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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악몽 계단 근처 못가” 안인득 살던 4층 절반 넘게 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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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악몽 계단 근처 못가” 안인득 살던 4층 절반 넘게 빈집

진주=김재희 기자 , 이소연 기자 입력 2019-06-21 03:00수정 2019-06-2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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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두달… 주민들 트라우마 고통
방화 흔적은 지워도… 18일 오전 경남 진주시 가좌동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이 방화·살인 사건 피의자 안인득이 살았던 집 출입문에 흰색 페인트를 칠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4월 17일 이후 현장감식으로 출입이 금지됐던 이 집은 지난달 15일부터 보수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진주=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그날 이후론 계단 근처에도 못 가요. 무조건 엘리베이터를 타지.”

17일 경남 진주시 가좌동의 한 아파트 3층 복도. 주민 김모 씨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김 씨의 집 한 층 위 406호에 안인득(42)이 살았다. 두 달 전인 4월 17일 새벽. 안인득은 자기 집에 불을 질렀다. 그리고 아파트 2층 계단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화재경보기가 울리는 소리를 듣고 대피해 내려오는 주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 12세 소녀를 포함해 5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

당시 김 씨도 화재경보기 소리에 놀라 계단으로 대피하기 위해 비상구 문을 열었다. 김 씨는 바닥에 피가 흥건한 것을 보고 더 놀라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집이 3층이라 운동 삼아 항상 계단으로 다녔었다. 그런데 이제는 무섭다.” 김 씨는 그날 이후 계단으로 다니지 않는다.


안인득에 의한 방화·살인 사건이 있은 지 두 달이 지난 17일. 희생자가 발생한 층 복도와 계단 벽면은 흰색 페인트로 다시 칠해졌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불안해하는 주민들을 위해 단지 내 조명 밝기를 높였다. 하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그날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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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 눌러도 모른 척…‘경계’가 일상인 주민들

안인득이 살았던 406호는 내부 공사가 한창이었다. “4층엔 세 집만 남았어.” 한 인부가 화재로 그을린 내장재를 뜯어내며 말했다. 방화·살인 사건이 있기 전 4층엔 모두 8집이 살았다. 다섯 가구가 이사를 간 것이다. 안인득과 같은 동에 살았던 79가구 중 모두 12가구가 이사를 갔다. 희생자가 있었던 다섯 집은 모두 떠났다.

아파트는 정적에 잠겨 있었다. 601호 주민 A 씨(48·여)는 “며칠 전 술에 취한 주민이 소리를 질렀는데 평소 같았으면 창밖으로 한마디 했겠지만 그냥 베란다 창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술 취한 주민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지만 무슨 해코지를 당할지 몰라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6층에 사는 다른 주민 강모 씨(76·여)는 “이제는 누가 초인종을 눌러도 집에 아무도 없는 척한다”고 했다. 뇌중풍(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한 106호 주민 편모 씨(54)는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편 씨는 “다른 사람이 언제든지 나를 공격해올 수 있는데 몸이 불편해 달아나기가 어려울 것 같아 집 밖으로 나가는 게 두렵다”고 말했다.

○ “그날 일 파노라마처럼 반복”


안인득의 손에 어머니와 열두 살 조카를 잃은 금모 씨(40·여)는 20년간 해온 치위생사 일을 최근 그만뒀다. 금 씨는 2주 전부터 어머니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금 씨는 “환자를 보던 중 저도 모르게 엄마 얘기를 꺼내면서 소리를 지르는 일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금 씨는 “소방관이 축 늘어진 조카의 두 팔을 잡고 계단으로 내려가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수없이 떠오른다”며 괴로워했다.

사건 발생 당시 안인득과 같은 층에 살았던 금 씨 오빠네 가족 역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금 씨의 오빠는 딸과 어머니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금 씨는 “이름이 안 좋아 우리 집에 이런 비극이 닥쳤나 싶은 생각까지 들어 오빠네 가족과 우리 가족 모두 개명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대피를 돕다가 안인득의 공격을 받아 부상을 입었던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 정모 씨(29)는 그동안 치료를 받아오다가 이달 1일 업무에 복귀했다. 하지만 그날의 악몽은 아직도 몸에 새겨져 있다. 정 씨는 “며칠 전 안인득이 살았던 동의 한 가구 화장실을 점검할 일이 있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바라보는 순간 근육이 마비된 것처럼 움직일 수 없고, 머리가 핑 돌면서 숨을 쉬기 힘들었다”고 했다.

16년간 딸처럼 애지중지 키우던 시각장애인 조카 최모 씨(19·여)를 잃은 강모 씨(54·여)는 조카를 보호하려다가 목과 어깨, 얼굴 등에 중상을 입었다. 성대 신경이 손상돼 목소리도 잃었다. 17일 만난 강 씨의 딸(31)은 “엄마는 병원에서 모자를 쓴 사람만 봐도 경기를 일으킨다”며 걱정스러워했다. 안인득은 범행 당시 모자를 쓰고 있었다. 강 씨는 3주 뒤 퇴원하면 딸의 집에서 지낼 예정이다. 강 씨의 딸은 “우리 가족에게 트라우마와의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며 눈물을 보였다.

진주=김재희 jetti@donga.com / 이소연 기자

#진주 아파트#방화살인#안인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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