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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씬 더 나쁜 놈’을 응징하는 ‘나쁜 놈’…그 모습에서 ‘좋은 놈’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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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훨씬 더 나쁜 놈’을 응징하는 ‘나쁜 놈’…그 모습에서 ‘좋은 놈’이 보인다?

동아일보입력 2019-08-22 15:40수정 2019-08-22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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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이 더 나쁜 놈을 응징하는 영화 ‘추격자’. 쇼박스 제공

국내 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을 때의 일이다. 공정성 시비로 한때 몸살을 앓은 이 영화제는 그해 심사과정에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본심 심사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의 의견교환을 원천봉쇄하고 심사 결과지를 은행 대여금고에 보관했다가 영화제 개막 2시간 전에 경찰 입회하에 개표키로 한 것이다. 심사장 분위기는 살벌했다. 후보작 상영장소의 심사위원들 사이엔 무슨 1980년대 대학가 ‘먹돌’이란 이름의 카페처럼 칸막이가 쳐져서 대화가 차단되었고, 상영이 끝나기 무섭게 심사위원들은 해당 작품에 대한 부문별 점수를 심사지에 일제히 기입해야 했다. 심사지는 투표함에 넣어진 뒤 자물쇠로 봉인되었고, 이렇게 모인 심사지는 은행금고에 보관되었다. 아, 이 얼마나 공정한 심사란 말인가.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막상 결과를 합산하니 전체 22개 부문 중 15개 부문을 한 영화가 휩쓸게 된 것이다. 그해 이 영화제는 또 ‘몰아주기’란 비난을 받았다.

‘공정성’이 갖는 딜레마다. 공정하게 하려는 의도와 달리 매우 불공정해 보이는 결과를 낳았으니 말이다. 아닌 말로, 심사위원들이 상의해서 이 영화에 2개, 다른 영화에 2개, 또 다른 영화들에 1개씩 상을 ‘배분’했더라면 ‘황금비율’이라는 놀라운 평가를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공정성과 기회균등을 기하기 위해 기업 공채에서 블라인드 면접을 시행하니 명문대생이 더 많이 입사하게 되는 기막힌 결과도 공정성이 갖는 딜레마다. 사람들은 공정한 과정을 좋아할까, 아니면 공정해 보이는 결과를 좋아할까. 뚱뚱한 큰 아들에겐 과자를 2개, 마른 작은 아들에겐 과자를 1개 주는 게 공정할까, 아니면 똑같이 하나씩 주는 게 공정할까.

평소 우린 딜레마적 상황을 왕왕 경험한다. 딸에게 “서울대만 들어가 준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그 다음은 네 멋대로 살아라”라고 했더니, 막상 서울대 들어간 딸이 머리를 미친 분홍색으로 물들이고 ‘클럽 죽순이’가 되어 집에도 잘 안 들어올 때 아빠가 처하게 되는 상황이 딜레마이고, “내가 햇볕정책의 산증인”이라며 북한에 우호적인 인사임을 자처해온 국회의원이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훈련을 살짝 비판한 뒤 북으로부터 “설태 낀 혓바닥을 마구 놀려대며 구린내를 풍기었다”라는 창조적인 비난을 받은 상황도 딜레마적이라 할 수 있다. 영화 ‘극한직업’에서 범죄조직을 소탕하려 조직 인근에 통닭집을 위장 개업한 형사들이 장사가 너무 잘돼 ‘형사 때려치워야 하나’ 고민에 빠지는 것도 딜레마이며, 잠재력 있는 미래인재를 뽑겠다는 대입 수시모집에 부모 잘 둬서 찬란한 스펙을 쌓은 애들이 들어가는 상황도 역시 딜레마이다.

선과 악 사이도 딜레마가 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에는 키가 땅콩만하고 생기기도 못생긴 악당 ‘신드롬’이 등장하는데, 이 있어 보이는 이름을 가진 악당이 세계 전복을 꿈꾸는 연유가 참으로 설득력 있는데다가 또 철학적이란 말이다. 원래 이 자는 어린 시절 탁월한 과학지식으로 자체 개발한 로켓 부츠를 신고 미스터 인크레더블을 도와 지구를 지키려 했었다. 하지만 인크레더블로부터 ‘개무시’를 당하자 한을 품고 악당으로 돌변한다. 신드롬은 인크레더블에게 외친다. “너처럼 타고난 초능력 없이도 난 스스로 해냈어. 사람들에게 진짜 영웅의 모습을 보여줄 거야. 내 발명품을 사람들에게 파는 거야. 그럼 누구나 슈퍼영웅이 될 수 있겠지. 누구나 슈퍼영웅이 되면, 결국 영웅은 사라지게 되는 거지.” 아, 이 얼마나 비전 있고 사리분별 충만한 악당 출범의 변(辯)이란 말인가. ‘금수저’ 영웅이 사라지고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는, 기회균등이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인크레더블을 없애고 신세계를 만들려는 이놈은 과연 선인가, 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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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법 사이에도 이런 딜레마가 존재한다. 보고 나면 사흘 동안 찝찝해 출근하기가 싫어지는 영화 ‘추격자’의 주인공 김윤석이야말로 딜레마적 인물이다. 법을 수호하며 먹고 사는 직업인 형사를 하다 지금은 법을 어기며 먹고 사는 포주로 창업(?)한 김윤석은 우여곡절 끝에 자기 종업원을 살해한 연쇄살인마 하정우를 응징한다. ‘나쁜 놈’이 ‘훨씬 더 나쁜 놈’을 추격해 속 시원하게 패버리는 모습에서 나쁜 놈이 은근히 ‘나쁘지 않은 놈’, 아니 ‘좋은 놈’, 아니 ‘정의로운 놈’처럼 보이기도 하는 딜레마가 바로 이 영화가 품은 수준 높은 장난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배트맨이야 말로 딜레마적 인물 아닐까. 억만장자인 그는 밤이면 박쥐 옷을 입고 악당들을 처단하지만, 사회 야경꾼을 자처하는 배트맨의 이런 사적 행위는 정작 법에 의거하지 않은 불법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린 배트맨을 응원한다. 불행히도 법과 정의가 충돌하는 딜레마적 상황이 온다면, 정의가 법을 이겼으면 하는 불온한 희망을 우린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을 지킨다”는 사람은 존경하지만, “법적으론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한대 때려주고 싶어진다.

이승재 영화칼럼니스트·동아이지에듀 상무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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