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영업활동 하기엔 ‘CEO 리스크’ 너무 큰 위험 부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21일 20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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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도 (직장 내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한) 비슷한 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회사의 여러 지사 중 로스앤젤레스 사무소에서 문제가 생겼다? 그럼 그 사무소가 문제지 시카고 본사에 있는 최고경영자(CEO)가 (형사처벌) 리스크를 떠안지 않아요.”

21일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하지만 한국에서는 CEO 밑에 1만 명 직원 한 명의 문제가 곧 CEO의 리스크가 된다”며 “우리도 올바른 일을 하고 싶은데 한국에서 영업 활동하는 CEO에게는 (사업주 형사처벌 법안이) 너무 큰 위험 부담”이라고 토로했다.

김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개최한 좌담회에서 언급한 ‘CEO 리크스’에서 든 사례는 지난 7월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다. 해당 법에 따르면 회사는 직장 내 괴롭힘이 사실로 확인되면 △피해자의 근무지를 변경하고 △가해자를 징계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준 회사의 사업주, 즉 CEO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일상적인 경영활동 중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규제 위반의 끝이 사법기관의 CEO 소환이나 형사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오랫동안 경영계가 호소해 온 리스크이다. 한 독일계 기업 한국지사 관계자는 “한국이 근로자의 삶을 개선하려는 법제도를 적극 지지한다”면서도 “글로벌 평균에 비해 다소 깐깐하거나 바로 적응하기 어려운 규제도 적지 않은데 결국은 CEO가 형사처벌 대상이 되기 쉬운 점이 우려스러운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공정거래법, 산업안전보건법, 화학물질관리법 등 10개 경제 노동 환경 관련법의 357개 벌칙조항 가운데 315개(88.2%)가 법 위반 당사자뿐 아니라 사업주(대표이사·CEO)에 대한 형사처벌 근거를 두고 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CEO들이 두려워하는 대표적인 법안 중 하나다. 원청업체의 안전조치 소홀로 하도급업체 직원이 사망하면 원청업체 CEO가 최대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사망이 아닌 규칙 위반으로도 최대 5년 이하의 징역을 살 수 있다. 반면 미국과 독일은 근로자가 사망할 경우에만 최대 1년 이하 징역에 처할 수 있고, 나머지는 과태료 수준이다.

투자 의사결정이 결국 실패로 끝나면 CEO는 배임죄로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각오해야 한다. 주 52시간 근로제를 어기거나 노조의 권리를 침해하는 부당노동행위도 회사 CEO가 처벌 대상이 된다. 부당노동행위 시 CEO 형사처벌은 한국에만 있는 규정이다.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도 한국에서의 기업활동을 어렵게 하는 문제로 꼽힌다. 이날 좌담회에 참석한 크리스토프 하이더만 주한유럽상공회의소 사무총장은 “한국만의 규정이 많다”고 언급하며 “인공지능(AI), 핀테크 등 혁신 제품과 서비스의 개발 속도는 매우 빠르다. 정부가 새로운 산업을 혼자서 자체적으로 규제 하기는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기술을 이해해야 되고 또 이해를 하고 나서 이해 당사자들과 협의를 하고 정부가 규제를 채택해야 되는데 너무 복잡하다”며 “차라리 우선 (정부가) 좀 더 국제적인 표준을 응용하고 채택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산업을 일일이 규제로 대응하다보니 모빌리티, 원격의료 등 신산업 관련 투자가 어렵다는 점을 꼬집은 것으로 보인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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