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그 종착지는 어디?<상> [우아한 청년 발언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5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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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갱이는 사라졌고, 토착 왜구가 넘쳐난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대일관은 이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와 복잡성과 모호성으로 가득 찬 국제정치의 판도를 이렇게 단순명료하게 설명해내는 국제정치이론이 있었는지 의문이 들어 나름대로 공부를 해보았지만, 식견이 부족한 탓인지 그러한 이론은 미처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국가원수로서 어떠한 비전을 갖고 대통령께서 국정을 운영해 나아가는지, 이에 대해 고민해보면 현 정부의 대북 저자세·대일 고자세 기조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행정부의 수장이자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수행하여야 할 3대 국가운영 과제를 떠올려보았다.

생각건대, 제1과제는 국가의 안전보장이고 제2과제는 시민의 자유 보장이며 제3과제는 국민이 잘 먹고 잘사는 방안의 모색이라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전술한 3대 국가운영 과제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이행하고 있는지 여론을 살펴보자면 적지 않은 시민들이 그리 좋지 않은 점수를 부여하고 있는 듯하다. 한편, 국내외적 위기가 산재한 시국에서 집권 3년 차를 맞이한 문재인 정부가 국가의 중장기적·전략적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대신 청와대와 집권 여당의 위기를 탈피하고자 반일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며 ‘NO JAPAN’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전문가들의 비판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필자 나름대로 고민해보고 또 고민해보았지만 문재인 정부의 이분법적 선악 구분, 즉 ‘북한은 같은 민족이니 교류협력을 확대해야만 하고 민족의 원수인 일본과는 싸워서 이기겠다’라는 접근은 국익을 최우선시해야 마땅한 국가 지도자의 태도로는 부적절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에 전술한 3대 국가운영 과제를 문재인 정부가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에 대해 청년의 시각에서 간략히 진단해보고 부족한 견식이지만 나름의 제언을 해보려 한다.

우선 시민의 자유가 증진되었는가에 대한 논의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배경에는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 사태에 반발하던 시민들의 촛불 혁명이 자리하고 있다. 시민들은 비선출직 인사에 의한 수렴청정 식의 국정운영이 지속되어왔음에 경악하였고 대의제 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해 기꺼이 거리로 나섰다. 시민들은,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가벼이 여기지 않으며 진정으로 소통할 줄 아는 자를 새로운 대통령으로 원하였다. 후보 시절부터 꾸준히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해온 문재인 대통령은 그러한 점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확보하였고, 소통의 적임자로 간택 받았다. 시민들은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에서 탈피하여 불통의 대통령 시대를 끝내겠다고 담보한 문재인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었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듯 당선 직후 청와대는 국민소통수석을 신설하기도 하였으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라는 소통창구를 만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문재인 정부의 소통 행보에 대해, 그 본질이 전임자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비판이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제기되고 있다. 국내문제는 질문도 받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언행, 민주적 정당성이 부족한 비선출직 민정수석의 지나친 권한 행사와 이율배반적 행적 논란에 대한 청와대의 두둔, 성과 없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 대한 고집, 국회 청문회에서 각종 의혹이 제기된 후보들에 대한 임명강행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문재인 정부가 국정운영에 있어 소통하는 것 자체에 피로감을 호소하며 시민들의 문제 제기를 회피하려 한다는 비판이 거듭되고 있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를 약속한 후보 시절 문 대통령에게 희망을 걸었던 다수의 청년은, 대통령 측근 인사들의 각종 특혜 논란과, 이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방식을 보며 ‘결국 현 정권 역시 기득권을 쥔 기성세대로서 도덕성·소통능력 측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구나.’라는 실망감을 표출하고 있다.

일각에선 현대판 신문고라 불리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신설을 통해 직접적인 행정부-국민 간 소통이 가능해지고 시민의 자유가 증진되지 않았느냐 반문할 수 있겠다. 그러나 조선 시대 신문고 제도 도입 배경에는 왕권 강화의 목적이 자리하고 있었듯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신설 역시 제왕적 대통령 권한 강화의 연장선에 있다고 비판할 여지가 충분하다. 부문을 막론하고 모든 이슈를 청와대가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국민이 많아진 것이 그 예이다. 한편,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혹은 국회 자체의 해산을 청원하는 글이 끊임없이 올라오기도 한다. 이는 중장기적으로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분립에 대한 국민 인식에 혼선을 초래하여 민주주의 근간을 위태로이 할 우려가 크다. 이에 더해, 상식선에서 이루어지기 힘든, 혹은 인신공격성 청원들이 끊이질 않는 현실을 보더라도 현 정부가 국민 청원 게시판을 만들었단 이유만으로 시민의 자유 증진에 이바지하고 소통을 잘하고 있다고 긍정하는 것은 그 평가를 유보할 필요가 있다.

한편, 현 정부가 청와대의 정책 기조 혹은 정부 주요 인사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나 의혹을 제기하면 ‘가짜 뉴스’라는 프레이밍을 씌우려 한다는 지적도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건강한 시민사회가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서 자유로운 의견 개진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며 공론의 장이 형성되는 국면에서 특정인이나 특정 기관에 대한 날이 선 보도 혹은 확인되지 않은 의혹이 제기되는 점은 안타깝지만, 이는 불가피한 민주주의의 작동 과정이기도 하다. 상기한 경로를 거치며 시민들은 숙고할 능력을 배태하게 되는데 한국의 시민들은 ‘내 손으로 직접’ 민주화를 일구어낸 능동적 존재로, 30여 년의 민주화시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숙의하는 역량을 충분히 갖추게 되었으며 그 자질 또한 탁월하다고 필자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기에 현 정부가 정권에 대한 다층적 평가(설사 그것이 강도 높은 비판이라 할지라도)에 있어 지속해서 과민 반응을 보인다면 관제 민주주의를 초래하고 수동적 시민을 형성한다는, 이전 정부가 받았던 비판을 고스란히 계승할 우려가 크다. 현 정부에 대한 듣기 좋은 평가에만 주목하기보다는 시민들의 쓴 소리에 진정으로 귀 기울이며 소통하려는 노력을 기울일수록 청와대의 국정 동력이 추진력을 얻는다는 사실을 문재인 정부가 모르고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고위공직자 인사 검증 등 현 정부가 반복하여 지적받는 사안들에 있어 더욱 객관적이고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여 시민들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는 모습을 보일 때 비로소 문재인 대통령은 그가 약속했던, 소통 부재의 해소와 시민 자유의 증진에 이바지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26일자 우아한에 계속).

박기범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15학번(서울대 한반도문제연구회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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