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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전성철]21년간의 도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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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전성철]21년간의 도피

전성철 논설위원 입력 2019-06-24 03:00수정 2019-06-2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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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철 논설위원
4월 말 문무일 검찰총장은 에콰도르를 방문할 계획이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논란 때문에 막판에 취소했지만 문 총장이 에콰도르를 가려 했던 이유는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넷째 아들 정한근 씨가 그곳에 머물고 있는데 현지 법원이 범죄인인도조약이 체결돼 있지 않아 송환 협조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정 씨는 1998년 한보그룹 계열사의 회삿돈 322억 원을 스위스의 차명계좌로 빼돌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다 출국해 21년간 도피 생활을 했다.

▷에콰도르 측은 지난주 정 씨가 파나마를 경유해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예정이라는 사실을 이륙 1시간 전 한국에 알려줬다. 검찰은 파나마 공항에서 정 씨를 붙잡아 국내로 송환했다. 미국, 에콰도르, 파나마 등 5개국 검찰과의 공조 산물이다.

▷정 씨의 부친 정태수는 13년째 잠적 중이다. 1997년 ‘한보 사건’으로 징역 15년 확정판결을 받았지만 2002년 특별사면을 받은 정태수는 2006년 자신이 설립한 강릉영동대의 교비 72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다시 재판을 받다가 2007년 해외로 달아났다. 그는 전관 변호사를 선임해 “신병 치료차 일본에 가야 한다”며 법원에서 출국금지 해제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일본이 아닌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로 출국했고 이후 자취를 감췄다.

▷검찰이 정 씨 부자를 추적해 온 가장 큰 이유는 세금 체납이다. 무려 2200억 원이 넘는 국세를 내지 않았다. 세무공무원 출신인 정태수는 1974년 “흙과 관련된 사업을 해야 한다”는 역술인의 말을 듣고 뛰어든 광산사업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이후 건설업에 진출해 서울 강남 재건축의 대명사가 된 은마아파트를 분양하는 등 승승장구해 한보를 재계 서열 14위까지 올려놨다. 하지만 철강사업에 진출한 뒤 자금난을 겪다가 부도를 냈고, 이는 1997년 외환위기의 시발점이 됐다. 한보사태 재판 때, 정태수는 휠체어를 탄 채 법정에 나섰다. 이는 재판, 수사를 받는 유력자들 사이에 유행이 됐고 ‘정태수 코스프레’라는 말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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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알려진 정태수의 행적은 2009년경 키르기스스탄에서 금광 사업을 벌였다는 정도다. 이번 송환 실무 책임자인 대검 손영배 국제협력단장은 교비 횡령 사건 때 정태수를 기소한 주임검사다. 아들 정 씨는 검찰 조사에서 “아버지가 에콰도르에서 사망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1923년생인 정태수가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처럼 외국에서 객사한 것으로 결론 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범죄자가 발 뻗고 편하게 지낼 곳은 지구상에는 없다.

전성철 논설위원 dawn@donga.com
#문무일 검찰총장#에콰도르#정태수#정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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