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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물은 정치, 아랫물은 웰빙 공직 지키는 관료 있긴 한가[광화문에서/홍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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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물은 정치, 아랫물은 웰빙 공직 지키는 관료 있긴 한가[광화문에서/홍수용]

홍수용 경제부 차장 입력 2019-06-21 03:00수정 2019-06-21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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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용 경제부 차장
퇴임 관료 A가 세금을 신고하려고 국세청 홈택스에 접속했다. 끙끙대며 겨우 신고서류를 채웠더니 재산세는 행정안전부에 내라는 안내가 떴다. 행안부 홈페이지에 접속해 어렵게 작업하고 나니 이번에는 건의사항을 쓰란다. 한마디 해야겠다 싶어 ‘내가 30년 넘게 공직생활 한 선배인데 이런 식이면 국민들이 얼마나 불편하겠느냐’로 시작하는 일장 훈계를 막 하려는데 2줄 이상은 못 쓴다며 컴퓨터가 멈췄다. 다시 로그인했더니 ‘당신의 건의는 이미 반영됐다’는 메시지가 속을 긁었다. A는 “나도 그랬지만 관료들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했다.

A는 관료의 무지가 책상에만 앉아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요즘 관료가 기업인을 자주 만나는 걸 보면 꼭 탁상공론만은 아닐 것이다. 실속 없이 늘 자기 정치를 한다는 게 문제다.

지난달 22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시중은행장들을 만났지만 정작 그가 열심히 한 일은 승합차 호출 서비스 ‘타다’로 정부와 갈등을 빚는 이재웅 쏘카 대표를 비판한 것이다. 최 위원장은 이 대표에게 “무례하고 이기적”이라며 “혁신사업자들이 오만하게 행동하면 혁신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금융 규제 때문에 금융회사들은 애가 타는데 자기 분야도 아닌 공유차량 서비스에 끼어들어 정부와 코드를 맞춘 셈이다. 출마설과 관련해 “국회의원 출마는 아무나 하느냐”고까지 했다. 정치는 꿈도 꾸지 않는다는 답을 기대한 후배 공무원들은 여지를 남긴 그의 말에 어리둥절해한다. 윤종원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은 이달 7일 경제가 어렵다며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촉구했다. 이어 11일 청와대는 “고용 상황이 노무현 정부 이후 가장 좋다”고 했다. 청와대의 현실 인식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오락가락해도 되는 것인가.


선배들을 보면서 후배 공무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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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급 이하 공무원들은 지난달 김수현 대통령정책실장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자기들끼리 이상한 짓 많이 한다’며 공직을 폄하했는데도 선배 공무원들이 그저 사람 좋은 웃음만 지을 때 자신들도 편하게 살기로 태도를 정했다. “김 실장과 이 대표의 말은 지시할 때 한 칸씩만 움직이는 장기판의 졸(卒)이 되라는 거죠. 선배들은 진작 그러고 있고요.”(경제부처 사무관)

한 고위 관료는 후배들이 메모만 열심히 할 뿐 도통 일을 하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웰빙만 하려는 후배 탓이라기보다는 흐린 윗물 때문에 아랫물도 탁해지는 공직사회의 단면이 드러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의 관료들에게는 그동안 매뉴얼이 있었다. 성장과 고용 확대라는 핵심 목표에 따라 경제정책방향, 세제 개편안, 예산안, 컨틴전시 플랜 같은 틀에 알맹이를 채워왔다. 이 틀이 깨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변화와 혁신을 위한 자발적 파괴가 아니다. 정부 부처들이 자기 장관 빛나게 할 정책을 따로 발표하려고 경제정책 컨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에 정책 아이디어를 주지 않고 숨겨둔다고 한다. 기재부가 보통 6월 말 공개하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담을 내용이 없어 발표 시기를 7월 초로 미룰 정도라니, 부처에 정책은 실종되고 정치만 남은 것인가. 공무원의 딴짓, 헛짓에 공직사회가 집단으로 가라앉고 있다.

홍수용 경제부 차장 legman@donga.com
#관료#공무원#김수현#이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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