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미건조한 도시’ 스파르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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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0월 21일 15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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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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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필자가 유럽 답사는 꿈도 못 꾸던 시절에 한 서양사 전공자에게 물었다. “스파르타에 가 보신 적 있으세요?” 돌아온 대답은 “갈 필요가 없다”였다. 아테네에는 유적들이 잔뜩 남아 있지만, 스파르타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다. 관광객의 기준에서 보니 뭐가 없기는 없다. 스파르타의 아르테미스 신전은 터만 남아 있고, 철조망이 둘려져 있다. 아고라는 올리브 나무 숲 속에 몇 개의 돌로만 남아 있다.

현재의 스파르타시는 19세기에 재건한 것이다. 중세에 바로 옆에 있는 미트라스가 번성하면서 스파르타는 거의 형체도 없는 농촌으로 변했다가 옛 명성에 힘입어 극적으로 부활했다. 기원전 5세기 전성기에도 스파르타는 화려함과는 담을 쌓은 병영 도시였다. 청소년들은 병영 같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딱딱한 빵과 돼지 피가 섞인 검은 스프를 마셨다.

그러니 그 시절에 이곳을 찾았어도 스파르타는 무미건조한 도시였을 것이다. 스파르타인들은 왜 이런 식으로 살았을까? 역사는 그들보다 몇 배는 많은 헤일로타이를 지배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곳에 직접 와서 보니 한 가지 이유가 더 보인다. 스파르타시는 평평한 평원 한가운데 있다. 아테네만 해도 아크로폴리스는 대단한 요새이다. 여긴 그런 곳이 없다. 인근에 천혜의 요새인 미스트라가 있지만 스파르타인들은 그런 곳에 사는 것을 거부했다. 평원에 도시를 세우고 주변을 지배하려니 그들은 강해져야 했다.

이것이 스파르타식 교육과 훈련의 원인이다. 그래도 지형이나 요새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스파르타인들은 그런 것은 정신을 나약하게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투지와 용기가 없는 자에게 첨단무기, 천혜의 요새 따위는 아무 쓸모도 없다고 말이다.

첨단기술의 시대에 이런 발언은 고리타분하게 들릴 수 있지만, 아무리 최신 무기를 보유한 군대라고 해도 용기와 투지가 결여되면 싸워서 승리할 수 없다. 설사 최첨단의 기술을 보유했다고 해도 전사의 외침은 “우리는 너보다 좋은 무기를 지녔다”가 아니라 “우리는 전사이다”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예나 지금이나 눈요기 거리는 무시하는 스파르타가 방문자에게 주는 교훈이 아닐까?

임용한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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