 정답이 있는 문제만 계속 풀 게 아니라 정답 없이 스스로 질문하고 새로운 답을 생각해내는 창의적이고 다양한 교육을 장려하는 데는 학생부종합전형식 수시가 낫다.

일반고 교사들은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도 수시가 낫다고 말한다. 입학 통계를 보면 고소득층 자녀일수록 정시로 대학을 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수시가 급격하게 늘어났지만 고교와 대학의 공정성과 투명성은 그만큼 따라가지 못했다. 현재 우리 사회의 신뢰 수준과 국민 선호도를 볼 때 당분간 정시의 확대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정시 확대와 자사고 폐지가 끝이 아니다. 교육이 아이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고 계층사다리 역할을 하려면 일반고의 품질이 높아져야 한다. 정부는 5년간 2조 원을 들여 일반고에서도 ‘맞춤형 심화 학습’을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일부 자사고의 장점인 수업의 다양성을 일반고에 확대해 학생들이 관심 있는 과목 중심으로 듣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 맞춤형 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진보나 보수 모두 추구하는 방향이며 현장에선 이미 확대되는 추세다. 일반고 안에서 다양성과 수월성, 자율성 교육을 잘하는 것, 여기에 교육의 성패가 달렸다.

특성화고(실업계고)의 교육을 향상시키고, 학교 밖 아이들을 잘 돌봐서 사회로 복귀시키는 일에도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있는 집 자식들은 유학을 보내든, 과외를 하든 필요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정부가 더 관여하고 투자할 곳은 가난한 아이들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각종 지원제도를 마련하고, 뒤처진 아이들을 끌어올려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수시건 정시건, 자사고건 일반고건 결국 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에 갈 수 있는 사람은 50만 명 가운데 1만 명에 불과하다. 명문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평생 2류 인생 취급하는 학벌 차별을 줄이고, 평생교육과 패자부활전이 활발해져야 입시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유럽의 선진국들처럼 고교만 졸업해도 열심히 일하면 끼니 걱정 안 하고 직장에서 갑질 안 당하고 인간적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좋은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교육정책만으로 안 되고 소득 양극화 축소, 사회안전망 확대 같은 경제 사회 정책이 같이 가야 하는 이유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자사고 폐지#정시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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