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렬도’ 새긴 1500년전 신라토기 출토… 고구려 영향 받은듯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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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쪽샘지구 44호 고분서
높이 40cm 추정 토기 겉면에 기마-수렵-동물 그림 가득 담겨
무용총-안악 3호분 벽화와 유사… 말문양 그릇 받침대 조각 2점도

토기 문양을 추정해 이어 붙인 전개도. 짙은 부분은 실제 토기편의 그림이고, 옅은 부분은 추정한 부분이다. 말을 탄 인물이 말 2마리와 행렬하는 장면(1)과 이를 따라가는 인물들이 춤을 추는 장면(2), 활을 든 이들이 다양한 동물을 사냥하는 장면(3), 주인공이 개를 데리고 지나가는 장면(4)으로 구성돼 있다. 문화재청 제공
토기 문양을 추정해 이어 붙인 전개도. 짙은 부분은 실제 토기편의 그림이고, 옅은 부분은 추정한 부분이다. 말을 탄 인물이 말 2마리와 행렬하는 장면(1)과 이를 따라가는 인물들이 춤을 추는 장면(2), 활을 든 이들이 다양한 동물을 사냥하는 장면(3), 주인공이 개를 데리고 지나가는 장면(4)으로 구성돼 있다. 문화재청 제공
말을 탄 주인공이 개로 보이는 동물을 데리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활을 든 이들은 사슴 등 여러 동물을 향해 시위를 당기려 한다. 또 다른 인물들은 춤을 추는 듯 기마행렬을 따른다. 1500년 전 무덤 주인공의 생전 활동 모습을 그린 것일까, 저승에서의 영화(榮華)를 기원한 그림일까.

경북 경주시 황오동 쪽샘지구 44호 무덤에서 이런 행렬도를 새긴 5세기 장경호(長頸壺·목이 긴 토기 항아리)가 출토됐다. 이종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행렬이라는 큰 주제를 바탕으로 기마, 무용, 수렵하는 이들이 복합적으로 그려진 토기가 발견된 건 처음”이라며 “내용의 구성이 풍부하고 회화성이 우수한 귀중 자료”라고 16일 밝혔다.

경북 경주시 쪽샘지구 44호 무덤에서 출토된 5세기 제사용 토기 파편. 겉면에 선으로 기마행렬과 무용, 수렵 등을 그린 행렬도를 묘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내용을 복합적으로 그린 토기가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경주=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경북 경주시 쪽샘지구 44호 무덤에서 출토된 5세기 제사용 토기 파편. 겉면에 선으로 기마행렬과 무용, 수렵 등을 그린 행렬도를 묘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내용을 복합적으로 그린 토기가 발견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경주=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행렬도가 새겨진 토기는 무덤 둘레의 호석(護石) 북쪽 자갈을 깐 층에서 깨진 상태로 일부 조각이 나왔다. 문양은 크게 4단으로 위쪽 1, 2단과 제일 밑단에는 기하학적 문양을 반복했고 3단에 인물과 사슴 멧돼지 말 개 등 동물을 표현했다. 문양과 그림은 빗처럼 생긴 도구로 쓸듯이 새겼다. 제사용 토기로 보이며 원래 높이는 약 40cm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행렬도의 주제가 무용총 수렵도와 무용도, 안악 3호분 행렬도를 비롯한 고구려 고분벽화와 유사해 주목된다. 말의 머리 부분 갈기를 묶어 뿔처럼 묘사한 점은 안악 3호분 행렬도와 유사하다. 인물들이 팔을 나란히 든 모습은 무용도와 닮은 점이 있다. 이 연장선상에서 행렬의 주인공과 함께 있는 개는 고구려 벽화처럼 무덤을 지키는 역할을 맡은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번 토기는 신라가 5세기 초 관계가 밀접했던 고구려의 문화적 영향을 받은 증거로 해석된다. 5세기 전 시대에 풍경화에 가까운 행렬도가 그려진 신라 토기는 없었다. 전호태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그러나 고구려와 중국의 장례 관련 그림에서는 사냥과 행렬이 흔한 테마”라며 “토기에 드러난 회화적 요소는 서기 400년 이후 신라가 고구려 전성기의 문화로부터 압도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말 문양이 그려진 그릇 받침대 조각(위 사진)과 이를 바탕으로 추정해 복원한 말 문양. 문화재청 제공
말 문양이 그려진 그릇 받침대 조각(위 사진)과 이를 바탕으로 추정해 복원한 말 문양. 문화재청 제공
쪽샘지구 44호 무덤에서는 말 문양이 그려진 발형기대(鉢形器臺·굽다리접시를 확대한 모양의 그릇 받침대) 조각도 출토됐다. 말갈기, 발굽, 관절 등 말 2마리의 모습이 묘사됐다. 몸통의 격자무늬는 말 갑옷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호석 주변에서 대호(大壺·큰항아리) 9점을 비롯한 제사 유물 110여 점이 출토됐다. 대호는 호석을 따라 일정 간격으로 배치됐고, 그 안팎에서 굽다리접시(高杯·고배), 뚜껑 접시(蓋杯·개배), 흙 방울(土鈴·토령) 등 소형 토기들을 발견했다.

쪽샘지구 44호 무덤은 지름 약 30m의 중간 크기 적석목곽묘(積石木槨墓·돌무지덧널무덤)다. 2014년 발굴을 시작했다. 연구소는 내년까지 돌을 쌓아놓은 적석부를 건축적, 구조공학적 관점에서 정밀 조사하고 시신과 부장품을 두는 매장 주체부를 발굴할 방침이다. 쪽샘지구에는 4∼6세기 신라 왕족과 귀족의 무덤 1100여 기가 몰려 있다.

경주=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경주 쪽샘지구#쪽샘지구 44호 고분#행렬도#신라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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