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선수앞 바지 벗긴 쇼트트랙… 대표팀 전원 퇴촌 ‘중징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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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암벽훈련중 男선수간 ‘사고’… 피해선수 “정신적 충격” 호소
선수 16명-지도자 5명 한달 퇴출… 일각 “관련없는 선수 징계 지나쳐”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단이 또 성폭력 논란에 휩싸였다. 대한체육회는 25일 쇼트트랙 남녀 선수 8명씩과 지도자 5명 등 21명 모두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내보내는 중징계를 결정했다. 특정 종목 선수와 지도자가 모두 쫓겨난 것은 국가대표선수촌이 생긴 이래 처음이다.

17일 진천선수촌 웨이트트레이닝 훈련장에 설치된 암벽등반 훈련시설에 오르던 B 선수를 A 선수가 끌어내리려다 B의 바지를 내리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신체 뒷부분 일부가 노출됐다. 여자 선수들까지 보고 있는 상황에서 모멸감을 느낀 B는 코칭스태프에게 이를 알리며 처벌을 요구했다. 이에 장권옥 대표팀 감독은 대한빙상경기연맹에 보고했다. A와 B는 모두 지난해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스타플레이어다.

B는 매니지먼트사를 통해 “암벽에 매달려 있어 손을 못 쓰는 상황이었다. 현재 집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으나 당시 충격이 진정되지 않아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다”고 전했다. 연맹 관계자는 “피해를 느낀 선수에게 미안하다. 악의 없이 장난으로 한 행동이 이런 결과를 불러올지 몰랐다. 당사자와 팀원 모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는 A의 심경을 전했다.

경위를 보고받은 신치용 진천선수촌장은 25일 선수단 전원 퇴촌 및 ‘1개월 훈련지원 중단’ 결정을 내렸다. 신 촌장은 “가해자 처벌 정도로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 지도자까지 징계 대상에 포함시켰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징계를 놓고 일부에서는 “피해자를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연대책임 징계”라는 비판을 하고 있다. 가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 다른 선수까지 퇴촌 조치를 한 것이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선수촌 관계자는 “그동안 쇼트트랙 선수들이 선수촌을 무단이탈하거나 외출 복귀 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등의 문제도 일으켰다”고 전했다. 빙상연맹 측도 “선수들이 사안의 심각성과 그동안 훈련 기강이 해이해진 점 등을 이해하고 징계를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했다. 피해 선수는 사안 발생 직후 2월 진천선수촌에 문을 연 인권상담소에서 상담을 받은 뒤 가해 선수와 분리 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쇼트트랙 대표팀은 올해 초 조재범 전 코치의 성폭행 혐의가 폭로되면서 스포츠계 전반에 걸친 성폭력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2월에는 남자 대표팀 김건우가 여자 선수 숙소에 출입한 사실이 드러나 퇴촌당하는 등 잇달아 물의를 일으켜 왔다. 이처럼 국제대회 효자종목인 쇼트트랙 대표팀은 그동안 사건과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한 빙상인은 “성적지상주의에 따라 문제를 일으켜도 솜방망이 징계로 언제든 복귀할 수 있다는 풍토가 만연해 있다”고 말했다.

연맹의 허술한 관리도 도마에 올랐다. 연맹은 지난해 9월 잇단 사건사고로 인해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를 받은 뒤 임원 전원이 해임됐고 관리단체로 지정되면서 유명무실한 존재가 됐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빙상연맹은 다음 주 이번 사건에 대한 징계 수위를 정할 방침이다. 비슷한 사안에 대해 연맹과 체육회가 그동안 여러 차례 제 식구 감싸기 식의 징계를 내려왔기 때문에 이번 징계 절차와 내용도 주목을 받고 있다.

이원주 takeoff@donga.com·이헌재 기자
#쇼트트랙#성폭력 논란#중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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