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잇장 된 돈’…베네수엘라선 주유하고 담배 한 대 낸다

  • 뉴스1
  • 입력 2019년 10월 23일 1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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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돈이 종이조각에 불과해진 베네수엘라에서 유류를 뺀 다른 물품의 부족해 차에 기름을 채우고는 담배 한 가치 정도만 건네면 되는 상황이 됐다고 22일(현지시간) AP통신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초인플레이션으로 베네수엘라 지폐인 볼리바르화는 거의 통용되지 않고 있다. 가장 작은 단위 화폐인 50볼리바르는 미국 1페니(약 12원)의 25% 가치인데 시내버스와 은행들조차 이를 받아주지 않는다. 최대 단위인 5만볼리바르는 미국 달러로 2.5달러에 해당한다.

돈이 제 기능을 잃자 베네수엘라에서는 물물교환이 성행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네수엘라에서 기름값은 유류 보조금 등으로 거의 공짜나 다름없다. 그래서 주유 후 지갑에 현금이 없으면 쌀 한봉지나 식용유 등 손에 잡히는 아무 물건이나 건네주면 된다고.

AP통신에 따르면 한 운전자는 자신의 소형 포드 자동차에 주유하면서 “담배 한 대만 줘도 된다”면서 “누구나 석유가 공짜가 되어가고 있다는 걸 안다”고 말했다.

‘한 나라 두 대통령’이란 혼란을 겪고 있는 인구 3000만명의 베네수엘라는 격렬한 시위와 대규모 정전 등으로 안정된 삶에 대한 기대는 사라진 지 오래다. 최근 몇 년간 400만 명 이상의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저임금, 의료 서비스 붕괴,보안 부족을 피해 해외로 도피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이 20만%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인플레이션을 따라잡기 위해 화폐에서 ‘0’을 5개나 지우는 통화가치 절하를 단행했지만 치솟는 물가 때문에 새 지폐 역시 무용지물이 된 상황이다.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가진 베네수엘라는 한때 부유했지만 사회주의 통치 20년 동안 부패 등으로 경제가 붕괴됐다. 국가 재정 재건을 위해서는 휘발유 가격 인상이 필요한데 베네수엘라에서 이 문제는 아킬레스 건이다. 1989년 당시 대통령이 연료가격의 소폭 인상을 지시한 후 폭동이 일어나 약 300명이 사망한데서 보듯 시민들의 저항이 큰 품목이 휘발유다.

최근 유류 보조금을 중단하려다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있는 에콰도르의 사례를 보면서 베네수엘라 정부는 더욱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상황이 됐다. 정전과 단수 등을 겪으면서도 휘발유만은 걱정없이 쓰던 시민들에게 유가 인상이 가져올 상황은 남다른 박탈감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휘발유 가격 자체는 싸지만 주유하려면 카라카스 등 대도시에서는 길게 줄을 서야 하는 모순도 발생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 제재로 석유 수출이 막히자 원유에 넣을 희석재를 살 수 없고, 생산 설비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석유 생산이 줄었기 때문이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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