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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있는 민식이법[횡설수설/이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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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있는 민식이법[횡설수설/이진구]

이진구 논설위원 입력 2019-11-13 03:00수정 2019-11-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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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중순,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아홉 살 난 김민식 군이 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맞은편에는 김 군의 부모가 운영하는 치킨 집이 있었는데 가게에 있던 김 군의 어머니와 두 살 어린 동생은 사고 현장을 다 보았다고 한다. 사고를 낸 운전자는 시속 30km인 스쿨존 제한 속도를 지키지 않았다.

▷49재도 끝나기 전인 지난달 1일 김 군의 아버지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자식을 지키지 못한 못난 아비가 아들이 가는 길에 마지막이라도 역할을 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내용이다. 그는 다시는 민식이처럼 억울한 피해자가 없게 스쿨존 안에 의무적으로 신호등과 과속단속카메라를 설치하고, 사고 시 가중 처벌해 달라고 요청했다. 김 군이 사고를 당한 횡단보도에는 신호등도 과속단속카메라도 없었다.

▷안타까운 소식이 알려지면서 지난달 11일 ‘민식이법’으로 불리는 도로교통법 개정안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다. 김 군의 부모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 통과를 호소했고, 친인척까지 나서 서명운동을 펼쳤다. 김 군의 어머니는 40여 명의 국회의원에게 손편지를 보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민식이법’은 해당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에서 논의 한 번 안 되고 잠자고 있는 상태다. 국민 청원도 11만2789명으로 기준인 20만 명을 못 채워 답변도 받지 못한 채 지난달 31일 종료됐다. 전국 스쿨존 1만6000여 곳에서 최근 5년간 31명이 죽고, 25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스쿨존 중 과속단속카메라가 있는 곳은 4.9%인 820곳에 불과하다. 내년 스쿨존 관련 예산 230억 원이 편성됐지만 모두 새 구역 지정이나 확장일 뿐, 단속카메라나 신호등 설치비는 전무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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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국회 앞에서는 민식 군의 부모를 비롯해 6명의 부모들이 마이크를 잡고 법 통과를 호소했다. 모두 ‘하준이법’ ‘혜인이법’ 등 숨진 자녀의 이름을 딴 ‘어린이 생명안전법안’들이 수년째 국회에 계류된 부모들이다. 부모들은 닷새간 의원실 300곳을 돌며 부탁했는데 의원들은 “쟁점법안도 아닌데 왜 계류돼 있지?”라며 오히려 진행 과정을 되물었다고 한다. 국가가 책임을 통감하고 앞장서도 모자랄 판에 거꾸로 피해자 가족들이 부탁하고 호소하는 상황은 정상이 아닐 것이다. 국가만 탓할 일도 아니다. 어린 생명이 희생돼도 반짝 관심뿐인 우리 모두가 부끄러운 일이다. 정기국회는 다음 달 10일 종료된다. 이대로 가면 민식이법은 사실상 폐기될 운명이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민식이법#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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