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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때 끌려가 강냉이 먹으며 노예같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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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때 끌려가 강냉이 먹으며 노예같은 삶”

이경진 기자 입력 2019-08-23 03:00수정 2019-08-2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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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女근로정신대’ 실태조사
도내 거주 22명중 10명 인터뷰… 노동조건 등 구체적 피해 기록
“피해자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 지원금 증액-절차 간소화 필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인 이옥순 씨가 21일 경기 의정부시 자택에서 강제노역 등 과거 피해 상황을 떠올리고 있다. 이옥순 씨 가족 제공

“일본인이 버린 음식물쓰레기로 주린 배를 채웠어. 일본 정부의 사과를 꼭 받고 싶어.”

경기 의정부시에서 혼자 사는 이옥순 씨(88·여)는 어린 시절 일을 떠올리며 감정을 억눌렀다. 이 씨는 현재 북한 지역인 강원 평강 출신으로 열 살이던 1941년 갑자기 고향을 떠나 서울 영등포의 방직공장에 가야 했다. 당시 일본 경찰들이 “전쟁에 나간 군인들을 도와야 한다”며 어린 학생들을 강제동원했다.

이 씨는 공장에서 하루 18시간 이상 실을 짰다. 한 달 정도 지나자 다시 일본으로 끌려갔다. 다른 한국인들과 함께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강냉이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사소한 의사소통조차 어려울 정도로 엄격히 통제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는 혹독한 강제노동에 시달렸지만 단 한 번도 월급을 받지 못했고, 일본과 한국 정부에서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다. 이 씨는 “어릴 때부터 외로운 삶을 살았다. 내 인생에서 없애고 싶은 기억”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포천시에 사는 변복순 씨(90·여)도 상황은 비슷하다. 충남 대덕군(지금의 대전 유성구와 대덕구) 출신으로 열두 살 때 영등포 방직공장에 동원됐다. 당시 열여덟 살이던 언니와 열 살 동생을 대신해 강제동원에 끌려갔다. 다행스럽게도 일본으로 이동하지는 않았지만 2년 반 동안 끼니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할 때가 많았고 노동의 대가도 받지 못했다. 그렇게 광복을 맞았다. 변 씨의 아들 오모 씨(62)는 “어머니는 아직까지도 강제노역만 생각하면 너무 힘들어한다”며 “당시 손수레를 끌다 오른발을 다쳤고 현재까지도 건강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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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가 22일 일제강점기 여자 근로정신대에서 강제노역을 한 피해자들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앞서 도는 올 3월부터 4개월간 도내 생존 피해자 22명 중 10명에 대해 연령, 신분, 생활환경, 노동조건, 급여 미지급 등 강제동원 당시 상황과 구체적 피해 사실 등을 심층 인터뷰했다. 건강 악화, 개인 사정 등으로 12명은 인터뷰에서 제외됐다.

피해 여성 대부분이 현재 80, 90대의 고령으로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층이 많았다. 경기도는 이번 조사로 생활비와 의료비 등 지원금 증액과 지원 절차 간소화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현재 자치단체별 조례에 따라 1인당 약 30만 원의 생활지원비와 의료지원비가 지급되고 있지만 영수증 처리와 후청구 등 복잡한 절차가 문제로 나타났다.

도는 또 정부와 공기업 등이 공동으로 피해자 관련 기금을 출연해 지원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진상 규명과 역사교육 프로그램 마련을 통해 피해자들이 2차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봤다. 도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일제강점기 피해자 지원에 대한 종합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김기세 경기도 자치행정국장은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 등이 담긴 역사적 사실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인권교육 자료를 만드는 등 향후 피해자들의 지원계획 수립에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진 기자 lkj@donga.com

#근로정신대#강제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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