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악 ‘조국’ 국감, 공무원들은 기뻐했다[광화문에서/길진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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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진균 정치부 차장
길진균 정치부 차장
국정감사가 며칠 남았지만 총평을 미리 말해도 별 무리는 없을 듯하다. 최악의 흉작이다. 아무리 여야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이슈에 올인했다고 해도, 적어도 입법부가 행정부의 불필요한 예산 집행이나 방만한 업무를 걸러내는 국정감사 본연의 역할을 생각하면 올해 국감은 최악이라는 것이다.

국회의원과 보좌진에게 국정감사는 한 해 농사나 다름없다. 특히 야당이 그렇다. 각 부처 및 산하 기관이 쉬쉬하는 잘못된 정책과 문제점을 찾아내 주요 이슈로 만들고 대안을 내놓으면 능력 있는 국회의원, 열심히 일한 정치인으로 인정받는다. 다음 선거에서 당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보좌진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한 방’ 터뜨린 보좌진은 그 이름이 여의도에서 회자되고, 자연스럽게 몸값이 올라간다. 내년 시즌엔 더 높은 직급과 연봉 등 더 좋은 대우를 받고 다른 의원실로 영입되기도 한다. 막강한 정보력을 가진 보좌관은 웬만한 초선 의원 이상의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 때문에 국감이 시작되는 10월이면 여의도 국회의사당 주변은 전쟁의 서막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곤 했다. 의원과 보좌진은 추석 연휴를 반납한 채 사무실에서 밤을 새워가며 각 부처 및 산하기관이 제출한 공개·비공개 자료를 분석하고 정책 질의서를 만든다. 언론에서 ‘특종’이나 ‘단독’이라고 보도하는 국정감사 기사는 대부분 이런 생산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올해는 이렇다 할 ‘한 방’ 없이 ‘조국’으로 시작해 ‘조국’으로 끝나가고 있다.

그렇다고 올해 각 의원과 보좌진이 국감 준비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니다. 예년과 비슷한 과정이 반복됐다. 실제 각 의원실에서 내놓는 보도자료나 질의서 속에는 깜짝 놀랄 정도로 좋은 내용이 많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연구기관, 연구 중도 중단으로 세금 2030억 원 사라져”(더불어민주당 김성수 의원)

“말고기 절반 약물 투여 은퇴경주마”(바른미래당 정운천 의원).

지난 주말 이틀 동안 e메일로 들어온 수십 건의 보도자료 중 극히 일부다. 평소라면 각 언론에서 주요 뉴스나 기획 보도로 다뤄도 손색이 없는 내용이다. ‘조국 정국’에 묻혔을 뿐이다. 수개월의 노력 끝에 만들어진 자료와 제안들은 이제 의원실 컴퓨터 속에 방치될 운명이다.

반면 각 부처 공무원들은 “올해는 조 전 장관님 덕분에 어느 해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국감을 치렀다”며 기뻐하고 있다. 한 부처 국회담당 공무원은 “올해처럼 국감 기간 동안 주말에 쉬어 본 기억이 거의 없다”고 했다.

여야의 정치 게임이 정치의 전부는 아니다. 입법부가 제대로 견제하지 못하면 행정부의 독주를 막을 수 없다. 각 당은 국감이 끝나면 의정활동 평가를 위해 각 의원실이 배포한 국감 자료, 언론 보도 등을 취합한다. 이렇게 모은 자료들은 해마다 평가 자료로 활용된 뒤 폐기되기를 반복돼 왔다. 국감 자료를 기반으로 당 차원의 더욱 정교한 정책 자료집을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입법안을 만들어내는 선순환 구조가 구축돼야 한다. 내년엔 총선, 이듬해엔 대선이 치러진다. 여든 야든 신뢰할 수 있는 수권 정당의 모습을 보여줘야 살아남을 수 있다.

길진균 정치부 차장 leon@donga.com
#조국#국정감사#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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