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은 장기전[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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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서장원 기자 yankeey@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정신분석은 그 어떤 치료보다도 오래 걸립니다. 오래 걸리기도 하지만 깊게 진행됩니다. 21세기 문화, 특히 우리의 ‘빨리빨리’와 갈등 관계에 있습니다. 궁금해서 미국, 프랑스 등 정신분석을 일찍 도입한 나라들 상황을 알아보니 10년도 넘게 이어지는 분석, 한 분석가와 끝나고 다른 분석가와 다시 하는 분석도 흔히 있습니다. 우리는 그 나라들 기준의 절반도 안 되는, 5년 동안 이어가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수년 동안 시간과 비용과 에너지를 집중적으로 쏟아야 하는 마음과 입장이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분석이 제대로 효과를 거두려면 최소 5년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장기 치료인 분석이 마땅치 않다면 단기간 이루어지는, 심지어 딱 10회 식의 치료도 있습니다만 목표도 아주 다르고 효과도 전혀 다릅니다. 비유하자면 분석이 언제 불이 나도 잘 견디며 끌 수 있도록 건물 전체를 정비하려 한다면, 단기 치료는 이미 나버린 급한 불만 끄는 정도로 하는 겁니다.

그렇게 오래 걸리는 분석이 과연 무슨 효과를 보는지가 궁금해지실 겁니다. 마음이 거울처럼 환하게 밝아지고, 세상의 모든 고민에서 해방되며, 늘 행복하게 변할까요?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세상일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주변을 서성이며, 미래는 안개처럼 불투명합니다. 그러면 오랜 세월 동안 헛된 짓을 한 것일까요?

분석은 나 자신의 이해에 초점을 맞춥니다. 나를 이해한다는 것은 내 마음의 흐름을 읽고 그 마음이 균형을 찾도록 돕는 겁니다. 자동차의 심장인 엔진의 이상 기능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석을 받는다고 자동차 엔진이 대형 항공기 엔진으로 변해 갑자기 하늘 높이 날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동이 안 걸리거나 길을 가다가 시도 때도 없이 꺼져서 운행에 지장을 주고 생존을 위협하는, 고장이 난 엔진을 청소하고 기능을 최대치로 높이는 일입니다. 분석을 받는다고 마음의 길에서 주행을 방해하는 낙하물, 갈등 덩어리를 모두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갈등은 늘 우리 곁에 있고 하나가 사라져도 또 다른 것이 나타납니다. 갈등의 정체를 파악하고 갈등을 다루는 힘을 강화해야 합니다.

분석은 길을 보는 안목도 키워줍니다. 초보 운전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핸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꽉 붙들고 온몸을 긴장시키며 코앞만 보고 차를 몰았습니다. 경험이 쌓이면 달라집니다. 그와 같이 분석을 받으면 마음에 힘 빼고 편안하게 길을 넓게, 멀리 보게 됩니다. 길을 막고 있는 낙하물이나 주변을 달리는 다른 차량 때문에 사고를 당할 위험성이 줄어듭니다.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삶의 여유가 생깁니다.

분석을 받은 사람은 접촉사고를 다른 사람만의 탓이라고 우기지 않습니다. 자신의 몫에 책임을 집니다. 다른 운전자에게 책임 모두를 돌리거나, 적신호에 진입해서 사고를 냈는데 청신호였다고 우기지 않습니다. 우겨 보았자 인생 낭비임을 압니다. 비슷한 사고를 반복하는 자신의 성향도 이해하고 안전 운전 대책도 마련합니다.

분석은 자신, 다른 사람들, 삶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마음을 키웁니다.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습니다. 변하고 싶다고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바라고 말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변화에 저항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며 그만 오겠다고 합니다. 그 마음을 되돌리려면 힘이 듭니다. 은근한 저항도 흔합니다. 치료 시간 잊어버리고 안 오기, 일이 생겨 못 오겠다고 갑자기 통보하기, 왔지만 침묵으로 일관하기, 분석가를 비난하기 등등입니다. 분석가를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분석가라고 말하고 받들면 바람직할까요? 동전의 양면처럼 저항과 의존 욕구의 표현입니다. 분석가의 부정적인 면이나 자신의 어떤 면을 안 보겠다는 마음에서 나왔습니다.

분석은 쓰기입니다. 분석을 받는 사람은 분석가와 협동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새롭게 써 나갑니다. 그 이야기 속 인생이 풍성하고, 흥미로우며, 인생을 보는 안목이 복합적으로 변한다면 성공입니다. 이야기 속 사람들을 단순히 아군이나 적군이 아닌,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면 성공입니다. 자신이 하는 생각을 분석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읽어낸다면 역시 성공입니다. 분석의 결과로 숨겨진 창의성을 회복해 일상에서, 취미에서, 전문 분야에서 활용한다면 엄청나게 성공한 겁니다.

프로이트의 이론을 빌려 표현하면 분석은 이드, 자아, 초자아, 현실이라는 기능들 사이를 사람과 사람의 관계처럼 새롭게 조정합니다. 본능적 욕구를 대표하는 이드가 너무 강하면 다스리고, 양심과 이상의 대표인 초자아가 너무 딱딱하면 부드럽게 만들며, 자아의 중재 역할이 미숙하면 키워서 심리 적응 전반이 건강하도록 돕습니다. 마음의 균형점을 찾아서 갈등으로 점철된 인생 이야기를 새롭게 써 나가도록 합니다. 그러니 분석은 자서전(自敍傳) 구판을 개정해서 신판을 써서 출간하는 작업입니다. 시간, 비용, 에너지를 충분히 써야 효과를 봅니다. 분석은 분석을 받는 사람이나 분석가 모두 조급하기보다는 느긋해야 효과가 납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정신분석#자아#초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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