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대왕신종’이 전 세계 음향 랜드마크 중 한 곳이라는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9일 15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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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최고의 사운드
트레버 콕스 지음·김아림 옮김
376쪽·1만7000원·세종서적

바다와 산이 손짓하는 여름. 올해도 많은 사람이 휴가지에서 갖가지 기억을 머리에 채워 올 것이다. 그리고는 이야기할 것이다. 눈 시리게 푸른 바다. 굽이굽이 펼쳐진 숲. 청량한 시냇물을. 그러나 돌아와 ‘시원한 파도 소리, 숲 속의 새소리, 계곡의 물소리’를 회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의 경험과 기억은 대부분 시각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소리에 관한 모든 것을 들려주는 ‘일반인을 위한 음향학’이라고 할 만하다. 아홉 개 장을 통해 풍부한 울림이 있는 고대 극장과 유적들, 동물들의 울음소리, 모래언덕과 폭포가 내는 신비한 소리,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곳, 현대 인공물들의 소리를 알려준다. ‘귀로 경험하는 세계여행’ 정보서라고도 할 만하다.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의 돔에 올라가면 반대쪽에 선 사람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 사실 아치나 돔 모양으로 생긴 수많은 구조물들이 그렇다. 소리가 구면의 가장자리를 돌며 안쪽으로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얼음 위를 거닐 때 울리는 삑 소리를 들으면 얼음이 안전한지 알 수 있다. 오케스트라가 무대 위에서 조율하는 오보에 소리(A음)과 비슷하면 안전하지만, 다섯 음 위의 E음에 가깝다면 얼음 두께가 5㎝에 불과하니 조심해야 한다.

수만 명을 수용하는 그리스 로마시대 극장에서는 확성장치 하나 없이도 콘서트가 열린다. 과학에 앞서 경험으로 경이로운 음향을 창조한 것이다. 그러나 고대인도 때로 실수를 범했다. 카이사르의 측근 비트루비우스는 ‘극장 곳곳에 꽃병을 놓아두면 배우 목소리가 잘 들린다’고 주장했고 실제 많은 극장이 따라했다. 그러나 현대의 실험 결과 꽃병은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했다.

동물이 부르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무엇일까? 서양에서는 나이팅게일의 소리를 꼽는다. 덤불 속에 살아 외모보다 노래를 진화시킨 것이다. 1924년 BBC 라디오는 첼리스트의 연주를 따라하는 나이팅게일 소리를 방송해 인기를 끌었다. 한편, 가장 시끄러운 생명체는 무엇일까? 아프리카 매미가 그중 하나다. 소리 크기가 바위를 뚫는 착암기와 비슷하다.

전세계의 ‘음향 랜드마크’를 소개하면서 한국의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을 소개하는 부분이 반갑다. 신비로운 소리의 비결은 무엇일까? 대칭이 살짝 어긋나 비슷한 주파수끼리 간섭(맥놀이)가 일어나는 것이다. 서양 종 장인이라면 대칭을 맞추려 했을 것이고, 신비한 소리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현대인의 감수성을 열어주는 ‘사운드워크(Soundwalk)’를 제안한다. 아무 말 하지 않고 산책하면서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면 된다. 자동차 소음 사이로 들리는 새의 날갯짓, 사람들의 속삭임, 빌딩 사이를 부는 바람을 집중해 들으면 눈으로만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공간들이 열릴 것이다.

원제 ‘사운드북:세계의 음향적 경이에 대한 과학’(The Sound Book: The Science of the Sonic Wonders of the World·2014)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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