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전 대법관 “계층상승 사다리 차면 정의 아냐”…조국 질문엔 답 안해

  • 뉴스1
  • 입력 2019년 9월 17일 16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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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최초로 대법관을 지낸 김영란 양형위원회 위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판결과 정의’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저서를 살펴보고 있다. 2019.9.17/뉴스1 © News1
여성 최초로 대법관을 지낸 김영란 양형위원회 위원장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판결과 정의’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저서를 살펴보고 있다. 2019.9.17/뉴스1 © News1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게 어려워진 사회는 발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계층이동) 사다리가 좁아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런 사다리를 걷어차거나 좁아지거나 막히면 안 되죠.”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법관, ‘김영란법’ 입법에 힘쓴 국민권익위원장 등의 타이틀을 지닌 김영란 양형위원회 위원장(63)은 17일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열린 신작 ‘판결과 정의’(창비) 출간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최근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계층이동이 힘들어지고 있고, 상위계층 출신 판사들이 많이 나와 주류를 위한 판결에 몰입하는 건 아닌가 싶다는 말이 나온다. 이날도 “이런 문제로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정의에 대한 신뢰와 연결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는 질문이 나왔다.

김 전 대법관은 이에 대해 “우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고학력 사회에 계층이동이 비교적 쉬웠고, 그에 대한 갈망이 큰 사회였는데 그래서 좌절감도 많이 느끼는 것 같다”며 “사다리가 걷어차지는 걸 느낀다는 게 중요한 것으로, 그 느낌을 담아내 구체적으로 어떻게 좌절감 완화 및 계층 이동 열망을 실현하게 할지 우리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도록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신간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책은 가부장제, 자유방임주의, 과거사 청산, 정치의 사법화, 성인지 감수성 등 한국사회에서 꾸준히 논쟁의 대상이 되는 주제를 끄집어왔다.

그는 책에서 대법관에서 퇴임한 뒤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되짚어본다. 법관으로서 항상 가지고 있던 저자의 오랜 고민과 ‘판결이 추구하는 정의’에 대한 날카로운 관점이 녹아있다.

김 전 대법관이 특히 신경 쓰려 한 부분은 첫 번째 장에 있는 ‘가부장제 변화의 현재’다. 그는 “가부장제는 남녀문제가 아니라 계층화에 의해 구축된 위계질서 문제로, 이것에서 체화된 의식이 남녀차별, 남혐여혐, 계층간 분리문제 등 문제를 자아냈다”며 “이를 통해 책을 관통하는 주제를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책 제목에 ‘정의’가 들어있지만 실제로 책에서 직접적으로 정의를 다루진 않는다. 1981년부터 판사 생활을 한 김 전 대법관이지만, 정의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내리긴 어렵다”고 말한다.

다만 그는 “모두가 행복하고 평화롭고 갈등이 없을 수는 없지만, 갈등을 평화롭게 해소할 수 있고 박탈감이 없어야 하는 등의 큰 방향은 있다고 생각했다”며 “엉성해서 말할 가치가 있나 생각했지만 쌓아놓고 보면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대법관은 “조국 법무부 장관의 딸 문제에 대해 어떻게 보는지” 등에 대한 질문에는 “그 이야기는 오늘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며 “출판사가 마련한 자리이기 때문에 묻힐 것 같다. 다음 기회에 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정치적 판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판사도 결국 일반인 이상으로 (판결을) 할 수 없다고 한계를 인식한다면 더 좋은 판결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정말 법리적 판단에 의해 판결했는지, 정치적 관점에 따라 결정한 건 아닌지 질문을 던져보기만 해도 더 나아질 거라는 바람을 가지고 책을 썼다”고 했다.

“쉽게 쓰려고 노력했지만 마냥 쉽게 쓸 수는 없는 주제들이어서 여기저기서 인용했어요.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많은 학자들이나 외국 법관들도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고민했다는 것을 소개하고, 다양한 생각을 해보게 하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책을 썼습니다. 여전히 이것만이 옳고 이게 절대 틀리다고 말하는 건 자신이 없어서, 다양한 생각을 하면서 큰 방향성에서 정의를 찾아가려 했습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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