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 막는다고 동네 서점 살아날까

  • 주간동아
  • 입력 2019년 10월 19일 12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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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업, 제1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으로 대기업 서점 신규 출점 제한
“완전도서정가제 도입, 문화 프로그램 지원 사업 확대를”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에 입점한 영풍문고. 사진 제공 · 아이파크몰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에 입점한 영풍문고. 사진 제공 · 아이파크몰
서울 동작구에 사는 박모(38·여) 씨는 다섯 살 난 아이를 데리고 외출할 때 여의도 IFC몰을 자주 찾는다. 주차하기 편하고 식당이 여러 개 있을 뿐 아니라, 대형서점 영풍문고가 입점해 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동화책과 교구, 장난감을 구입하기에도 좋다”고 말했다. 집 근처 대형마트도 동화책과 장난감을 팔지만, 여유롭게 앉을 만한 공간이 없고 다소 복작한 분위기라 ‘문화생활’을 즐긴다는 기분을 느낄 수 없다. 그는 “아이 책을 사는 김에 요즘 어떤 책이 인기 있는지 두루 살펴보며 내가 읽을 책을 고를 수 있다는 점도 대형서점을 선호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대형서점 1년에 한 개만 오픈 가능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몰의 반디앤루니스(왼쪽)와 서울 마포구 합정동 딜라이트스퀘어의 교보문고. 박경모 동아일보 기자, 조영철 기자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몰의 반디앤루니스(왼쪽)와 서울 마포구 합정동 딜라이트스퀘어의 교보문고. 박경모 동아일보 기자, 조영철 기자
그런데 문화공간 역할을 하는 대형서점의 확산에 제동이 걸렸다. 이달 초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가 ‘서적, 신문 및 잡지류 소매업’(서점업)을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에 따른 제1호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면서 대기업 등에 속하는 대형서점의 신규 출점이 2024년 10월까지 5년간 제한된다. 중기부는 △연 1개 신규 영업점 출점을 허용하지만 36개월간 초중고교 학습참고서 판매를 금지하며 △서점업 사업체를 인수·개시·확장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기존 영업점을 폐점하고 인근으로 이전하거나 카페 등 타 업종과 융복합한 서점은 허용하기로 했다. 융복합 서점의 서적 매출 비중은 50% 미만이어야 하고, 서적 판매 면적이 1000㎡ 이하여야 한다.

중기부는 서점업에서 소상공인 비중이 90%에 달할 뿐 아니라, 최근 대기업 서점이 크게 증가하면서 인근 동네 서점의 매출이 감소하고 폐업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이번 규제안의 배경으로 설명한다.

실제 중기부가 2014년 1월부터 2016년 6월까지 전국 대기업 서점이 새로 문을 연 지역의 동네 서점 현황을 신용카드 데이터로 전수조사해 분석한 결과, 대기업 서점 개점 전 310만 원이던 동네 서점의 월평균 매출액이 개점 18개월 미만까지 280만 원, 18개월 이후 270만 원으로 10~13% 감소했다(표 참조). 대기업 서점 인근 4km 내 동네 서점 수는 대기업 서점 개점 전 평균 17.85개에서 개점 18개월 이후 14.07개로 줄어들었다. 대형서점 하나에 동네 서점 3개가 사라진 꼴이다.

이번 규제를 받게 된 ‘대기업 등에 속하는’ 서점은 교보문고, 영풍문고, 서울문고(서점명 반디앤루니스), 그리고 대교문고다. 온라인 서점인 예스24, 알라딘, 인터파크는 신간을 판매하는 오프라인 서점에 진출할 경우 규제 대상이 된다. 단, 중고책을 판매하는 온라인 중고서점은 ‘고물상’으로 분류돼 규제 대상이 아니다.

대형서점은 “정부 정책에 성실히 따를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지만 적잖은 불만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출판시장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데다 온라인 구매 비중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라 대형서점 형편도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온라인 서점 매출은 2009년 1조 원에서 지난해 1조8200억 원으로 10년 만에 2배 가까이 상승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년마다 실시하는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평소 책을 구입하는 곳에 대한 질문에서 2017년 성인 응답자의 38.5%가 시내 대형서점을, 23.7%가 인터넷 쇼핑몰을 꼽았다. 한 출판업계 관계자는 “최근 2년 사이 온라인 서점의 성장세가 더 가팔랐고 젊은 층의 인터넷 구매 선호도가 뚜렷해졌기 때문에 올해 말 발표되는 조사에서는 주요 구입처 응답에서 대형서점과 온라인 서점의 격차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매출 성장세 차이도 크다. 예스24 매출이 2013년 3304억 원에서 2018년 4856억 원으로 5년 새 47%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교보문고 매출은 6% 증가(2013년 5351억 원?→?2018년 5684억 원)에 그쳤다. 영풍문고와 서울문고의 지난해 매출액은 각각 1352억 원, 826억 원으로 예스24에 한참 밀린다. ㈜대교는 8월 서울 용산구 서울역사에 위치한 대교문고의 문을 닫으면서 아예 서점 사업에서 철수했다. 한 대형서점 관계자는 “중기부는 대기업 서점이 2013년 63개에서 2018년 105개로 크게 늘었다고 하지만, 최근 시장에서 철수한 대교문고를 제외하면 83개(교보문고 36개, 영풍문고 35개, 반디앤루니스 12개)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1위 교보문고가 그나마 선방하는 이유로도 ‘온라인 판매’가 꼽힌다. 교보문고의 온라인 매출은 오프라인 매출과 비슷할 정도로 크게 상승했다. 고객이 온라인에서 10% 할인된 가격에 미리 결제하고 영업점에 들러 책을 받아가는 ‘바로드림’ 서비스가 꽤 호응이 좋은데, 이것 역시 온라인 매출로 잡힌다.

동네 서점 와서 구입은 모바일로

교보문고와 영풍문고는 올해 하반기 신규 영업점 오픈을 계획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당장 영업에 차질이 생기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연간 1개의 신규 출점을 허용한다 해도 실제 출점을 결정하기에는 부담이 커졌다는 게 이들 회사의 입장. 교보문고 관계자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신규 영업점의 학습참고서 판매가 18개월간 금지됐던 게 이번 규제에서는 36개월로 늘어난 것이 특히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중기부는 동네 서점의 주요 매출처가 학습참고서라는 이유로 대기업 신규 영업점의 학습참고서 판매 금지 기간을 종전보다 늘렸는데, 교보문고 역시 학습참고서 매출 비중이 11%로 적잖은 수준이다. 영풍문고 관계자는 “매장 계약 기간이 보통 5년 단위고, 인테리어 비용이 계속 투입되기 때문에 초기 3년간 학습참고서를 판매할 수 없다면 이익을 내기가 난망하다”고 말했다.

대형서점만 없으면 동네 서점은 살아날까. 학습참고서는 팔지 않고 개성 있는 도서 큐레이션(curation·선별 및 전시, 유통)을 내세우는 ‘독립서점’을 2011년부터 시작한 서울 마포구 합정동 ‘땡스북스’의 이기섭 대표는 “대기업 서점이 새로 오픈하면서 매출에 타격을 입었지만, 결과적으로 손님들은 대형서점과 동네 서점을 함께 즐기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알라딘 중고서점 신촌점과 교보문고 합정점 오픈 이후 땡스북스 매출이 각각 10%와 40% 감소했는데, 이는 방문 손님의 수가 줄었기 때문이 아니라, 보통 2~3권씩 구매하던 손님이 1권 정도만 구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대표는 “대형서점과 동네 서점은 지향하는 바가 달라, 손님 입장에서는 각각의 장점을 다 누리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포구의 또 다른 독립서점 대표는 “대형서점보다 온라인 서점이 더 큰 경쟁자”라고 했다. “매장에 전시된 책을 두루 둘러보다 들고 있던 스마트폰으로 온라인 주문을 하는 손님이 꽤 많다”는 것. 도서정가제에 따라 책의 최대 할인 폭은 온·오프라인을 불문하고 15%로 동일하지만, 온라인 서점은 신용카드사와 제휴 등을 통해 사실상 추가 할인을 시행하고 포인트 적립 같은 혜택도 제공한다.

‘변질된 서점’ 판칠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의 알라딘 중고서점(오른쪽)과 동네 서점에서 학습참고서를 살펴보는 여고생. 뉴스1, 박해윤 기자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의 알라딘 중고서점(오른쪽)과 동네 서점에서 학습참고서를 살펴보는 여고생. 뉴스1, 박해윤 기자
중기부에 서점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요청한 이종복 한국서점조합연합회 회장(한길서적 대표)은 “온라인 서점의 위협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서점으로부터 소외된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온라인 서점에서 얻는 편익을 고려해 온라인 서점에 대한 규제는 요구하지 않았다”며 “이번 대기업 서점의 출점 제한은 대형서점의 증가로 갈수록 경영이 어려워지는 서적 도매업체를 살리고, 이들 도매업체 의존도가 큰 군소도시 동네 서점도 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음사 대표를 지낸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융복합형 서점에 한해 규제하지 않겠다는 정부 방침이 오히려 대기업의 서점업 진출 방식을 안내한 결과가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며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부터 시작한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과 같이 동네 서점의 역량을 키우는 문화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견해를 피력했다. 이기섭 대표는 “프랑스, 일본 등 문화적 성숙도가 높은 국가들은 도서 할인을 금지하는 완전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다”며 “문화적 다양성을 위해 동네 서점이 더 많아지려면 한국도 완전도서정가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210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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