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일본, 부동산의 한국[동아광장/박상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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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박람회서 길게 줄 선 일본인들, 첨단 기술 향한 관심과 열정 돋보여
한국선 본보기집 인파 몰려 대비
양국 무역갈등 속 부동산 관심 우려… 돈과 열정 기술개발에 쏟을 수 있어야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최근 한일 간의 무역 마찰로 일본에 가는 한국인 여행객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한국인에게 인기가 있던 관광지의 상인들에게는 적지 않은 타격일 것이다. 그동안 워낙 많은 수의 한국인이 일본에서 관광과 쇼핑을 즐겼기 때문이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던 장소 중에 오다이바(お台場)라는 곳이 있다. 도쿄 도심에서 떨어져 바다에 면해 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도심에서 불과 30∼4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어서 그랬는지 주말에는 조금 과장을 덧붙이자면 여기가 한국인지 일본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오다이바에는 도쿄 빅사이트(Tokyo Big Sight)라는 대규모 전시장이 있다. 오다이바에서 한국인 관광객이 드문 몇 안 되는 장소 중 하나지만, 도쿄에 이렇게 사람이 많았나 새삼 느낄 정도로 인파가 몰릴 때가 있다. 대형 산업 전시회가 열릴 때 이곳에 오면 일본 첨단 산업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2019년 4월 초, 빅사이트에서 제3회 ‘인공지능 엑스포’와 제5회 ‘첨단 디지털 기술전’이 열렸다. 올해는 공중에 3차원(3D) 영상을 띄우는 기술이 대세였다. 일본에서는 이미 벽이나 책상에 비춰진 2차원(2D) 화면을 터치하여 기기를 조작하는 기술이 실생활에서 쓰이고 있다. 이 기술이 공중에 3D 영상을 띄우는 기술과 접목되면 공중에 있는 스크린을 터치하여 기기를 조작하고 상대방의 3D 영상과 원거리 대화를 주고받는 공상과학 영화의 상상력이 현실이 될 것이다. 입장 수속에 줄을 서 기다려야 할 만큼 몰린 인파에서 첨단 기술을 향한 일본인의 관심과 열정을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산업 전시회나 관련 이벤트가 가끔 열리지만 도쿄만큼 사람이 몰리지 않는다고 한다. 도쿄 전시장을 찾는 한국의 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종류의 산업 전시회에 사람이 몰리는 것이 신기하다고 입을 모은다.

아마 한국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시세 차익이 기대되는 아파트의 본보기집이 아닐까 싶다. 일본인들은 ‘기술’에 미래의 희망을 걸고 있지만 한국인들은 여전히 ‘부동산’에 열정을 쏟고 있다.

1991년까지는 일본인들도 ‘부동산 불패’의 신화를 믿었다. 주식시장의 버블은 1990년 초에 끝났지만 대도시의 지가는 1991년까지, 지방의 지가는 1992년까지도 오르고 있었다. 주식은 망해도 부동산은 망하지 않는다는 오래된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 15년 동안 끝없이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자 일본인들 사이에는 ‘부동산 필패’가 새로운 신화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도쿄의 부동산 가격이 소폭의 등락을 반복하자 일본인들은 드디어 부동산 불패와 부동산 필패라는 두 낡은 신화 모두에서 벗어났다.

일본인들은 이제 더 이상 부동산으로 부자가 될 수 있다거나 부동산 때문에 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부동산 투자는 개인이 아니라, 부동산 개발 회사 등 기업 단위로 이뤄진다. 그래서 주변에서 부동산 가격의 등락으로 크게 이익을 보거나 손해를 봤다는 사람을 볼 수 없다. 전세라는 제도가 없거니와 실수요가 아니면 부동산 대출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갭투자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부동산 보유세율과 양도세율도 한국보다 높다. 일본인에게 집은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거주의 대상이다. 아직도 부동산으로 울고 웃는 한국의 현실을 보며 나는 일본의 이런 환경이 부러울 따름이다.

최근의 한일 간 무역마찰로 우리는 아직도 기술에서는 일본이 한 수 위라는 현실을 자각할 수 있었다. 이제 한국도 소재와 부품 산업의 기술 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지만,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릴 때마다 첨단 기술 투자가 아니라 부동산 투자에 돈이 쏠리는 사회에서 기술 개발에 얼마나 빠른 진척이 있을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분양가 상한제는 운만 좋으면 적지 않은 시세 차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를 부추긴다. 부동산에 대한 과세율이 일본보다 낮은 것도 터무니없어 보인다. 인기 지역의 분양사무소에 사람이 몰리는 이유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검토와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돈과 열정이 부동산이 아니라 기술 개발에 투입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사회 전체의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한일 갈등#일본 불매#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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