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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마셨는데” 항변해도… 측정기에 ‘면허 취소’ 꼼짝없이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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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마셨는데” 항변해도… 측정기에 ‘면허 취소’ 꼼짝없이 잡혔다

김재희 기자 , 이소연 기자 , 박상준 기자 입력 2019-06-26 03:00수정 2019-06-2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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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단속기준 강화 첫날
강화된 음주운전 단속 기준 적용 첫날인 25일 오전 서울 마포경찰서 경찰관들이 합정역과 양화대교 북단 교차로 사이에서 음주단속을 하고 있다(왼쪽 사진). 서울 영등포구의 음주 단속 구간에서 적발된 한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가 0.095%로 표시돼 있다. 이 운전자는 면허가 취소됐다. 단속 기준 강화 전이라 면 면허정지 100일에 해당하는 수치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딱 세 잔밖에 안 마셨는데…. 억울합니다.”

25일 0시 20분. 서울 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 인근 영등포공원 앞 도로. 흰색 벤츠 차량에서 내린 강모 씨(37)는 음주운전 단속을 하던 경찰관에게 언성을 높였다. 음주측정을 위해 차량 뒤편으로 이동하라는 경찰의 말에 강 씨는 “친구 생일이라 맥주 딱 세 잔 마셨다”고 했다. “대리운전을 부르려고 했는데 50분 넘게 안 잡혀 어쩔 수 없었다. 영등포역에서 집까지 5분밖에 안 걸린다.” 강 씨의 항변은 계속됐다.

“면허 취소입니다.” 음주측정기에 뜬 강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를 확인한 경찰관이 말했다. 측정기엔 0.096%라고 찍혔다. 30분 전이었다면 면허 정지 100일에 해당하는 수치다. 하지만 이날부터는 면허 취소에 해당했다. ‘윤창호 씨 사망사고’를 계기로 음주운전 단속 기준을 강화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이날부터 시행됐기 때문이다. 개정 도로교통법에 따라 면허 정지 기준은 혈중알코올농도 0.05% 이상에서 0.03% 이상으로, 면허 취소 기준은 0.1% 이상에서 0.08% 이상으로 엄격해졌다.

“취소 수치 아니잖아!”라며 고함을 치는 강 씨에게 경찰은 단속 기준이 강화된 사실을 설명했다. 하지만 강 씨는 “윤창호가 누군지도 모른다. 시민들 전부 (기준) 강화된 걸 모를 거다”며 “면허 취소는 말이 안 된다. 채혈을 원한다”고 했다.

○ “어제까진 면허 정지, 오늘부턴 면허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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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는 25일 0시부터 오전 2시까지 서울 강남구와 마포구, 영등포구에서 실시된 경찰의 음주단속 현장을 찾았다. 음주단속 현장에서는 혈중알코올농도가 0.08∼0.1% 미만으로 나와 면허가 취소된 운전자들이 잇따랐다. 마포구 양화대교 북단 진입로 부근에서 음주단속에 적발된 또 다른 강모 씨(33)는 “한 시간 전에 테킬라 네 잔을 마셨다”고 했다. 강 씨는 혈중알코올농도가 0.083%로 측정돼 면허가 취소됐다. 경찰은 “어제 같았으면 면허 정지 100일인데 오늘부터는 면허가 취소됩니다”라고 강 씨에게 설명했다. 25일 하루 전국에서는 운전자 93명이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됐는데 이 중 32명은 강화된 단속 기준이 적용되면서 면허가 취소된 경우다. 단속 기준이 강화되기 전이라면 훈방 조치됐을 혈중알코올농도 0.03∼0.05% 미만의 13명은 면허가 정지됐다.

단속에 걸리자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는 운전자도 있었다. 0시 20분경 강남구 영동대교 남단에서 단속에 걸린 서모 씨(37)는 혈중알코올농도가 0.076%로 나왔다. 단속 기준 강화 전과 마찬가지로 면허 정지 100일에 해당하는 수치다. 서 씨는 “소주 세 잔밖에 안 마셨다”며 소리를 질렀다. 서 씨는 인적 사항, 음주 측정 결과 등이 담기는 ‘주취운전자 정황진술보고서’를 작성하는 경찰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서는 “사람들 없는데 가서 하자니까”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음주운전자들은 단속 구간을 지도에 표시해주는 ‘음주단속 알림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하며 단속 구간을 피해가는 ‘꼼수’도 부렸다. 해당 앱에는 음주단속이 진행되는 구간이 표시된다. 실제로 이날 단속이 진행된 강남구 영동대교 남단 구간이 앱에 노출돼 경찰은 단속 구간을 옮겨야 했다.

○ “어제 낮에 마신 술인데…”



오전 1시 50분경 오토바이를 몰던 이모 씨(29)는 혈중알코올농도 ‘0.095%’로 면허가 취소됐다. 이 씨는 24일 오전까지 친구와 둘이서 소주 한 병 반을 나눠 마셨다고 했다. 이 씨는 “술이 다 깼는데 이렇게 나올 리가 없다. 어제 마신 술인데 왜 오늘 측정을 해서…”라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30시간 전에 마신 술이 몸속에 계속 남아 면허가 취소될 뻔한 경우도 있었다. 0시 5분경 마포구의 한 단속 현장을 지나던 택시운전사 박모 씨(69)는 음주 측정에서 혈중알코올농도가 면허 정지 수치를 살짝 밑도는 0.022%가 나왔다. 박 씨는 “일요일(23일) 낮 한두 시까지 친구 3명과 소주 대여섯 병을 나눠 마셨고 어제(24일)는 술을 안 마셨다”고 했다. 단속 현장의 마포경찰서 경찰관은 “전날 마신 술이라도 면허 정지 수치가 나올 수 있다”며 “이분도 아슬아슬했다. 숙취 운전도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음주운전 단속 기준이 강화된 첫날 아침 대리운전을 부르는 건수도 증가했다. 전날 밤 술을 마신 직장인들이 직접 운전대를 잡는 대신 대리운전을 찾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울산·부산지역 대리운전업체 A사의 콜센터 관계자는 “25일 출근 시간대인 오전 6시부터 8시 사이 콜이 평소보다 두 배가량 많았다”고 말했다.

변경된 음주운전 단속 기준이 교통경찰업무관리시스템(TCS)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바뀐 기준에 따르면 면허 취소 수치인데도 시스템에서는 면허 정지로 등록되거나, 면허 정지 수치가 나왔는데도 예전의 훈방 조치 기준이 적용돼 입력 자체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0시∼오전 8시 총 153건의 단속 중 26건에서 오류가 발생해 수기로 처리했다. 오전 10시부터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다”고 밝혔다.

김재희 jetti@donga.com·이소연·박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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