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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상, 조선인 엔지니어 모임 ‘조선공학회’ 임원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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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상, 조선인 엔지니어 모임 ‘조선공학회’ 임원 활동”

조종엽 기자 입력 2019-08-26 03:00수정 2019-08-26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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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민 교수 23년 결실 ‘이상 연구’ 내달 중순 출간
권영민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석좌겸임교수는 “이상은 미술, 영화, 건축, 문학이라는 장르를 초월하고 경계를 허물었다”면서 “이상이 당대 서구 문화의 전환을 인식하고 이를 자기화하면서, 1930년대 우리 근대문학의 한 부분이 서구의 첨단과 거의 비슷한 문학적 감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일본 고등계 경찰의 비밀 보고 문서를 하나 찾았어요. 시인 이상이 조선인 엔지니어들이 결성한 ‘조선공학회(朝鮮工學會)’에서 1930년 임원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지요.”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이상, ‘날개’에서)에 날개를 다는 건 후인들의 몫일 게다. 문학평론가인 권영민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석좌겸임교수(71)가 2020년 이상(1910∼1937) 탄생 110주년을 앞두고 ‘이상 연구’(민음사)를 다음 달 중순 출간한다. 이상을 23년 동안 연구한 결과를 결산한 책이다. 권 교수는 책 머리말에 “그(이상)의 글들은 … 텍스트의 상호연관성에 의해 새로운 의미를 지속적으로 생산한다”고 썼다. 이상은 죽었지만 그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움직인다. 여름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한 권 교수를 19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이번 책 ‘이상 연구’에서 강조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지….

“이상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고, 이질적인 세계를 융합한 21세기형 지식인이다. 20세기 초 과학기술의 획기적 발달, 미술에서 표현주의 이후 입체파의 등장, 문학의 심리주의적 경향 등 문명의 전환기적 상황을 깊이 있게 관찰하면서 자신의 문학세계를 구축했다. 일례로 연작 시 ‘오감도’는 정서적 요소를 제거하고 핵심 개념만 아주 단조로운 문장으로 남겼는데, 이는 미술의 추상 기법과 연결된다. 단편 ‘지도의 암실’ 등에서는 자신이 본 영화의 에피소드나 장면 전환 기법을 소설에 도입했다. 이런 면모를 텍스트를 통해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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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문학의 위상은….

시 ‘오감도’, 소설 ‘날개’ 등을 쓴 이상. 동아일보DB
“이상은 문학적 감각, 감성을 변혁하고자 했다. 그의 문학은 전통적 문학 형식과 결별하면서 개인적 주체로서 작가 자신을 타자처럼 객관화해 그 내면 의식을 보여준다. 한국문학의 모더니티 인식은 이상 문학의 등장과 함께 성격과 방향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당대 독자들은 이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상은 개인의 삶이 식민지 지배 권력에 의해 어떻게 왜곡되고, 가치가 전도되는지를 흥미롭고 파격적으로 드러냈다. ‘작은 알갱이의 문학’을 한 것 같지만 그를 통해 보이지 않는 전체를 드러냈던 것이다. 당대 독자뿐 아니라 작가들도 이상을 낯설어했다.”

―‘식민지 근대’의 문화적 특징은….

“호미 바바(70·인도 출신의 문학평론가) 같은 탈식민주의 문학론자들의 관점에 따르면 식민지 문화는 숙명적으로 양가성을 가진다. 지배 권력과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지향이 한 축 위에서 팽팽히 긴장하며 뒤섞여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양가성을 인정하는 통합적 안목이 필요하다.”

이상은 일본인 학생들을 제치고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경성고공) 건축과를 수석 졸업한 뒤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기사로 채용됐다. 권 교수는 1930년 6월 26일 종로경찰서장이 경성지방법원 담당 일본인 검사에게 보낸 ‘경종경고비(京鍾警高秘)’ 문서에 이상의 본명 ‘김해경’이 조선공학회 임원으로 등장한다는 걸 새로 밝혀냈다. 권 교수는 “이상이 일본인 중심의 조선건축회에 정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던 중에 조선공학회에 가담한 사실은 조선인 건축기사로서 지니던 자기 정체성의 인식과 연관되는 문제여서 주목된다”고 말했다.

1929년 3월 3일 한국인 엔지니어들의 ‘조선공학회’ 창립 소식을 전한 동아일보 3월 5일자 지면. 이상이 이듬해인 1930년 이 단체의 임원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동아일보DB
조선공학회는 어떤 단체였기에 일경의 감시 대상에 올랐을까. 1929년 2월 3일 발기인총회를 열 당시 동아일보는 ‘조선공학회의 설립―조선인 공업 발전에 진력하라’(1929년 2월 12일)라는 사설을 쓰며 특별한 기대를 표시했다. 중외일보 보도에는 조선공학회가 1930년 8월 연 평안북도 선천(宣川) 강연회에서 “그중 연사 유용선 군은 경관의 주의를 받았기 때문에 강연을 끝맺지 못하고 부득이 중지하고 말 때에 일반 청중은 박수갈채로 강연을 계속하라고 소동하였다”고 나온다. 조선공학회가 공학과 기술의 실력 양성을 주장하면서 민족정신을 고취했을 것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권 교수는 2014년부터 버클리대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대학 동아시아어문학과 내에 2023년 정식으로 한국학 전공을 개설하는 게 권 교수의 목표다. 어쩌다 종일 우리말을 한마디도 못 하는 날에는 혼잣말로 “이 형(이문열 소설가)” “윤 형(윤후명 소설가)”을 부르며 그들과 소설에 대한 상상의 대화를 나눈다고 했다. ‘왜 고생을 사서 하시느냐’고 묻자 “한국문학의 좁은 영토를 넓히고자 한다”며 “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깊이 있게 공부한 고급 독자층의 저변을 넓혀야 한다”고 답했다.

권 교수는 그간 한국문학 수업에 영어 교과서로 쓸 만한 책을 집필해왔다. 그 성과로 브루스 풀턴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와 공저한 ‘What Is Korean Literature’(한국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올가을 버클리대에서 출판한다. 권 교수가 같은 목적으로 집필하고 있는 ‘Modern Korean Literature’(한국 현대문학)는 하버드대에서 출간이 결정됐다고 한다.

권 교수는 “한국문학이 본격 번역되기 시작한 것도 불과 20년 정도고, 해외 일반 독자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면서 “한국 독자가 좋은 작품을 더 많이 읽고 지지해줘야 글로벌 작가가 탄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조선공학회#시인 이상#오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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