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군기지 조기 반환 요구, 한미동맹에 약일까 독일까[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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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조기반환 추진’ 언급 배경은… 한미 2003년 기지이전사업 합의
80개 기지중 26개 아직 미반환… 환경정화 비용 등 이견 못좁혀
일각 “정부, 美부담 덜어주기 위한것”… 한국이 정화비용 부담하는 대신
美에 ‘안보청구서 완화’ 메시지… 지소미아 파기로 민감한 시기
한국 의도와 달리 美 오해 살 우려… 동맹관계 잘못된 신호 줄수도

용산미군기지. 뉴스1
용산미군기지. 뉴스1
손효주 정치부 기자
손효주 정치부 기자
“하필 그때 그 말을 꼭 했어야 했는지….”

지난달 30일 이후 군 내부에선 이런 말이 자주 들리고 있다.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상임위원회를 열어 주한 미군기지 26곳의 조기 반환과 평택 미군기지(캠프 험프리스)로의 조기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한 아쉬움이 배어 있다. 당시 청와대는 서울 용산 기지 반환 절차를 올해 안에 개시하겠다며 구체적 일정까지 언급했다.

사실 미군기지 반환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3년 기지 통폐합에 한미가 합의한 이후 17년간 진행돼 왔던 사안이다. 이 때문에 왜 이때였냐는 것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후폭풍으로 지금은 한미동맹 이슈가 잠시 가려져 있지만, 당시만 해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결정 이후 미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한국에 실망했다”며 연이어 불만을 표시하면서 한미 관계가 얼어붙은 상황.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은 22∼26일 미국 뉴욕을 방문해 유엔총회에 참석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다. 청와대는 다시 대화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북-미 비핵화 협상을 지원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방위비 분담금이나 지소미아는 물론 미군기지 반환까지 한미동맹과 관련된 현안들에 대한 문 대통령의 생각을 물어볼 가능성이 크다. 과연 청와대가 쏘아올린 주한 미군기지 반환이라는 이 오래된 이슈는 올 하반기 한미동맹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까.

○ 17년간 끌고 있는 주한 미군기지 반환

주한 미군기지 반환 및 이전 문제가 공식화된 건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그해 4월 한미 정상은 주한 미군의 안정적인 주둔 여건을 보장하겠다며 전국 미군기지의 통폐합을 핵심으로 하는 기지 이전 사업에 합의했다. 이 사업은 미8군사령부 등이 있는 용산 기지를 평택 등으로 이전하는 ‘YRP’ 사업과 미 2사단 등이 있는 경기 의정부, 동두천 등의 기지를 평택, 대구 등으로 이전하는 ‘LPP’ 사업으로 나뉘어 추진되고 있다.

당시 정부는 “사업을 마치고 반환받은 기지는 지자체나 일반 사업자가 개발해 국토의 효율적 이용이 가능해진다”며 “미군도 91개 구역 7300만여 평에 흩어져 있던 낡은 시설이 재배치되면 전방 훈련장 등을 유지하면서 후방에서 지원 체계를 강화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홍보했다. ‘한미동맹이 업그레이드되는 초석이 될 사업’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사업의 핵심인 기지 반환은 지금까지 지연되고 있다. 반환돼야 할 80개 기지 중 26개가 미반환 상태. 이 가운데 19개는 반환 절차를 진행 중이지만 7개는 절차 개시도 못 했다. 이 때문에 미반환된 26개 기지 대부분은 반환 절차와 무관하게 평택으로 이전했다.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따르면 반환 개시 및 협의→환경 협의→반환 건의→반환 승인→기지 이전의 5단계 절차를 따라야 한다. 그러나 협의 난항으로 마지막 단계인 기지 이전부터 먼저 이뤄지고 있는 것. 경기 평택 캠프 험프리스로의 이전 사업 진척률은 2017년 6월 기준으로 이미 94.4%에 달했지만 이에 비해 옛 기지 반환 속도는 한참 뒤처진 셈이다. 전세로 살던 집을 놓고 집주인과 정리가 안 됐는데 새집으로 이사부터 간 셈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반환이 마무리되지 못한 옛 미군기지는 명목상 미군이 관리하고 있지만 철조망 등을 쳐놓은 것 외에 사실상 관리하는 것이 없다”며 “국토가 폐허로 방치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 “청와대의 대미 불만 폭발”

그렇다면 청와대는 새로울 것 없는 문제를 하필 한미 관계가 살얼음판을 걷는 시점에 꺼낸 것일까. 당장 나온 해석은 워싱턴발 전방위 압박에 청와대가 ‘폭발’했다는 것이었다.

지난달 지소미아 파기 발표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이른바 ‘실망 릴레이’로 한미일 3각 안보 협력의 균열 책임을 한국에 돌리고 있다. 주한미군 주둔 등 한국 방위에 미 정부가 쓰는 돈이 연간 48억 달러라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목소리도 커졌다.

이런 까닭에 청와대가 맞대응 차원에서 “방을 빼라”며 공개적 압박에 나섰다는 것이다. 워싱턴에 지소미아 파기 결정과 관련해 불만 표출을 이제 그만 자제해 달라는 우회 압박이라는 것. 김성한 전 외교통상부 제2차관은 “지소미아 등 미국과 얽힌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미국과 본격적으로 대립각을 세울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자꾸만 늦어지는 기지 반환에 대해 목소리를 낼 때가 됐다고 판단한 점도 한 배경으로 꼽힌다. 청와대가 반환 장기 지연 기지로 언급한 강원 원주, 경기 부평, 동두천의 4개 기지는 미국과의 환경 협의 과정에서 7, 8년이 지나도록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기지를 활용하려던 지자체와 지역 주민 불만도 극에 달한 상태다.

협의가 진척되지 못하는 배경엔 미 정부가 내걸고 있는 원칙이 있다. 미 정부는 미국 법률에 근거한 ‘KISE 원칙’을 고수 중이다. 공공안전 및 인간건강, 자연환경에 급박한 위험이 있는 오염이 발생했을 경우 외엔 미 정부가 토양 오염 정화 비용을 내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미 정부는 이 원칙을 들어 전 세계 미군기지 반환 사례 중 한 번도 정화 비용을 내지 않았다.

반면 국내 환경단체는 ‘오염자 부담 원칙’을 내세워 미군이 부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청와대가 환경단체에 힘을 실어주며 미군이 원칙에서 물러나라고 공개 경고한 것”이라며 “청와대가 나섰다는 것 자체가 최고 수위의 압박”이라고 했다.

○ “방위비 협상 앞두고 미국 달래기” 분석도

정반대로 미국 달래기용이라는 해석도 팽팽하다. 군 관계자는 “오히려 청와대가 미 정부가 반길 카드를 내세워 묵은 체증을 뚫어준 것이다. 미군이야말로 조속한 기지 반환을 요구해 왔다”고 했다. 미 정부가 전 세계 미군기지에서 정화 비용을 낸 사례가 없었던 만큼 국내 미반환 26개 기지에 대한 환경 협의의 답도 사실상 정해졌다는 논리다. 장기간 협의하다 결국 한국 정부 예산으로 비용을 내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군 관계자는 “미국이 한국에서만 KISE 원칙을 허물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정부는 그간 공식 방위비 분담금(올해 기준 1조389억 원) 외에도 미군기지 주변 정화 비용으로 거액을 지출해 왔다. 2015년 기준으로 정화에 투입된 국방 예산은 84억 원. 앞서 2007년 반환된 미군기지 24곳에 투입된 비용은 2100억 원이었다. 2012년 정화가 끝난 부산 하야리야 기지엔 140억 원이 들어갔다. 용산 기지는 2011년 당시 정부가 정화 비용이 103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결국 청와대의 이번 메시지는 “미 정부의 숙원 사업을 해결해주겠다. 그러니 미국도 지소미아 그만 거론하고 방위비 압박도 자제하라”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는 이미 천문학적인 정화 비용을 부담하며 한미동맹에 상당한 기여를 해왔고, 26개 기지에 대해서도 환경단체를 설득해 협의에 속도를 붙인 뒤 비용을 낼 테니 그간의 감정을 풀고 ‘안보 청구서’는 거둬 달라는 것이다. 남창희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기지 반환에 따른 미국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으로 방위비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것이지 미국 심기를 건드리려는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했다.

의도가 달래기였더라도 미 정부가 반응할 것인지에 대해선 회의론이 여전하다. 한국 정부만 정화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로 미국이 맞대응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 시간) “가끔은 동맹국이 우리를 더 나쁘게 대한다”며 방위비 증액을 재차 압박했다. 청와대의 기지 조기 반환 카드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워싱턴 기류는 우리에게 별반 유리하지 않아 보인다.

김성한 전 차관은 “현 시점에서 미 당국자들은 ‘한국이 미군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라는 고민을 할 수 있다”며 “강한 펀치가 아닌 잽에 가까운 발표였지만 경우에 따라 상대방이 잽을 큰 공격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상황이 한미동맹에서 일어나진 않을지 외교가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손효주 정치부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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