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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탄 초인?…김정은의 ‘백마정치’ [하태원 기자의 우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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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탄 초인?…김정은의 ‘백마정치’ [하태원 기자의 우아한]

하태원 채널A 보도제작팀장 입력 2019-10-17 14:00수정 2019-10-1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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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북한관영매체들이 전한 김정은의 백두산 방문 사진. 김 위원장의 왼쪽은 김여정 부부장. 두 사람의 말에만 별이 달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북한에서 백마는 이른바 백두혈통의 상징처럼 돼 있는 존재입니다. 저 유명한 이육사(1904~1944)의 시(時) ‘광야’에 등장하는 백마를 탄 초인의 영향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입니다. 내친 김에 시의 한 소절을 인용해볼까요.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북한 체제는 김일성이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국부(國父)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해방정국에서 내린 결단으로 한반도 북쪽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건설했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신생체제의 지도자로서 항일 빨치산 활동을 했던 ‘초인(超人)’의 이미지를 갖고 싶었을 것으로 해석해도 큰 무리는 아닙니다.


실제로 북한을 여행해 보면 곳곳에서 백마를 탄 김씨 일가의 이미지(주로 그림)를 마주칠 수 있습니다.
북한의 주요 기념관에는 김일성이 항일 빨치산 활동을 하던 시절이라며 백마를 타고 만주일대와 백두산을 누비던 모습을 담은 그림이 곳곳에 전시돼 있다. 자료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다른 사람들과 달리 김일성 주석만 백마를 탄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백두산 천지에 올라 어린 아이(김정일로 추정)를 안고 있는 모습 역시 백두혈통의 순수성을 천명하겠다는 선전화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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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탄 초인의 이미지는 김일성 주석을 거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내려옵니다.

어린시절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나란히 백마를 타는 모습이나 하얀 갈기를 휘날리는 백마를 타고 질주하는 모습 역시 북한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는 김정은의 이미지입니다.
북한기록영화와 관영매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백마 탄 이미지를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김정은(왼쪽 사진 오른쪽)이 어린시절 김정일 위원장과 평양인근에서 승마를 즐기는 모습 조선일보 제공. 북한 기록영화에 등장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오른쪽 사진) 출처 조선중앙TV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등장하는 사진은 사실 김 위원장의 3대 세습을 정당화하는 상징적인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김정은 집권기에 들어서는 이런 내용이 방송되기도 했습니다.
2014년 조선중앙TV 방송 내용중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어리신 장군님께서 얼마나 신이나게 말을 잘 타시고 총을 잘 쏘셨는지….
이날 백두산의 대 장수이신 김일성 대원수님과 백두산의 여 장수이신
김정숙 어머님께서 ‘백두산의 아들이 다르긴 다르구나, 훌륭한
장수감이로구나’ 하면서 기뻐하시었습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내용이지만 북한에서는 흔하게 볼 수 있는 김씨 일가에 대한 미화입니다. 백마를 타는 특권은 종종 김씨 일가에게로도 확대됩니다.
김여정 부부장이 백마를 타는 모습(왼쪽). 김 부부장의 오른 쪽은 김 위원장의 고모인 김경희. 자료 조선중앙TV

2012년 11월 북한의 조선중앙TV는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과 고모 김경희가 나란히 백마를 타는 모습을 공개했습니다.

16일 북한이 공개한 김정은 위원장의 백마사진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돼 있습니다. 관영매체들은 “백두산과 양강도 삼지연군 건설 현장을 방문했다”고 전하면서 백마를 타고 달리는 김 위원장의 사진을 대대적으로 공개했습니다.

이날 방문에서 김 위원장은 “미국을 위수로 하는 반공화국 적대세력들이 강요해온 고통은 이제 우리 인민의 분노로 변했다”고 밝혔습니다. 실무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미국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내용이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김여정 부부장이 백마를 탄 채 백두산 지역을 달리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중요한 계기에 백두산을 방문하곤 했습니다. 2013년 11월 말 방문 직후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처형한 적이 있습니다. 2017년 12월 방문 후 이듬해 1월에는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에 나섰고 그해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실제로 이번 방문 직후 북한 노동신문은 “혁명사에서 진폭이 큰 의의를 가지는 사변” “우리 혁명이 한걸음 전진될 웅대한 작전이 펼쳐질 것”이라는 등의 메시지를 내놨습니다.

불쑥 공개된 김정은 위원장의 백두산 방문이 한반도 정세 및 북-미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어쩌면 2020년 0시를 기해 발표될 김정은의 신년사를 기다려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불행히도 탄핵정국에서 재선이 위태로워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관심 끌기’에 별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이래저래 문재인 대통령의 속만 시커멓게 타들어갈 것 같습니다.

하태원 채널A 보도제작팀장(부장급·정치학 박사수료)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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