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모범수’ 분류됐지만, 판결문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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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9월 19일 21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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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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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무기수로 복역 중인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 이춘재(56)는 소위 모범수로 분류됐다. 하지만 처제를 강간살해한 뒤 사체를 유기한 혐의로 기소됐던 그의 판결문과 이웃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드러난 이춘재의 모습은 달랐다. 이춘재는 아내와 아들을 무자비할 정도로 폭행했다. 처제 강간살해 혐의로 검거된 뒤 자신을 면회 온 어머니에게는 범행의 증거를 없애기 위해 집안의 모든 살림살이를 다 태우라고 말하기도 했다.

처제 강간살해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춘재는 1995년부터 부산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규율을 위반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춘재는 수용자를 분류하는 4단계 등급 중 가장 높은 S1 등급을 받았다. 2009년과 2010년에는 공장작업 때 교도관을 보조해 다른 수형자들을 관리하는 ‘반장’을 맡을 정도로 교도소 내에서 신임을 얻었다. 또 독실한 불교 신자여서 종교 행사에도 꾸준히 참석했다고 한다.

2011년과 2012년엔 수감자 도자기 전시회에 직접 만든 도자기를 출품했고 수상경력도 한 차례 있다. 가구제작 기능사 자격증도 땄다. 그의 어머니와 형이 1년에 두세 차례 면회를 왔고 어머니는 최근에도 면회를 다녀갔다고 한다. 법무부 교정본부 관계자는 “이춘재는 다른 수감자들과 갈등을 일으킨 적이 없고 굉장히 조용한 성격”이라며 “착실하게 생활해 평이 좋았는데 그가 화성 연쇄살인 용의자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교도소 내에서도 놀랍다는 반응이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이춘재의 판결문엔 그의 흉악한 범죄행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이춘재의 처제강간살인 사건 항소심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한번 화가 나면 부모도 말리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동서가 있는 자리에서 아내에게 재떨이를 집어던지고 출혈이 있을 때까지 아내를 폭행했다.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재혼하지 못하게 하겠다면 문신을 새기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어린 아들을 방에 가두고 마구 때린 사실도 판결문에 나온다. 이춘재는 당시 집을 나간 아내가 전화를 걸어오자 “내가 무서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아두라”며 처제를 상대로 한 범행을 암시하기도 했다. 이춘재는 실제로 20여일 뒤 처제를 성폭행하고 둔기로 여러 차례 때려 무참히 살해했다. 이춘재는 경찰에 붙잡힌 뒤 면회를 온 어머니에게 “집 살림살이 중 태울 수 있는 것은 장판까지 모두 태워버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웃 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이춘재가 살았던 충북 청주시 흥덕구의 한 빌라는 ‘처제 살인 사건’이 있기 한 달 전인 1993년 12월에 신축됐다. 이춘재 가족은 방 두 칸짜리 18평 집에 살았는데 이춘재의 거주지가 확인된 곳은 여기뿐다. 이춘재의 본적지가 화성 연쇄살인 사건 발생지 2곳과 같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춘재의 본적은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로 확인됐는데 1986년 10월의 두 번째 사건과 1987년 5월의 6번째 사건이 이 지역에서 발생했다. 이춘재와 화성 연쇄살인 사건 발생 장소와의 연관성이 드러난 것이다. 이춘재가 이 일대에서 태어났거나 어린 시절을 보냈을 가능성이 있는 대목이다. 10건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모두 태안읍사무소 반경 3㎞ 이내에서 발생했는데 이춘재의 본적지도 이 범위 안이다.

이춘재의 DNA가 확인된 범행은 5번째(1987년 1월 10일), 7번째(1988년 9월 7일), 9번째(1990년 11월 15일) 사건이다. 세 사건의 발생 추정 시간은 모두 오후 6시 반부터 9시 반사이다. 이 때문에 이춘재가 낮에는 일정한 직업을 갖고 일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찰은 보고 있다. 또 7번째와 9번째 사건 사이엔 2년 2개월이 넘는 시차가 있어 이 기간엔 이춘재가 화성 일대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지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이춘재는 18일 교도소로 찾아온 경찰을 만났지만 자신의 범행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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