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작년 남북정상회담 전후에도 난수방송 보낸 北,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23일 17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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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제19대 대통령선거와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등 국내 주요 정치 이슈 때마다 새벽에 라디오로 대남 간첩들에게 비밀 지령을 내릴 때 사용하는 난수방송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발 난수방송은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중단됐다가 2016년 7월부터 재개돼 매년 수십 회 이뤄지고 있다.

●대선, 남북정상회담 등 전후로 난수방송


통일부가 우리공화당 조원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2016년 7월 15일 평양방송에서 난수방송을 재개한 이후 2016년 19회, 2017년 43회, 2018년 42회, 2019년 1~6월 18회 진행했다. 박 전 대통령 파면 당일(2017년 3월 10일), 대선 이틀 전(2017년 5월 7일),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틀 후(2017년 5월 12일) 등 주로 굵직한 국내 정치 이슈 전후로 집중됐다.

2차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전날(2018년 5월 25일)과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 이틀 전(2019년 6월 28일)에도 북한은 난수방송을 쏘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한 2018년 9월 18~20일 전후인 14, 22일에도 난수방송이 전파됐다.

북한이 대남 도발용 미사일을 쏜 당일에도 난수방송은 이어졌다. 북한이 중거리 탄도미사일인 북극성-2형(2017년 5월 21일), 신형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2017년 7월 28일),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2017년 9월 15일)을 발사할 때마다 어김없이 평양방송에서 숫자를 읊는 목소리가 전파를 탔다.

통상 난수방송은 ‘27호 탐사대원’ 등 대상을 특정해 특정 책의 페이지를 뜻하는 듯한 숫자를 쭉 읊는 형태로 이뤄진다. “지금부터 27호 탐사대원들을 위한 원격교육대학 물리학 복습과제를 알려드리겠다”며 “○페이지 △번” “○○페이지 △△번”이라는 형태의 숫자를 쭉 불러주는 방식이다.

방송 대상은 ‘27호’ ‘21호’ ‘214호’ ‘272호’ ‘219호’ 등의 숫자가 붙은 탐사대원들이다. 복습과제로는 ‘물리학’ ‘수학’ ‘정보기술기초’ ‘외국어’ ‘전자공학’ ‘기계공학’ ‘화학’ 등을 꼽는다. 탐사대원에게 붙은 숫자는 남한에 있는 간첩 식별번호로 추정된다. 복습과제는 암호를 풀어내는 도구, 숫자는 특정 책이나 난수표의 위치를 뜻하는 것으로 공안당국은 분석하고 있다.

2016년부터 재개된 난수방송 122건을 전수조사해보니 대다수가 오후 11시 45분~오전 1시 15분 사이, 즉 새벽 시간대에 이뤄졌다. 2016년 7월 19일에만 유일하게 낮 시간대(오후 5시 36분)에 ‘전국지질탐사대원’을 대상으로 방송이 나왔다. 이날은 북한이 대남 도발용 미사일 3발을 발사한 날이었다.

●단순 연막? 지령 교차 확인용?

평양발 난수방송이 국내 정보당국에 혼선을 주기 위한 ‘연막’이란 분석도 있다. 아무 의미 없는 숫자를 불러주면서 정보당국의 분석 능력을 낭비시키려는 허장성세라는 것이다. 이미 고정간첩들은 스테가노그래피(첨단 데이터 은폐 기술 중 하나로, 사진이나 음악 동영상 등 일반적인 파일 안에 데이터를 숨기는 기술)를 활용해 외국산 e메일로 평양과 직접 교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굳이 구식인 난수방송을 활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 공안당국 관계자는 “적어도 최근 10년간은 간첩 수사하며 난수표를 본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난수방송은 e메일이나 메신저와 달리 온라인에도 일체 흔적을 남기지 않아 여전히 지령 용도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게 공안당국 설명이다. 또 다른 공안당국 관계자는 “e메일 등 온라인을 통해 받은 지령을 난수방송으로 교차 확인하는 용도로 쓰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문재인 정권은 이제라도 북한의 난수방송 경계를 강화하고 국가안보 차원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동주 기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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