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키우려면 10억 있어야” 공무원도 출산 기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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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양육 명세표]<中> 저출산 악순환 부르는 양육비

김우태(오른쪽 위) 이은경 씨 부부가 경기 안양시에서 김 시가 운영하는 피트니스 클럽에서 포즈를 취했다. 2013년 큰아들 영욱(가운데)을 낳은 부부는 2015년 쌍둥이 아들 영준(왼쪽 아래) 영호(오른쪽 아래)을 얻었다. 김 씨는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 게 우리 집 최고의 자랑거리"라고 강조했다. 안양=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김우태(오른쪽 위) 이은경 씨 부부가 경기 안양시에서 김 시가 운영하는 피트니스 클럽에서 포즈를 취했다. 2013년 큰아들 영욱(가운데)을 낳은 부부는 2015년 쌍둥이 아들 영준(왼쪽 아래) 영호(오른쪽 아래)을 얻었다. 김 씨는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 게 우리 집 최고의 자랑거리"라고 강조했다. 안양=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아이가 주는 행복을 숫자로 바꿀 순 없죠. 시간을 되돌려도 셋을 다 낳았을 겁니다.”

대기업 계열사에 다니는 심모 씨(34)는 다둥이 아빠로 주변 응원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에게 아이 셋은 보물이나 다름없다. 심 씨는 자신이 자녀를 셋이나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남들보다 좋은 양육 환경 때문이라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부부의 월 소득은 1000만 원에 조금 못 미친다. 장인과 장모가 동거하며 아이 양육을 지원해주고 있다.

그는 “셋째 임신 때의 주변 반응은 둘째 임신 때까지와는 확실히 달랐다”며 “셋째 임신 소식을 주변에 알렸을 때 ‘대체, 어쩌려고 하느냐’는 식의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친구나 동료들에게는 ‘준비되지 않았다면 임신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혼 7년 차인 다른 대기업 사원 정모 씨(35)는 교육 공무원인 아내와 결혼하기 전부터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 맞벌이를 하면 경제적 여유는 있겠지만 아이 성공을 전폭 지원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 씨는 “아무 걱정 없이 아이를 지원하고 아이 미래를 보장하려면 10억 원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갈수록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한국에서 부모의 재력과 권력이 아이 미래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생각에 결국 무(無)자녀의 삶을 택한 것이다. 그래서 결혼 후 곧바로 정관수술을 받았다.

○ 여유 있는 가정에도 출산 기피 확산

동아일보가 임산부의 날(10일)을 맞아 공개한 인터랙티브 사이트 ‘요람에서 대학까지: 2019 대한민국 양육비 계산기(baby.donga.com)’에 따르면 아이 양육에 따르는 경제적 부담은 비단 소득 수준이 낮은 가정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저출산 현상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부부들에게서도 확산되고 있는 이유다.

정년과 고액 연봉이 보장돼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국책은행에 다니는 김모 씨도 결혼 전 아내와 자녀를 낳지 않기로 약속했다. 현재 결혼 3년 차를 맞아 양가 부모님에게서 ‘아이를 낳으라’는 극심한 설득 작업에 시달리고 있지만 결심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묻자 그는 대뜸 대학 입학에 활용되는 논문의 가격표를 보도한 뉴스 영상을 기자에게 보여주었다.

‘1저자 등재 조건의 논문 가격은 1200만 원, 2저자 논문은 600만∼800만 원.’

김 씨는 “부모가 권력과 재력이 있으면 자식의 능력과 상관없이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잡는 대한민국 사회에 환멸을 느낀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어 “한국 사회는 지나친 경쟁 사회이자 불공정한 사회”라며 “아이에게 물려줄 권력과 재력이 없는 나에게는 오히려 출산이 무책임한 행위라는 애초의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고 말했다.

○ 소득 높을수록 양육비도 더 쓴다


소득이 높은 가구에도 번진 출산 기피 현상은 소득이 높을수록 양육비를 더 쓰는 구조와 무관치 않다. 동아일보가 한국노동연구원의 한국노동패널조사와 통계청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구축한 ‘요람에서 대학까지: 2019년 대한민국 양육비 계산기’에 따르면 소득 수준에 따라 8억 원 이상의 양육비용 차이가 났다. 월평균 소득이 300만 원 미만의 가정은 자녀를 대학까지 보내는 데 평균 1억7534만 원을 쓰는 것으로 조사된 반면 소득 600만 원 무려 9억9479만 원을 지출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저출산의 원인이 단순히 양육과 보육 부담에만 있다고 볼 수 없다”며 “경쟁이 치열한 곳에서는 출산보다 생존이 우선시돼 결과적으로 출산율이 낮아지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가 2017년 7월부터 2019년 6월까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물 31만 건을 분석한 결과 저출산의 원인으로 가장 많이 지목된 것이 ‘교육’이었지만 상위 15개 단어에는 ‘양극화’, ‘차별’ 등이 포함됐다.

양육에 들어가는 시간 역시 무시하지 못할 기회비용 중 하나다. 2014년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를 보면 자녀가 없는 여성은 ‘가족 및 구성원 돌보기’에 하루 평균 1시간 7분을 쓴다. 하지만 아이가 있으면 3시간 28분으로 3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반대로 ‘교제 및 여가 활동’ 시간은 4시간 39분에서 2시간 59분으로 2시간 가까이 줄어든다. 이철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단기간에 변화되기는 힘들다”며 “결국 양육 환경이 전반적으로 개선돼야 출산에 대한 젊은층의 인식도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민 kalssam35@donga.com·강은지 기자


“아이 셋, 경제부담 있지만… 돈으로 못바꿀 행복” ▼

다자녀일수록 부모 행복도 높아

‘다둥이 부모’는 행복하다.

동아일보와 딜로이트컨설팅이 2015년부터 공동 조사하고 있는 행복지수에 따르면 자녀가 한 명 있는 사람(56.92점)은 자녀가 없는 사람(58.76점)보다 행복지수가 낮았다. 하지만 자녀가 2명이 되면 행복지수가 59.03점으로 올랐고 3명일 때는 62.31점까지 치솟았다. 특히 딸이 많을 때(64.38점)보다 아들이 많을 때(65.52점) 아빠의 행복지수가 올라갔다.

큰아들 영욱(6), 쌍둥이 영준 영호(4) 등 세 아들을 키우고 있는 김우태 피트니스센터 ‘핏걸’ 대표(34)는 “아들 셋이면 솔직히 힘들다”고 먼저 털어놓았다.

“특히 아빠는 아이들과 몸으로 놀아줘야 하기 때문에 운동이 직업인 나도 버거울 때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죠.”

하지만 그는 더 적극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원래 다니던 직장 월급으로는 아이를 키우기 힘들겠다는 생각에 지금의 직업으로 바꿨다.

“지금은 세 아들에게 평생 친구를 찾아준 것 같아 흐뭇합니다. 세 아들 역시 나의 평생 친구가 아니겠어요?”

이어 “육아를 문자 그대로 아이 키우기라고 생각하면 힘들어 못 할 것 같다. 부모가 다 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도 얼마든 자기 몫은 할 수 있고 함께 힘을 모아 헤쳐 나가면 못 할 게 없다고 생각한다”며 크게 웃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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