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수십그릇씩 배달… 고급숙소 덮치자 도박조직 28명 ‘와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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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서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 일당, 최대규모 송환 작전

지난달 25일(현지 시간) 한국과 말레이시아 경찰의 합동검거단이 덮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한 레지던스 건물 사무실. 경찰은 한국인을 상대로 불법 온라인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던 일당들을 이곳에서 일망타진했다. 경찰청 제공

지난달 25일(현지 시간) 한국과 말레이시아 경찰의 합동검거단이 덮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한 레지던스 건물 사무실. 경찰은 한국인을 상대로 불법 온라인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던 일당들을 이곳에서 일망타진했다. 경찰청 제공
“스물하나, 스물둘…. 저게 다 몇 그릇이야?”

지난달 22일(현지 시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P레지던스 건물 인근에 현지 경찰과 함께 잠복해 있던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용의자들이 받아 가는 배달음식의 양을 멀리서 세다가 깜짝 놀랐다. 이 관계자는 한국인을 대상으로 불법 온라인 도박사이트를 운영하는 일당이 이 건물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해 이틀 전 현지에 도착했다. 배달음식의 양을 보니 사이트 운영 일당은 예상(10여 명)보다 많은 게 분명했다. 이들을 일망타진하려면 그에 걸맞은 규모의 합동검거단이 필요했다.

잠복 나흘째인 지난달 25일 낮 12시 한국 경찰 5명과 말레이시아 경찰 50여 명 등 총 60여 명으로 몸집을 키운 합동검거단이 움직였다. 용의자들이 배달음식을 받으려 현관문을 열 때를 노렸다. 검거단은 인터넷주소(IP주소) 추적으로 파악한 사무실 4곳에 동시에 들이닥쳤다. 2017년 4월부터 도박사이트 ‘몽키스’와 ‘대작’ 등을 만들어 운영해온 노모 씨(38) 일당 28명이 한꺼번에 검거되는 순간이었다. 해외 온라인 도박사이트 운영 사범 중 역대 최대 규모다.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도 노 씨 일당은 사이버 머니를 환전해주는 등 사이트 관리에 여념이 없었다. 이들이 지내던 곳은 야외 수영장과 피트니스센터, 잔디 테니스장, 실내 농구장 등의 편의시설을 갖춘 고급 레지던스로, 한 달 임차료만 180만∼500만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레지던스 안에는 고급 안마기와 게임기뿐 아니라 불닭볶음면 사발면 등 한국 음식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경찰은 노 씨 일당이 필리핀 출신 가사도우미까지 고용하는 등 범죄 수익으로 호화 생활을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들을 한국으로 데려오는 데엔 9일이나 걸렸다. 노 씨의 사무실 인근에서 붙잡은 또 다른 도박사이트 운영자 이모 씨(41) 일당 9명까지 더하면 모두 37명인데, 한국 항공사 자체 규정상 한 여객기에 3명 이상의 피의자를 한꺼번에 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경찰은 범행에 가담한 정도가 낮은 피의자는 말레이시아에서 강제 출국시킨 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체포하는 방식까지 동원해 이달 17일 모든 피의자를 넘겨받았다.

말레이시아에 2년 넘게 숨어있던 노 씨 일당을 붙잡은 덴 한국 경찰청 인터폴계를 중심으로 한 양국의 공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수사팀은 일찍이 IP주소 추적을 통해 사무실 1곳의 위치는 파악했다. 하지만 이들의 신원을 밝히진 못하고 있었다. 경찰청은 올 5월 ‘국제 사이버범죄대응 심포지엄’ 참석차 서울에 온 말레이시아 경찰 대표단에 노 씨 일당을 추적할 단서를 건네며 수사를 요청했다. 현지 경찰은 탐문수사로 노 씨 일당이 4곳의 사무실을 운영 중이란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달 초 한국 경찰에 합동검거를 제안하며 대규모 검거단이 꾸려진 것이다.

수사팀은 노 씨가 ‘몽키스’ 등을 운영하기 전인 2013년경부터 말레이시아에서 지낸 점으로 미뤄 예전부터 도박장을 운영해왔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확한 범행 기간과 범죄 수익을 조사 중이다.

경찰청은 올 상반기 사이버 도박을 특별 단속한 결과 노 씨 일당 외에도 도박사범 4848명을 검거하고 이들의 범죄 수익 127억2900만 원을 몰수했다고 18일 밝혔다. 검거 인원으로는 지난해 상반기보다 2배로 늘어난 규모다. 임병호 경찰청 외사수사과장은 “앞으로도 각국 경찰 기관과 유기적으로 공조해 국외 도피 사범을 검거해오겠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말레이시아#불법 도박조직#송환 작전#몽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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